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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성장 118] 성장의 회복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영적인 성장 118] 성장의 회복

En Hakkore 2024. 4. 7. 08:33

우리는 이제 우리의 본 주제를 설명해 주는 아브라함의 경우를 들어보겠다. 아마도 이것을 영적인 타락으로 보는 이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사"(창 12:7)란 말씀을 읽는다. 이것은 또한 이렇게 나타났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이 말은 자의적이거나 자기 만족에 겨워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자기의 사랑을 보인 것들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함을 말하며 주님을 만족한 분깃으로 삼음을 말한다. 사람은 '주님의 나타내심을' 매일 체험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할 때 우리의 심령은 쓰라림을 맛 볼 것이다. '주님의 나타나심'이 정규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필시 순종의 길에서 이탈했음을 의미한다.♡

다음에 우리는 주님의' 나타나심'에 대한 이 족장의 응답에 대해서, 그리고 주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신 약속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니라." 제단은 예배에 대해, 마음으로 찬양과 존귀를 드리는 예배에 대해 말해 준다. 이것은 불변하는 원리이다. 심령이 그리스도로 채워지고 영화로우신 왕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에 우리는 그 앞에 나아와 진정한 예배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다음 "그리고 그는 거기서 산으로 옮겨 가니라"(창 12:8). 영적으로 말해서 산은 심령의 고양된 상태, 즉 그 밑으로 세상이 놓여 있고, 위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둠을 말한다. 산은 이러한 분위기에서 초연한 상태에 대해, 즉 주님에게 이끌리고 주님에게 몰두한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사 40:31)라고 기록되지 않았는가? 그러면 이 산에 대한 체함을 어떻게 지속시키는가? 이것이 진정 가능한 일인가? 우리는 그것을 가능하다고 믿는다.

우리는 그것을 향하여 부단히 나아가야 하며 거기서 떨어지게 하는 요소를 부단히 회피함으로 가능할 것이다. 거기에 대한 답변은 즉시 다음의 예에서 보여진다.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장막은 나그네의 상징이며 거기서 집도 없이 거주지도 없이 영광의 주님만을 바라보며 사는 삶을 말한다. 우리는 아브람이 가나안에서 '집'을 세웠다는 기록을 보지 못한다(롯은 소돔에서 집을 지키고 살았지만). 그는 단지 '체류자'일 뿐이었다.

그의 장막이 이러한 특성을 말해 준다.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이 두 구절에서 아브라함에게 두 가지 특성을 발견한다.

이것은 '장막'과 '제단'이라는 것이다(12:8, 13:3,4 4:13,18). 이들 모든 구절을 살펴보면 '장막' 이 먼저 언급되어 있다. 우리는 단지 체류자로서 아래에 머물러 있지 않는 한, 높은 데 계신 하나님께 참으로 예배할 수 없다. 이렇게 하여 다음의 권고는 받아들여진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

우리는 '신령한 부르심의 참예자'(히 3:1)로서 (이를테면 우리의 품행이나 의상이나 말씨에서) 행동하고 있는가?

Arthur W. Pink 영적인 성장 p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