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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연합과 친교 89] 영광의 연합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연합과 친교 (Spiritual Union and Communio

[영적인 연합과 친교 89] 영광의 연합

En Hakkore 2024. 5. 1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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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야기를 너무 빠르게 전개하였기 때문에 이제 뒤로 되돌아 가서 이 축복된 종말로 끝나게 되는 신자들의 생애 가운데 있는 몇 가지 단계를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되겠다.

첫번째 단계는 믿는 자가 빛가운데 있는 성도들의 유산을 얻기에 합당한 자가 되는 중생의 단계이다.

이것이 첫단계인 것은 그 안에서 그의 영혼으로 하여금(지금까지는 타락한 영혼이었지만) 영적인 일들을 마음에 그리고 기뻐하도록 하는 한 원리(또는 '본성')가 작용하고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거지가 왕의 영광을 바라볼 수는 있으나 그 영광을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중생한 영혼은 믿음 안에서 십자가에 달리셨고 부활하신 구세주를 바라보게 되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된다(사 45:22).

천국으로 향하는 영혼의 여정의 두번째 단계는 그 영혼이 실제적으로 성화되어지는 데에 있다.

그것은 점차적인 과정이자 점진적인 체험이며 그러한 상태에서 그는 율법과 복음의 거울로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게 된다.(고후 3:18)

세번째 단계로, 믿는 자들의 영혼이 참으로 열망했던 목적지에 더욱 가까이 접근하게 되는 죽음의 순간이다.

그때에는 이 세상을 등질 뿐만 아니라 영원히 죄를 없애게 된다. 즉 죄 또한 등지게 되는 것이다. 그때는 참된 해방을 맛보게 된다. 그가 육체를 벗어버릴 때에 그는 참 자유를 얻게 된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불경건한 자들처럼 이 세상을 떠나기 싫어하고 죽음의 그림자가 비치는 골짜기를 그토록 두렵게 생각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로는 이상한 일이 아닐지라도 영적인 측면에서 보면 참으로 잘못된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가시를 뽑아내셨기 때문에 성도들이 죽음을 두려워해야 할 아무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거기에는 죽음을 환영해야 할 이유들이 많이 있다. 새로와진 마음을 병들게 하고 우리의 모든 영적 슬픔의 원인이 되는 괴물이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망쳐놓고 방해하는 약한 것 곧 죄는 영원히 없어질 것이다.♡

또한 죄를 없앰과 동시에 모든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슬픔은 마지막이 될 것이다. 첫번째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속박은 마침내 끝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그것은 단지 부정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보았을 뿐이다. 그러면 이제 긍정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보기로 하자.

주님께서 그의 모든 성도들을 죽음으로써 그 육체를 벗어나게 하여주시자마자 곧 그들은 천국으로 들어가도록 허락을 받으며 거기에서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그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참으로 큰 것이다.

즉 그들이 지금은 그 영광에 대해서 영적 지각을 가지고 있으나 이 세상을 떠나고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게" 될 때에는(고후 5:8) 더욱 크고 거대한 영광의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는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다"(빌 1:23)고 외쳤다.

모든 성도들이 이 세상을 하직한 후에 천국은 그들의 거주지가 되며 그런 다음에는 그들이 지금 누릴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차원높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현재 그리스도와 교제하고 있는 최상의 경우라 할지라도 아주 미약하고 일시적인 것일 뿐이지만 그것이 언제나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즉 중간 상태에 있는 구속함을 받는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며 그로부터 지극히 큰 계시를 받은 것(고후 12:7)이다.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계 14:13). '복이 있을 것이다' 가 아니라 '복이 있도다'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죽을 때에 믿는 자들의 영혼도 불신자들과 마찬가지로 망각의 상태로 들어갈 것이라고 하는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이러한 사상이 거짓이라고 밝혀주는 하나님의 선언이다.

그렇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복이 있는 자' 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죄를 뒤에다 버렸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낙원에"(눅 23:43)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 복은 최종적인 상태의 복보다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복은 여러 면에서 천국의 복에 아주 가깝다.

신자들은 부활 후에 그 전보다 훨씬 더 많은것을 소유하게 되겠지만 그들은 죽음과 부활 사이에서도 많은 것을 향유하게 된다. 이들은 모두 "면류관"(계 2:10 - 죽은 후에 즉시 ; 딤후 4:8 - 그 후에)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모두가 "주와 함께 거하는"(고후 5:8; 살전 4:17) 것이며 또한 그것들은 "그리스도를 보는 것"(고후 5:6,7) 이다.♡♡

우리가 몸 안에 거할 때에는 믿음으로 행하나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을 때는 반드시 보는 대로 행할 것을 함축하고 있다.(요일 3:2)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의 복이 아무리 크고 거대할지라도 그들이 부활한 상태와 영원의 상태에서 누리게 되는 복은 그 복을 훨씬 더 능가한다.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성경 말씀으로 대답해줄 수가 있다.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뿐이로되...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고전 15:35-37, 42-44).♡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 몸의 현재 상태와 미래의 상태 사이에는 참으로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어느 면에서는 부활한 몸은 죽은 몸과 같으며 인격적인 동일성을 보존한다.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는 부활한 몸은 근본적으로 변화된 몸이다.

그리스도의 변화산상에서의 변모에 대한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같이 희어졌더라"(마 17:2)라는 기록에서 신자의 몸이 그 기적적인 변화에 대한 암시 이상의 것을 깨달을 수가 있다.♡ 주께서 부활하신 후에 그는 닫혀진 문들을 뚫고 나오셨다(요 20:19).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실" 것이다(빌 3:21). 그러므로 만일 부활한 상태에서 신자들의 몸이 그렇게 크고 거대하게 변화될 것을 기다리고 있다면 영혼이 '영화될' 때에 영혼의 변화를 마음 속에 품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죄악의 짐에서 벗어나서 그리스도와 같게 되었을(요일 3:2) 때에 영혼의 능력과 그 한계를 명확히 정의해볼 자가 누가 있겠는가? 하나님의 일들과 관련해서 영화된 영혼의 사역의 우월성을 어느 누가 추측해볼 수 있겠는가?

Arthur W. Pink 영적인 연합과 친교 p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