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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67]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함(사무엘상 25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67]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함(사무엘상 25장)

En Hakkore 2024. 2. 19. 11:19

나발의 죽음

"아비가일이 나발에게로 돌아오니 그가 왕의 잔치와 같은 잔치를 그의 집에 배설하고 크게 취하여 마음에 기뻐하므로 아비가일이 밝는 아침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다가"(삼상 25:36).

이 상황을 떠올려보라. 불과 얼마 전에 나발은 휘하에 수백 명의 사람들을 거느린 채 곤경에 처해 있던 사람을 조악하게 조롱했다. 이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그런 모욕은 보복을 초래할 만한 짓이었고, 실제로 그 모욕을 받은 사람은 그렇게 하려고 했다.

다윗은 나발과 그의 집안에 속한 모든 남자들을 죽여 복수하겠다고 맹세했다(22절). 그리고 본문 23절은 이미 그가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길을 나섰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그의 아내가 제때에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나발은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가망 없는 싸움을 해야 할 참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그가 잔치를 베풀고 취해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아비가일이 곤경에 처해 있다가 그리스도께 나아와 그분에 의해 구원을 받는 죄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면, 나발은 그리스도를 경멸하고 자기의 죄 가운데서 멸망하는 사람의 엄중한 초상을 보여 준다. 설교자들은 내가 여기에서 강조하는 내용을 좀더 발전시켜 나가기 바란다.

무서운 위험에 빠진 죄인이 일시적으로 누리는 거짓된 안전에 주목하라(전 8:11 참고). 가난한 하나님의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하나님께 드리기를 아까워하는 자가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육신에 겉치레를 하기 위해 얼마나 아낌없이 돈을 쓰는지 주목하라(눅 16:19-21 참고).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평화를 누리는 데보다 소위 "좋은 시간"(good time)을 갖는 데 얼마나 더 관심을 두는지 살펴보라(사 55:2 참고). 어떤 이들은 그들의 식욕을 채우는 일에 너무 깊이 빠져서 짐승보다 못한 수준까지 내려가기도 한다(사 1:3 참고).

설상가상으로 죄인들은 하나님의 법을 어길 뿐 아니라 그분의 자비를 남용하기까지 한다(눅 14:18-20). 사람들이 "포도주" 외에 다른 것들 - 세상적인 명예, 부, 쾌락 등 -로도 취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그렇다, 미련한 자 나발은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경우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그들의 머리 위에는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으로 인해 이미 저주가 내려졌음에도, 그들은 자기들의 영혼이 영원히 잘 될 것처럼 잔치를 즐긴다. 그들을 치기 위한 하나님의 공의의 칼이 이미 뽑혔음에도, 그들은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히 11:25)을 즐긴다.

그들은 영원한 생수를 무시하고, 이 멸망해가는 세상의 취하게 하는 것들에 취한다. 며칠 후면 무덤 문이 열릴 것임에도, 그들은 그 짧고 소중한 시간에 죽음과 더불어 시시덕거린다. 경건한 자가 그토록 무감각하고 현기증 나는 상태에 있는 자들을 향해 진지하게 말하는 것은 어쩌면 돼지 앞에 진주를 던지는 것이나 같을 수 있다.

오, 마귀는 그의 먹잇감을 얼마나 확실하게 붙들고 있는가! 오, 죄의 속이고 마비시키는 효과는 얼마나 강력한가! 오, 하나님의 주권이 개입해 은혜의 기적을 일으키고 그를 불구덩이에서 타다 남은 것을 꺼내듯 건져내지 않는다면, 불신자의 상황은 얼마나 희망이 없는가!

"아침에 나발이 포도주에서 깬 후에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 일을 말하매 그가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삼상 25:37).

나발은 그 위험한 때에 낮에는 흥청거리고 밤에는 술에 취해 거의 혼수상태로 지냈다. 그러니 이제 아침이 되었고 그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셈을 해야 했다. 성경은 아비가일이 그에게 어떤 비난을 했다고 기록하지 않는다. 그런 일은 불필요했다. 나발 자신의 죄의식이 그 역할을 수행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비통하게 자책했지만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결국 비참한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나발의 마음은 "돌과 같이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가련한 세상 사람들이 죽음을 마주하거나 전능자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어떤 모습이 되는지 보게 된다. 또한 우리는 여기에서 육체적 쾌락의 기만성을 보게 된다.

나발은 밤새도록 술에 취해 즐거워했다. 그리고 이제는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 온 몸이 마비되었다. 그렇다.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잠 14:13) 있는 법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얼마나 다른가!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삼상 23:38).

황폐한 삶을 살았던 자가 맞이한 이 얼마나 무섭도록 엄중한 종말인가! 나발의 삶은 어리석은 자의 삶이었고, 그의 마지막은 미련한 자의 종말이었다. 그는 "내 떡과 물과 내 양털 깎는 자"(11절)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했던 "심히 부한"(2절) 사람이었다.

그는 다윗을 조롱하고 과도한 기쁨을 얻기 위해 시간을 허비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삶의 여정이 끝나는 순간 그의 앞에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유 1:13)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는 술에 취한 결과이었는지 아니면 두려움과 고뇌 때문이었는지 열흘 동안이나 무감각한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태는 하나님의 권능과 진노가 실린 타격으로 의해 종결되었고, 결국 그는 생명의 땅에서 끊어지고 말았다.

사랑하는이여, 바로 이것이 주님과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조롱하고 거부하는 모든 자들의 운명이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1 p289

• 유다서 1장 13절.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