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강해시리즈 (1773)
En Hakkore
목숨을 버리신 그리스도 마리아의 인내는 기적적인 것이었다. 그녀는 광란적이거나 격정적인 슬픔을 보지 아니하였다. 그녀는 제어할 수 없는 고뇌로 거칠게 울부짖지도 아니하였으며 절하여 넘어지지도 아니하였다. 사복음서의 기록을 보면 우리는 그때 그녀가 한 마디도 말하지 아니하였음을 발견한다. 분명히 그녀는 완전한 침묵을 지켰다. 군중들은 야유하였으며 강도들은 조롱하고 있었다. 군인들은 무정하게도 그의 옷을 나누어 갖고 있었으며, 그 가운데서 구세주께서는 피를 흘리고 계셨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그 모든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그러한 광경을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해도 그것은 전혀 무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가 그러한 장면을 보지 못하고 달아났다 해도 그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
목숨을 버리신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의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19:25). 유대인들은 그의 죽는 것을 보려는 잔인한 욕망으로 십자가 사건에 참여하였다. 로마의 군인들은 의무를 행해야 하기 때문에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성령님이 주목을 받고 있는 일단의 무리가 거기 있었으니, 그들은 가운데 계신 수난자에 대한 사랑에 넘치는 헌신으로 인하여 십자가 주위로 이끌려온 자들이다. 그들은 멀리 서서 바라보지 아니하였으며 거기 참여해 있는 불건전한 군병들과도 섞여 있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십자가" 곁에 서 있었다. 이 가엷은 적은 무리는 모두 다섯 명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숫자이다. 왜냐하면 그 다섯이란 수는 은혜의 숫자이며, 이 다섯 명은..
목숨을 버리신 그리스도(요19: 25-42) 요한은 겟세마네에서의 구세주의 고난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언급하지 아니하셨다. 오직 그만이, 구세주를 붙잡으러 온 자들이 땅에 엎드린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요한은 우리 주님께서 가야바 앞에 서셨을 때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는 모두 생략하였으나 안나스 앞에서의 심문은 기록하고 있다. 이 넷째 복음서만이 우리 주님께서 빌라도에게 그의 왕국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과(18:36), 그는 진리를 증거하러 이 세상에 오셨음을 말씀하신 것(18:37),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지 아니하셨다면 빌라도에게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가 없었으리라고 말씀하신 것(19:11)을 기록하고 있다. 요한만이 구세주의 호지 아니한 옷(19:23)과 그의 부러지지 아니한 다리(19:33),..
목숨을 버리신 그리스도(요19:25-42) 요한복음 19장의 종결 부분을 분석해 보면 아래와 같다. 1. 예수의 어머니와 그의 사랑하시는 제자(25-27절) 2. 목말라 하신 구세주(28,29절) 3. 승리의 죽음을 죽으신 구세주(30절) 4. 하나님께서 구세주의 시체를 보호하심(31-33절) 5. 옆구리를 찔리신 구세주(34-37절) 6. 요셉과 니고데모의 담대함(38,39절) 7. 묻히신 구세주(40-42절) 복음서 저자들은 우리 주님의 죽으심에 관한 세부 사항을 제각기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그리스도의 탄생, 세례, 그리고 그의 시험받으심은 단지 두 복음서에만 기술되어 있다. 그의 기적들과 이야기들 중 몇 개는 오직 하나의 복음서에서만 발견된다. 그런데 구세주의 수난은 사복음서에 다같이 기록되어 있..
사형선고를 받으신 그리스도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19:23). "군인들은 자기들의 잔인무도한 일을 다 끝마쳤기 때문에, 즉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머리 위에 패를 붙여 십자가를 세웠기 때문에 이제 그들이 늘 했던 일, 곧 죄수의 옷을 자기들끼리 나누어 갖는 일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법으로 사형을 당하는 자의 옷은 사형집행인의 몫으로 주어진다. 우리 주님의 옷도 그러하였다. 그들은 우리 주님의 손발을 십자가에 못 박기 전에 아마 옷을 다 벗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자기의 일을 다 끝마칠 때까지 그것을 한 쪽에 치워 두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제 그 옷 쪽으로 와서 그러한 경우에 늘 했던 대로 그것들을 나누어 가졌다"(라..
사형선고를 받으신 그리스도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19:20). 성령께서 "히브리 말"을 선두에 위치시키신 점에 주목하라. 히브리어는 유대인의 언어이다. 헬라어는 교육받은 자들의 언어이다. 라틴어는 로마의 언어이다. 그러므로 십자가 둘레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은 각기 제 말로 그 명칭을 읽을 수 있었다. 언어가 혼란케 된 것은 바벨탑의 저주의 표지임을 상기하라(창 11장). 우리가 여기에서 그것을 상기해야 하는 것은 그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로 삼아지셨기 때문이다! 히브리어는 종교어이며, 헬라어는 과학과 문화와 철학의 언어이다. 또한 라틴어는 법률어이다. 그 개개의 영역에서 그리스도가 "왕"이신 것이다♡ 종교계에 있어서 그는 참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시이시며(히 1:2; ..
사형선고를 받으신 그리스도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19:19). "이와 같이 그는 왕으로서, 진정한 '유대인의 왕' 으로서 죽으셨다. 그러나 그 말의 완전한 의미를 숙고해 볼 때 거기에는 훨씬 더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 패는 유대인, 헬라인, 그리고 로마인을 향하여 각자에게, 각자의 언어로, 각각에게 해당하는 의미를 확실하게 단언해 주고 있었다. 그의 원수들은 그 말을 못 본척 하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그것은 공연한 짓이었다. 여기에 실로 독특한 방식으로 단언된 진정한 하나님의 왕, 살아서와 마찬가지로 죽어서도 왕이신 하나님의 왕이 있다.♡ 왜냐하면 이 후로부터 그의 십자가가 그의 권세와, 그리고 그들이 숭배에 넘치는 존경..
사형선고를 받으신 그리스도 "(히브리 말로 골고다)." 이 표현은 구세주의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과 관련하여 두 번 사용되었으며(19:13,17), 그 밖의 예로서는 요한복음 5:2에서 유일하게 발견된다.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좋은 대조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의 골고다에서는 그들의 잔인무도함을 본다! 누가는 이방인의 명칭인 "갈보리(해골)"(23:33) 라고 기록하고 있다. 반면에 히브리인인 요한은 구세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장소를 "골고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빌라도의 재판석이 있는 곳에 관한 두 개의 이름을 비교해 보라(19:13). "이중의 명칭으로 표현된 이 예들을 볼 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자기 백성들과 함께 사용하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