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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39] 노아(창세기 6장)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39] 노아(창세기 6장)

En Hakkore 2024. 3. 15. 10:15

노아의 계보에 대해서는 아주 조금밖에 언급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조상들의 자손이었던 사실은 충분하게 나타난다. 노아는 하늘로 옮겨진 에녹의 증손이며, 므두셀라의 손자며, 라멕의 아들이었다.

라멕은 아들이 태어나던 날 그 이름을 "노아"라 부르면서,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라고 말했다(창 5:29). 라멕이 믿음의 사람이었던 사실은 그가 "수고롭게 일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신" 것과 연결시키는 사실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에게 그의 아들 노아를 통해 장차 당신이 이루시고자 하는 계획을 어느 정도 계시하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기 아들을 "위로"와 "안식"을 가져다줄 자로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노아가 살았던 시대의 어두운 상태는 "당대에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했던 자"의 믿음과 의를 생생하게 부각시키기에 충분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 6:5-7).

여기에서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얼마나 두려운 장면이었는가! 여기의 모습은 그가 6일 동안의 모든 일을 마치고 바라보셨을 때의 모습과 얼마나 놀랍게 대조되는가! 그때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라는 말씀을 듣는다(창 1:31).

그러나 여기에서는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한 것을 보셨다"는 말씀을 듣는다. 하나님이 억제하지 않으실 때, 죄는 얼마나 무서운 속도로 자라며 또 퍼져나가는가! 그러나 여기에 또 하나의 복된 대조가 있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했던 것과 그로 인한 하나님의 근심에 대한 말씀에 이어, 우리는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라는 말씀을 듣는다(6:8). 💕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가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준비한 오아시스였다. 그리고 그 오아시스 위에 "하나님의 눈"이 거하고 있었다. 악인들에 대하여는, 우리는 단지 여호와께서 "보셨다"는 말씀만을 읽을 뿐이다.

반면 노아를 바라보는 것과 관련해서는, "여호와의 눈"이 그렇게 했다고 언급된다(but Noah found grace in the eyes of the Lord, 한글개역개정판에는 단순히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라고만 되어 있음). 전자의 경우에는 단순히 "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우리는 하나님의 따뜻한 애정과 관심이 담겨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노아라는 인물에 대해 연구하기에 앞서 먼저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라는 표현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자(9절).

여기에서 또 다시 창세기의 새로운 단락이 시작된다. 창세기의 연대표는 5장에서 노아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6장의 첫 구절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뒤를 되돌아본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6:1, 2). 이것은 홍수 이전의 인류의 모습을 묘사한다. 그러면서 창세기 6:5-8에서 두 번째 단락이 종결된다.

그리고 각각의 단락들은 "이것이 아무개의 족보니라" 혹은 "아무개의 족보가 이러하니라" 라는 표현과 함께 시작된다(창 2:4, 5:1, 6:9 등을 참조하라). 그러나 지금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각각의 단락들이 죄의 결과를 보여 주는 그림과 함께 끝난다는 사실이다.

첫 번째 단락은 창세기 4장 끝 부분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야기와 라멕이 소년을 죽였다고 자랑하는 이야기와 함께 끝난다. 두 번째 단락은 창세기 6:1-8에서 홍수 이전의 사람들의 약함을 묘사하는 이야기와 함께 끝난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8). 이것은 우리가 노아에 대해 첫 번째로 듣는 말씀이다. 은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모든 삶의 기초이며,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복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그를 홍수로부터 보존한 것은 그 자신이 가진 덕들(graces)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the grace of God)였다. 바로 이곳이 성경에서 "은혜"라는 보배로운 단어가 나타나는 첫 장소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난 것은 인간의 죄가 그 절정에 이르렀을 때였다.♡

이와 같이 성경은 처음부터 사람 안에 신적 호의(好意)를 부를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하나님은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라고 말씀하셨다(7절).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 그는 마치 가시떨기 사이에 핀 백합 같았다. 그의 경건한 발걸음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불경건한 발걸음과 대조되어 더욱 아름답게 빛났다.

인간적으로 말할 때, 신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동료 성도들로부터 격리를 받을 때조차도 그렇다. 그러나 여기에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한" 악한 세상에서 살았던 한 사람이 있었다(12절).

여기에 세상 전체의 풍조와 맞섰던 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충족성과 그것의 보존하는 능력을 발견한다.♡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