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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108] 헌신의 상징들(여호수아 5:1-15)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108] 헌신의 상징들(여호수아 5:1-15)

En Hakkore 2024. 4. 10. 11:40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죄의 죄책과 더러움을 제거하기 위해 고난당하시고 죽으셨을 때에, 그들의 머리되신 그분이 그들의 대표자로서 그 일을 행하신 것이다. 우리가 그분의 죽으심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죄 용서도 깨끗이 씻음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들의 상태가 바로 그리스도의 상태와 동일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곧 죄의 권세로부터 구원받았고 아버지의 선명한 사랑으로 인정받는 상태라는 것이다.

지난 번 강론에서 이미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길갈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행한 일은 교회의 할례를 보여 주는 하나의 모형이었다.🌱

첫째,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법적으로 할례를 받았다. 십자가에서 "육의 죄의 몸[혹은 전체]를 벗어버렸다. 즉 하나님의 율법과 정의의 면전에서 완전히 영원히 제거되었다. 골로새서 2:11이 가르치는 복스러운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다.

하나님의 택한 자들에게는 그들과 연합한 자요 그들을 대표하는 존재이신 그들의 머리가 계셨고, 따라서 그가 죄에 대해 죽으셨을 때에 그들도 죄에 대해 죽은 것이다. 따라서 그 진리를 새기고 그 사실을 근거로 안식을 누리는 것이 믿음의 임무요 특권이다.🫰

지난 강론에서 우리는 죄를 죽이는 복음의 방법을 살펴보았지만 교황주의자들의 육신적인 기법들과 얼마나 복된 대조를 이루는지 모른다.

죄를 죽이는 일은 우리가 주 예수님의 죽으심에서 그와 연합하는 데에서 비롯되며, 믿음이 그 덕성과 효능을 받아 누리는 것이다. 모든 참되고 영적인 죄 죽임의 샘이 십자가에서 열렸다.💙

하나님은 그분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위격과 사역의 존귀를 지극히 귀중히 여기시므로, 그리스도와 그 샘에서 벗어나는 모든 이탈 행위는 죄가 우리에게와 우리 속에서 저질러놓은 각양 상처들에 대해 치료하고자 육신의 생각이 고안해낸 온갖 방법들은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구원을 위해서는 죄의 책임으로부터는 물론 죄의 권세와 오염으로부터(예, 죄의 존재로부터도 마찬가지이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보아야 한다.👍

둘째,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백성과 연합하신 그 머리시며, 동시에 필수적인 혹은 생명을 주시는 그들의 머리시라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육체의 몸에 붙어 있는 머리가 그 모든 지체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에 생명과 움직임을 부여하듯이(뇌의 한쪽 부분이 마비되면 몸의 한쪽 부분이 함께 마비되므로), 그리스도께서도 그분의 신비한 몸, 즉 교회의 지체들에게 생명과 영향력을 부여하신다.

그분은 그분의 영을 그들의 마음속에 내려보심으로 그 일을 행하신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시고 값주고 사신 그것을 성령께서 그들에게 전달하시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그들은 영적으로, 또한 체험적으로, "할례"를 받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가 다룰 주제의 두 번째 대지를 대하게 되었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 2:28-29).

이 두 절 속에는 깊은 중요한 도리들이 많이 있으나, 오늘날, 특히 세대주의자들과, "예언"에 치중하는 저술가들이, 그것들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 구절들을 상세히 해설하거나 혹은 심지어 사도의 논지의 과정 같은 것을 다루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논외의 일일 것이다.

우리로서는 그 구절 속에서 현재 우리가 다루는 주제와 직접 관련된 내용만을 다룰 수밖에 없다.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육체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여기서 진정한 "할례"에 대해 명확한 가르침을 본다. 하나님이 가장 인정하시는 할례는 내적인 할례라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이 사실조차도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서 그들의 가르침에도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여러분 중에서도 영적인 "할례"가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 명확한 이해를 가진 분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아마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우리가 여기서 그저 여호수아서의 주제들을 그저 전체적으로 대략 살피고 속히 지나가지 않고, 이 주제를 취하여 살피는 일이 더더욱 필요하다. 성경을 조금이라도 주의를 기울여 읽어온 모든 분은 인지하였겠지만, "중심의 진실함을 원하시는"(시 51:6) 여호와께서는 구약 시대에서조차도 이스라엘에게서 그저 할례의 외형적인 의식에 순종하는 것보다 훨씬 더한 것을 요구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신 19:16)라는 말씀은 너무도 분명하여 오해의 여지가 없다. 레위기 24:41과 예레미야 9:26의 마지막 부분에서 확실히 드러나거니와, 여호와께서는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한" 상태 때문에 이스라엘을 징벌하셨다.

스데반 역시 당시의 유대인들이 동일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음을 책망했다(행 7:51).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렘 4:4)는 것은 여호와의 정당한 요구이셨다.

존 길(John Gill)은 "여호와께서 이를 행하라고 사람들에게 권고하신다"는 것을 인정하며(안타깝게도 그분을 사모하는 많은 이들이 이를 행하기를 거부한다만), 이렇게 올바로 덧붙이고 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그가 그 일을 행하시겠다고 그들에게 약속하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외형적인 겉모양만이 아니라 그 속의 진실을 요구하셨다. 외형적이며 의식적인 것만이 내적이고 도덕적인 순결을 요구하신 것이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248

●골로새서 2장 11절.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 레위기 26장 41절.
"나도 그들에게 대항하여 내가 그들을 그들의 원수들의 땅으로 끌어 갔음을 깨닫고 그 할례 받지 아니한 그들의 마음이 낮아져서 그들의 죄악의 형벌을 기쁘게 받으면"

● 예레미야 9장 26절.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살면서 살쩍을 깎은 자들에게라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