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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성장 122] 성장의 증거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영적인 성장 122] 성장의 증거

En Hakkore 2024. 4. 8. 11:51

영적인 성장의 주요한 표적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의 성숙하는 과정에 있어서 뚜렷한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우리 중 어떤 이는 이 질문을 간단히 생각하며 미리 준비한 답변을 말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적당한 관점에서 그것을 조망해 본다면, 그것에 답변을 내리기 전에 보다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우리가 영적인 성장의 진정한 성격에 대해서 고찰해 본다면, 그것이 나무의 성장과 같이 아래로 위로 안쪽으로 바깥쪽으로 성장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단순한 개념화에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인의 성장단계를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려 한다면, 이들에게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어린이', '청년', '장년'으로 나누어야 할 것이다. 어린이에게 어울리는 것들을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장성한 사람에게 적용시켜서는 안될 것이며, 성숙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것들을 아직 미성숙한 사람에게 적용시켜도 안될 것이다.

우리의 당면한 이 문제에 대해 보다 결정적이고 명확한 답변을 기대한다면 보다 뚜렷한 구분이 지어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인의 발전의 세 단계에 대해 다소간 자세히 설명했으며, '싹'과 '이삭', 그리고 '이삭에 충실한 곡식'의 단계에 대해서도 보다 명확하게 제시했으므로, 여기서 동일한 것을 반복할 생각은 전혀 없다.

성장이 상대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모든 측량의 단위가 모든 경우에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는 마치 야드 자가 어린이의 성장을 가늠하는 데 가장 좋은 도구이지만, 어른의 성장을 무게로 다는 데는 적합치 못한 원리인 것과 같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특권이나 기회, 교육이나 훈련, 상황이나 환경의 정도를 고려한다면, 시종일관한 성장이란 기대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신자는 다른 신자보다 더욱 경쟁적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자체를 끌어오는 차이에 기인한 것이다.

비교적으로 심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의 성장은, 보다 좋은 환경에 있는 사람의 성장보다 실제에 있어서는 더욱 큰 성과를 이룩한다.

비옥한 골짜기에 과수나무를 심은 사람은, 우뚝 드러난 언덕에 심은 사람보다 더 많은 열매를 얻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어려서부터 경건한 부모나 형제. 자매들의 영향을 받아서 좋은 모본과 충고를 받으며 자라난다면, 불신자의 가정에서 자라난 자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으리라.♡

결혼하지 않은 애인이 자기의 생활비를 벌지 않고 독서나 명상이나 기도나 신령한 삶을 위하여 시간을 보낸다면, 가정의 문제와 염려로 걱정하는 여인보다 더 많은 성장의 기회를 가진다. 훌륭한 목사의 도움을 규칙적으로 받으면서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사람은 이러한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보다 성장의 기회를 훨씬 많이 갖고 있다.

다시,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보다 많이 낼 수 없다. 전자는 두 달란트로써 두 달란트를 남기지만, 후자는 다섯 달란트로써 또 다른 다섯 달란트를 남긴다. 주님께서는 친히 이렇게 말씀하신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8)

우리는 지금 영적인 생명의 표적이나 표시에 대해서 쓰려는 것이 아니라, 이보다 한층 더 어려운 과업인 영적 생명의 성장에서 나타난 그 증거들에 대해서 쓰려고 한다. 우리가 이 증거들을 찾으려 할 때 무엇을 찾아야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옛날 노인'에게서 발전을 찾으려 한다면, 금방 실망을 금치 못할 것이다. 만약 그가 본래의 교만을 죽이고 불신앙의 일들을 중단하고 그 안에 일어나는 하나님께 반역을 중단하려 한다면, 그는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점에 있어서 쓰라린 실패를 맛보았으며 이것으로써 넘어졌던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곳에서도 '육'을 신령하다고 약속하신 적이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육체의 정욕'(갈 5:16)을 따라 살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요 특권이다. 우리가 부패한 것들을 천히 여기고 또 이것들을 슬퍼해야 하지만, 이것을 안다고 해서 우리에게 영적인 성장이 조금도 없다고 결론지어서는 안된다.

Arthur W. Pink 영적인 성장 p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