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4/10 (15)
En Hakkore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렘 4:14). 이러한 영적 할례 혹은 마음을 씻는 일은 중생의 소극적인 면, 혹은 다른 저술가들이 더 적절히 표현했듯이 "결핍"의 면에 해당된다.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무언가의 결핍이나 보류나 제거를 통해 생겨나는 결과를 의미하는데, 이를 정확히 규정할 수 있는 영어 단어가 없으나(한국어도 마찬가지이다, 역주). "결핍의 면"(the privative side)이 가장 근접한 표현이라 여겨진다. 이것은 사람이 은혜라는 기적의 주체가 될 때에 그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위대한 변화"의 일면 혹은 일부분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최근에 아주 상세히 다룬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길게 다룰 필요가 적다. 하지만 "중생"이라는 넓은 의미의 용어 속에 영적 상황이 포함되어 ..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죄의 죄책과 더러움을 제거하기 위해 고난당하시고 죽으셨을 때에, 그들의 머리되신 그분이 그들의 대표자로서 그 일을 행하신 것이다. 우리가 그분의 죽으심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죄 용서도 깨끗이 씻음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들의 상태가 바로 그리스도의 상태와 동일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곧 죄의 권세로부터 구원받았고 아버지의 선명한 사랑으로 인정받는 상태라는 것이다. 지난 번 강론에서 이미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길갈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행한 일은 교회의 할례를 보여 주는 하나의 모형이었다.🌱 첫째,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법적으로 할례를 받았다. 십자가에서 "육의 죄의 몸[혹은 전체]를 벗어버렸다. 즉 하나..
첫째, 모든 신자는 법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할례를 받았다. 할례가 예표하는 것은 죄의 오염을 제거하는 것인데, 그 일이 신자들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죽으심에서 법적으로 그들을 위해 이루어진 것이다. 할례는 죄를 죽이는 일 전체를 상징하는데, 이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백성을 위해 죽으심의 효과요 열매이다.🍇 "너희도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골 2:10-11). 구속받은 그분의 백성들이 그들의 언약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진정 법적으로 할례를 받았다는 복된 사실을 여기서 보게 된다. 이 할례를 그 모형이 되는 구약의 육체적인 할례와 구별하기 ..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기다릴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갈갈이라 하느니라"(수 5:8-9). 이상하게도 주석가들은 "애굽의 수치"라는 표현의 의미에 대해 해석이 분분한데, 대다수는 그것을 이스라엘이 애굽인들의 종이었을 때에 받은 낙인(烙印)을 지칭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 수치는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을 크신 권능으로 애굽에서 건지시고 홍해를 안전히 건너게 하시고 거기서 바로와 그의 군대를 궤멸시키셨을 때에 이미 영원히 사라졌다. 아니다. "애굽의 수치"란 오히려 출애굽기 32:12에 기록된 애굽의 조롱을 빗대는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께 이스라엘이 거부..
요단 강을 이적적으로 건넌 일은 이스라엘이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사랑에로 회복되었음을, 여호와께서 그들과의 언약 관계를 재개하셨음을, 죽음의 장을 건넜으니 이제 심판이 이루어졌음을, 그들의 선조들에게 내리신 선고가 이제 완결되었음을 보여 주는 분명한 증거였다.👍 요단 강을 건넌 이적은 이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그분의 백성으로 받으셨다는 명확한 증거였고, 따라서 그들은 이제 다시 그들의 몸에 그 언약의 증표를 받기에 합당한 신이 되었다. 할례는 과연 아브라함 언약의 표징이었다(창 17:11). 할례는 자연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 여호와와 언약을 맺은 백성으로서 다른 모든 민족과 구별되며 여호와께 순종해야 할 특별한 의무를 지닌 자들이라는 표시였다. 그것은 그 언약 중에 약속의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보장..
창세기 17:9-11에 비추어볼 때에 이는 정말 심각한 일이었다. 이스라엘이 어째서 그렇게 긴 세월동안 이처럼 핵심적인 예식을 행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상당한 추측이 있어왔다. 토마스 스코트는 "할례를 행하지 않은 이유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존 길(John Gill)은 "수시로 움직여야 하는 처지 때문에, 언제 그들이 천막을 치고, 얼마 동안 머물며, 언제 천막을 다시 걷어야 할지가 항상 불확실했으므로 할례를 행하기가 매우 불편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장 대중적인 설명은 그들의 죄악된 소홀함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절대다수가 그랬다 하더라도 그들 중에 할례를 시행한 경건한 이들이 있지 않았을까? 전면적인 불신앙이 원인이었다면, 어째서 모세가 그런 위중한 죄에 대해 책망했..
3. 인간이 하나님께 부적합하기 때문에 중생이 필요하다(10) 모든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며 사단의 왕국과(요일 5:19) 흑암의 권세 아래 처해 있는 이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의 인간은 그리스도의 왕국의 백성이 아니며 천국을 맞이할 수도 없다. 인간은 "연약하여"(롬 5:6) 이 가공할 상태에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이러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은 초자연적으로 '부름'을 받는다(벧전 2:9) 그 부름은 그 하나님의 선택된 자들을 사단의 세력에서 효과적으로 구원해내며 또한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왕국으로 옮겨 놓는다(골 1:3). 이 하나님의 부르심 또는 은혜의 사역이 성경에서는 다양하게 불리워지고 있다. 때로는 "중생"(딛 3:5) 또는 신생으로, 때로는 조명(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