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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Hakkore
9 지금 우리는 이 주제를 '실제로 적용'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면에서 생각해보고 있는데 여기에 의인의 미래의 복에 관해서 몇 가지 의견을 첨가하고자 한다. 우리의 생활이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는 데에 더 많은 열매를 맺힐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지성이 더욱 많이 깨닫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감정이 감동을 받게 되기를 소원한다. 높은 곳에서 그의 백성들을 기다리는 영원한 복에 관해서 지극히 많은 것을 계시해 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도움을 주셨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신 그러한 지식의 실제적인 가치는 우리의 일상적인 행실에 나타나는 결과로서 결정되어야만 한다.♡ 왕의 아름다움 가운데에서 그 아름다우신 왕을 바라보는 자들은 틀림없이 이 세상의 생활에서 그의 형상을 좀더 가깝..
8 우리의 이야기를 너무 빠르게 전개하였기 때문에 이제 뒤로 되돌아 가서 이 축복된 종말로 끝나게 되는 신자들의 생애 가운데 있는 몇 가지 단계를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되겠다. 첫번째 단계는 믿는 자가 빛가운데 있는 성도들의 유산을 얻기에 합당한 자가 되는 중생의 단계이다. 이것이 첫단계인 것은 그 안에서 그의 영혼으로 하여금(지금까지는 타락한 영혼이었지만) 영적인 일들을 마음에 그리고 기뻐하도록 하는 한 원리(또는 '본성')가 작용하고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거지가 왕의 영광을 바라볼 수는 있으나 그 영광을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중생한 영혼은 믿음 안에서 십자가에 달리셨고 부활하신 구세주를 바라보게 되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된다(사 45:22). 천국으로 향하는 영혼의 여정의 두번째 단계..
7 영화된 교회가 하늘에 올리운 후에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연합이 완전해질 것이다. 연합은 관계보다도 함축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실제적인 대면을 의미하는데 그 대면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다. 그로 인하여 죄가 없는 영혼은 회복된 이성과 판단에 의해 좌우되는 의지와 사랑을 가지고 그리스도께 가까이 접근하며 그를 포옹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계획을 실현하는 가운데에서 무한한 사랑과 기쁨을 가지고 교회를 포옹하신다. 영혼이 하나님의 마음과 모습을 완전히 닮게 될 때 그 영혼은 두 본성, 즉 신성과 인성사이에 있을 수 있는 지극히 친밀한 교제에 적합한 상태가 된다.♡ 지금 거룩하신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 완전하게 이루어진 그러한 사랑의 연합으로 인하여 영화된 성도들의 거룩한 축복에 대해..
6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니다". 여기에서의 바라봄은 첫째로 시각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가 있다. 육체적인 감각은 우리의 영혼의 기능뿐만 아니라 그 기쁨도 안다. 그러므로 이후로는 더욱 더 숭고하고 순수한 차원에서 이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욥이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리라"(욥 19:26,27)고 말했을 때는 인간이신 하나님, 곧 중보자의 인격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임을 단언했다. 성도들은 그때에 그들을 구속해 주신 구속자를 바라볼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지극히 큰 고통을 당하신 그 본질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겉사람도 속사람만큼 진실되게 참으로 기뻐하게 될 것이다. 하늘에는 ..
5 요한복음17장에서 주 예수께서 밝혀주신 교회의 미래의 축복이야말로 모든 성경 가운데서 가장 분명하고 복된 계시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24절). 이 구절에 있는 모든 단어들을 따로 떼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구속자는 다시 한 번 '아버지'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자기의 모든 백성을 위해서 자녀의 몫을 간청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즉 종이 주인으로부터 받는 단순한 보수가 아니라 자녀들의 그의 부모로부터 받는 유산 곧 그 아들이 지금 거하는 아버지 집의 유산을 간청하고 계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영화를 요구할 때에 '아버지'라고 불렀으며(5절), 또한 자기의 성도들..
4 요한복음 17:22에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너희에게 주었사오니['줄 것이오니'가 아니다]"라는 말씀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과거시제를 사용하신 것을 주목해야 하겠다.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가 있다. 첫째로, 그리스도께서는 자기가 받으신 영광에 대해 더할 나위 없는 권리를 교회에 부여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이 영광의 권리를 얻으셨다.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히 6:20). 이와같이 우리가 과거에 실제로 그것을 소유했던 것처럼 지금도 확실하게 우리의 것이다. 둘째로,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에 대한 지식을 그의 백성들에게 부여해 주셨다. 그것은 여기 요한복음 17:22과 골로새서 3:4 등에서 선포하신 것으로 알 수 있다. "우리 생명이신..
3 미래의 영광은 에베소서 2:6, 7에 잘 나타나 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또한 하늘의 천사들에게도 나타내려 하심이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향하신 그의 사랑의 풍성하심을 충분히 나타내 보이신다면 참으로 영광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우주의 주권자, 곧 권세와 지혜의 하나님께서 그가 자기의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나타내시려는 뜻을 선포하신다면 그 영광의 지극히 작은 개념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애쓴다 할지라도 우리들의 제한된 상상력으로는 헛일이 될 것이다. 그들이 자기들의 영광 안에서 '그들의 왕께서 영광스럽게 해주신..
2 미래의 영광은 우리의 현재의 고난과는 크게 대조가 된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7)라는 말씀에서 신자들의 미래의 복이 참으로 큰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받는 고난이 그들이 생각하기에 참으로 무거우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비통할 만큼 무겁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성도들 중에서 고난을 당하는 자들의 시련과 슬픔이 '경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들의 미래의 행복과 대조해 볼 때에 그 미래의 행복은 얼마나 큰 것이겠는가. 하나님의 오른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을 표현하기에는 인간의 언어가 심히 부족하다는 것을 그것을 묘사하는 단어를 중첩시키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