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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성장 119] 성장의 회복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영적인 성장 119] 성장의 회복

En Hakkore 2024. 4. 8. 11:44

사랑하는이여, 우리 중에 산에 대한 체험을 하는 자들이 왜 이다지도 적으며 설상가상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바로 직시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평지로 내려왔기 때문이며, 공허한 형식주의자들의 수준으로 회칠한 무덤으로 밑에 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 결과 세상과 짝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의 것이라면, 그는 우리를 현세의 이 악한 세상에서(법적으로) 구원해 주셨으며(갈 1:4), 우리의 마음과 생활은 실제적으로 그것에서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집은 높은 곳에 있으며 이 사실로 우리의 삶을 하나하나 설계해 나가야 한다.♡

아브람과 그의 동료 성도들은 '땅에서는 나그네와 외국인이라 증거하였다' 고 했다(히 11:13). 이것은 그들의 입술로써만 아니라 생활로써 '증거하였다'. 그래서 여기에 부언하기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16절)라고 했다.

그런데 참으로 좋지 않은 것은 지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소위 '특수한 존재'라는 별명이 붙을까봐 두려워하며, 비판과 추방을 회피하여 타협에 안주하며,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고, 세상의 수준으로 전락해 있다는 것이다.

젊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순종의 길로 갔던 자,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마음을 바쳤던 자, '장막'과 '제단'의 사람이었던 자는 타락에서 완전히 제외되어 있을 것이라고 당연히 생각할 것이다. 자신도 그러한 관계와 태도를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렇게 자신하던 그 마저도 아주 쉽사리 이완되어 점차 조금씩 떠나 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탈은 신자가 육체를 갖고 있어서 이 육체는 멀지 않아 확연히 나타난다는 이유로 당연시되거나 변명하여서는 안된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된다.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 그는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계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롬 6:12).

그러나 아브람은 타락을, 그것도 중대한 타락을 저지르고 말았다. 우리는 베드로가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기까지 여러 단체를 거쳐야 했던 그 과정을 살펴봄으로 유익을 얻을 수 있었던 것과같이, 족장 아브람의 '애굽으로 내려가기' 이전의 상황을 살펴보고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우리는 '그리고 아브라함이 떠나니라'(9절)는 말씀을 대한다. 아브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명령을 받아 그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장소에서 장막을 거두고 떠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명령의 결론으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 아브람의 부주의함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이며, 우리에게 있어서도 이러한 부주의함은 우리의 분깃에 만족을 누리게 하지 못한다.

유의해야 할 엄숙한 사실은 아브라함의 타락한 시초의 출발점이 그가 벧엘을 떠났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을 의미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장소를 뜻한다. 우리가 벧엘을 떠나면 경고가 주어진다. 아브람이 벧엘을 떠났다는 것은 실패의 근원이었으며 떠남으로 나타난 결과는 쓰라린 열매를 맛보아야 했다.

이것은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멀찌기' 따라 감으로 나타난 결과였다. 이것은 주님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너희는 처음 사랑을 떠났도다"고 말씀하신 내용이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등한히 하는 날에는, 많은 악한 요소들이 영혼에 침투하게 문을 활짝 열어 놓는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떠나갔더라." 떠나다는 이 말의 히브리어는 보다 강조된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역하면 "그리고 아브람이 걸어서 떠나갔더라"이다. 불안정한 마음이 그를 사로 잡았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교제 관계는 깨어졌다.

나는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시 37:6)는 명령을 받았지만 "내가 여호와를 심중에 기뻐하지 않는데" 어찌 이것을 능히 수 있는가?

Arthur W. Pink 영적인 성장 p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