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159)
En Hakkore
창세기 17:1로 다시 돌아가자.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여기에서 하나님이 스스로에 대해 계시하신 것은 이때의 정황과 잘 부합된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처음으로 스스로를 "전능자"로 계시하셨다. 모든 능력을 소유한 자 외에는 아무도 이때의 아브람의 필요에 부응할 수 없었다. 그는 지금 99세였으며, 그의 몸은 죽은 자와 같았다. 사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녀 역시 이미 오래 전에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들이 아들을 가질 것을 바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하나님에게 불가능한 것은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엘 샤다이, 전능한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 "전능자"라는 호칭은 악인의 마음에 두려움..
이것을 또 다른 곤란한 문제에 적용해 보도록 하자. 하나님의 미루심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하나님은 사람의 자아(自我)가 마지막 순간에 도달할 때까지 임하지 않을 것이다. 시편 107편이 바로 이것을 가르치치 않는가?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이 고통에서 건지시고 ...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 여호와께..
우리는 아브람의 일생 가운데 또 한 번의 중요한 위기에 도달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모든 신자들의 조상을 다루실 때 여호와의 비할 데 없는 은혜를 또 보게 될 것이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은" 이래 13년이 지났다(창 17:25을 보라). 이것은 얼마나 의미심장한 숫자인가! 성경에서 "13"은 항상 불길한 분위기 속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불신앙과 배반과 배교와 관련되는 숫자이다. 이 숫자가 처음 나타나는 것은 창세기 14:4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이들이 십이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 십삼년에 배반한지라"라는 말씀을 읽는다. 아브라함의 경우도 그와 비슷했다. 그는 75세 때에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믿음의 길을 걸어가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이후 거의 12년 동안 보..
성경에서 "샘"이 언급되는 다음 구절은 창세기 21:19이다. 이 구절 역시 하갈과 관련된다.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여기의 상징은 얼마나 명백한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요 6:44).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사람의 마음의 눈을 열어 주실 때까지 그는 결코 그리스도를 볼 수 없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 이것은 하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또 이것은 루디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
사래의 잘못된 제안은 아브람의 믿음의 인내를 시험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라고 말씀하셨다(창 12:2). 또 하나님음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라고 말씀하셨다(15:5). 그러나 처음 약속을 받은 후 10년이 지났을 때에도 여전히 그에게는 단 한 명의 자녀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여호와를 믿었다"(15:6). 그리고 그는 지금 그 약속이 성취되기를 기다리기보다, 차라리 자신의 손과 인간적인 경험을 사용하여 스스로 그것을 이루기를 더 좋아한다. 그것은 야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장자의 명분은 에서가 아니라 그에게 주어졌다...
오늘의 이야기와 앞장에서 우리가 다룬 이야기 사이에 나타나는 대조보다 더 큰 대조를 우리는 거의 상상할 수 없다. 아브람은 창세기 15장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나타나지만, 16장에서는 불신앙의 사람으로 나타난다. 그는 15장에서 여호와를 믿지만, 16장에서는 사래의 말을 듣는다. 그는 15장에서 성령을 따라 행하지만, 16장에서는 육체의 힘을 따라 행한다. 이 얼마나 슬픈 불일치인가! 오직 한 사람만이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노라" 라고 말할 수 있다(요 8:29).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13-16절). 여기에 훗날 문자적으로 완전하게 성취된 일곱 가지 예언이 담겨 있다. 여기의 말씀은 아브람의 자손들이 애굽 땅에서 거주할 것이라는 것, 그들이 거기에서 노예로서 섬길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들이 구원을 받아 가나안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 등을 언급한다. 그러면 여기에 나타나는 일곱 가지 예언을 간략하게 요약해..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7절). 이제 아브라함은 자신이 자기 자손으로 말미암아 그 땅을 소유하게 될 것을 알 수 있는 표적을 구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간다.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8절). 이러한 아브람의 질문은 불신앙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다. 다만 하늘의 뭇별을 통해 무수한 자손의 표적을 보도록 허락받은 연후에, 이제 그는 설명을 통한 또 다른 표적 혹은 약속을 받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 앞에 그리스도의 모형을 제시하심으로써 응답하신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된 숫양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