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4/14 (15)
En Hakkore
서론 3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의 주제가 얼마나 다양하고, 성경에서는 그것을 여러 가지 면에서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를 입증해 보이기 위해서, 다음의 성경구절을 예로 들어보겠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구원을 얻었나니"(엡 2:8), "그리스도의 생명으로(즉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으로) 구원되었다"(럼 5:10),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눅 7:50),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받고"(약 1:21),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롬 8:24),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같이"(고전 3:15),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벧전 3:21). 오, 사랑하는이여, 성경은 게으런 자의 책이 아니며 수년간 진지한 연구를 위해 그들의 전 시간을 바치지 않는 자들..
서론 2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구원의 세 가지 단계를 서로 혼동함으로써 이런 구별을 무시한다. 어떤이는 한 가지만 옹호하고, 나머지 둘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말한다. 그 반대인 사람도 있다. 어떤이는 자신들이 이미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지금 구원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한다. 또 어떤이는 구원은 전적으로 미래에 있다고 단언하고 어느 정도는 이미 성취되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둘 다 틀리다. 신앙을 고백하는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어느 곳에서나 '구원' 이라는 가장 포괄적인 용어 중의 하나로서, 예정, 중생, 칭의, 성화, 영화를 포함한 의미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그들은 성경에 사용되어진 '구원'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영역에 대한 개념을 훨씬 더 제한해 왔다. 그 범위를 지나치게 한..
서론 1918년경 우리는 삼중구원이라고 표제가 붙은 작은 책자를 펴냈다. 그 책은 우리가 영적으로 어릴 때 받았던 교훈을 근거로 한 것이다. 초기의 교훈들이 대부분 불충분한 것과 같이, 그것도 역시 결점이 있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연구함에 따라, 이 주제에 대해 더 많은 빛을 받아 왔다. -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는 너무도 무지한 상태에 있다. - 그리고 이 빛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과거에 처음부터 시작하지 아니하고 거의 중간 부분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잘못된 지점에서 시작했던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이제 우리는 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삼중 죄로부터의 구원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죄가 사중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참으로 선하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특별한 빛을 허락하신다. 그러나 ..
4. 많은 사람들이 다가올 진노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이 죄에 대한 증오라고 오해한다 어느 누구도 지옥에 가길 원치 않는다. 만약 지성인이 지옥의 실체를 깨닫는다면, 그리고 지옥의 말할 수 없이 무서운 고통을 어느 정도 믿는다면, 그때 그 마음 속에는 큰 불안감이 일게 될 것이고, 양심을 의식하여 지옥의 영원한 불 속에서 고통받는 것을 상상하면서 마음에 번민이 생길 것이다. 그런 공포는 상당한 시간 동안 지속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영향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 설교자로부터 성령의 감동하심에 대해서 듣게 된다 그리고 자기가 지금까지 그 공토에 사로잡힌 자였다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그는 모든 세세한 것들에서 그리스도를 드높이고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
구원받기 위해 '그리스도에게 나아오지' 않았던 저들에게 그리스도는 지금도 "저주받은 자들이여,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람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런 무서운 말씀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면, 우리의 양심을 찌르고 우리의 마음을 공포로 떨게 하기 때문에, 우리 심장의 고동은 거의 멈추는 듯할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사단이 독자들에게 그들이 이미 그리스도에게 나아온 자들이라고 확신시켜 주고 그들이 잠시라도 그 사실을 의심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함으로써, 그들의 통찰력을 무디게 할터인데 그것은 실로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친구여! 이것은 바로 당신의 불멸의 영혼에 대한 문제라고 깨닫는다면, 그리고 그대가 영원한 시간을 축복받은 자들과 천국에서 보내느냐..
룻기 1:14-18에는 이에 대한 아름다운 본보기가 나타나 있다. 한 타락한 성도인 나오미는 이제 막 먼 나라를 떠나 (상징적으로) 그녀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그녀의 두 자부가 동행하기를 원한다. 나오미는 진심으로 그들이 "비용을 예산"(눅 14:28)하도록 하였다. 즉 그들의 처음 충동대로 따라 행할 것을 즉시 요구하는 대신에 앞으로 부딪치게 될 어려움과 고난을 지적하였다. 오르바에게 이것은 너무도 큰 짐이었다. 그녀의 선함은 (돌밭의 마음을 가진 청중들과 다른 많은 사람들의 그것처럼)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과 같은" 것이었다(호 6:4).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복스럽게도 룻은 "그녀를 붙잡아"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다"(요 6:44). 이 '이끎'은 성령께서 성취하신다. 먼저, 효과적으로 지성에 빛을 비추시고, 둘째로 감정을 소생시키시고, 세째로 죄의 속박에서 의지를 자유롭게 하시고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심으로써 이 일을 행하신다. 성령께서는 저항할 수 없는 은혜의 사역을 통하여 전에는 죄와 허영을 향해서만 움직이던 경향의 의지를 그리스도께로 돌아서게 하신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즐거워할 것이다"(시 110:3)라고 하나님께서 중보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한 인간에게 적용된다 할지라도, 성령께서는 의지의 특권적인 행동을 자유롭게 억제하시지는 않는다. 성령께서는 도덕적으로 설득하시고 복종시키신다. 성령께서는 의지의 죄스런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