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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84] 요단 강을 건너다(여호수아 3:7-17)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84] 요단 강을 건너다(여호수아 3:7-17)

En Hakkore 2024. 2. 25. 15:08

여러분 중에는 위의 마지막 열두 번째 요점이 다소 무리라 여기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아마도 출애굽기 15장의 이스라엘의 노래를 기억하고서, "요단 강에서 이스라엘이 불렀다는 찬양의 노래가 어디에 나타나느냐"라고 물을 것이다.

그들이 찬양의 노래를 불렀다는 별도의 기록은 없다. 그러나 두 이적들을 함께 묶어서 특별한 찬송의 주제로 삼는 실례가 시편 114편에 나타나는데, 이에 대해 주목하고자 한다.

시(詩)의 유익한 점에 대해 사려 깊은 의견을 낼 수 있는 자격 있는 많은 이들이 자유로이 증언하지만, 이 시에서는 신성한 시적 감상이 절정에 이르고 있다. 그 어떠한 인간의 사고로도 그 내용의 장려함을 따라갈 수가 없으며 그것을 뛰어넘을 수는 더더욱 없다.

그 시는 생명이 없는 것들 중 가장 뛰어난 것들이 그 조물주에게 복종하는 것을 지극히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어떤 분은 이를 다음과 같이 멋지게 정리하고 있다.

"야곱의 하나님을 강과 바다와 산을 향해 명령하시는 분으로, 자연 전체가 그분의 위엄 앞에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 높이 그리고 있다."🫰

시편 114편은 몇 가지 점에서 극히 놀랍다.

첫째, 서문이 전혀 없다.

마치 저자의 영혼이 너무도 높이 올라 있고 신적인 영광에 대한 지각으로 가득 차 있어서, 서문을 작성하기 위해 쉬어갈 틈이 없이 곧바로 그의 주제를-옛 이스라엘을 위해 일어난(그들이 직접 목격하고 또 직접 은혜를 입은) 그 놀라운 역사들을-토해낼 정도였던 것 같다.

둘째, 문법의 법칙이 무시된다.

2절에서는 앞의 선행사도 없이 소유격 대명사가 사용되는 것을 보게 된다. 1절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숨겨져 있다. 아이작 왓츠(Isaac Watts: 1674-1748)가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와같다.

"하나님이 앞에 등장하셨더라면 산들이 뛰고 바다가 물러가는 일에 대해 전혀 놀라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의 요동치는 일들이 과연 깜짝 놀랄 만한 일이었음을 드러내기 위해 그분의 이름이 나중에 가서야 언급되는 것이다"🫰

셋째, 이 시편은 훗날 모든 유대인이 유월절 식사 때에 부르게 되는 "할렐루야"의 일부분이 되었다.

넷째, 이 시편에 묘사되는 모든 내용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일어나는 더 크고 놀라운 일들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195

추신) 오늘은 시편 114편을 찾아 옮기며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며 다스리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시편 114:1~8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안이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바다가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니 산들은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 양들 같이 뛰었도다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찌함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찌함인가 너희 산들아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아 어린 양들 같이 뛰놂은 어찌함인가 땅이여 너는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그가 반석을 쳐서 못물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