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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Hakkore
도엑의 고발 에돔 사람 도엑이 다윗이 비밀리에 아히멜렉을 찾아가 식량과 골리앗의 칼을 얻어 간 사실을 고한 것은 사울이 자기 신하들에게 독한 말을 쏟아낸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삼상 22:9-10). 도엑은 제사장이 다윗에게 강요를 받았던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말은 제사장이 사울에 대한 다윗의 모반에 동조했다는 인상을 주었을 뿐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만약 우리가 악의적으로 진실의 일부라도 억누르고 교묘하게 뒤틀린 말을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이웃에 대해 실제로 그리고 치명적으로 거짓 증거를 하는 셈임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의견을 말하라는 요구를 받을 때(만약 애초부터 그것이 어떤 선한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대개 그런 말은 부정적인 것이 될 수 밖에 ..
순종을 배워감 다윗은 모압 왕에게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말했다. 우리의 주인공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에 동의하는 것을 배워가고 있었다. 주님에 대한 실제적 순종은 오직 경험의 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다. 그것에 대한 이론은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의 실제는 우리 마음의 모루위에서 망치질을 당해야 한다. 성경은 우리의 영광스러운 주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히 5:8). 다윗이 했던 이 말은 또한 그가 하나님의 지시를 기다릴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우리가 늘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
부모를 모압에 의탁하다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은 다윗이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삼상 22:3-4). 나는 위의 구절들에서 제시된 내용이 여기에 기록된 내용에 대한 열쇠를 제공한다고 확신한다. 사무엘상 22장 1절을 통해 우리는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아둘람 굴에 있는 다윗에게 내려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6장 1절을 통해서는 그들의 집이 베들레헴에 있었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당시 그곳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삼하 23:14). 따라서 다윗의 가족들은 그리로 돌..
앞 장에서 우리는 다윗이 아들람 굴에 머물렀던 것에 대해 살펴보았다. 사무엘하 23장에 기록되어 있는 한 사건이 이 무렵 우리의 영웅의 영적 삶에 대해 흥미로운 빛을 비춰준다.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내려가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한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그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그때에 블레셋 사람의 요새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니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
하나님은 그분의 영광과, 또한 그 백성의 충만한 최종적인 복을 언제나 중요시 여기시며, 그것들이 그분의 손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의 기이한 지혜와 놀라운 은혜로 그 둘을 서로 뗄 수 없도록 하나로 묶으셨으므로, 이루기 위해 모든 일이 합력하여 그 각각을 이루신다.🫰 그는 그분의 백성과 그들의 복을, 그분의 영광을 구성하는 요소로-"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사 46:13)-삼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나안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언약궤가 열두 지파에 앞서서 행진했다는 것이 얼마나 적절했는지를 잘 볼 수 있다. 그 땅에야말로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 중에서 자기 자신을 충분히 드러내 보이실 곳이었으니 말이다. 여호와께서 바로와 그의 휘하의 애굽 사람들 앞에서와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무엘상 22장의 서두는 우리에게 복음서에 나오는 내용을 놀랍게 제시한다. 첫째, 다윗에게 왔던 사람들의 수가 얼마나 적었는지 보라.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1절). 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숫자인가! 이스라엘 전체의 무리와 비교한다면 한줌밖에 안 되는 무리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계실 때 그분의 형편이 이보다 나았던가? 도대체 몇 사람이나 그분의 십자가 밑에 서고, 그분의 무덤 앞에서 울고, 그분이 죽음의 빗장을 깨뜨리고 나오셨을 때 그분을 반겼던가? 도대체 몇 사람이나 그분을 따라 베다니로 가고, 그분이 승천하시는 모습을 바라보고, 다락방에 모여 그분이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렸던가? 그리고 오늘날의 형편은 어떠한가? 이 세상의 무수히 많은 사람들 중 복음을 접하기라도 한 사람은 얼마나 되는..
놀랍고 복된 예표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고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삼상 22:1b) 아, 참된 사랑은 그 사랑의 대상이 처해 있는 외적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이 다른 누군가와 참으로 결합되어 있다면, 그의 운명이 어떻게 바뀌든 그것은 우리의 사랑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세상의 눈으로 본다면, 다윗은 위험에 처해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는 동굴에서 초췌하게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그를 향해 친절을 베풀고 자신들의 흔들림 없는 충성을 보여 주어야 할 더 큰 이유가 되었을 뿐이다. 다윗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 고통스러운 시련을 통해 누가 자신의 가짜 친구이며 누가 그렇지 않은지 알게 ..
아둘람 굴에서(사무엘상 22장) 앞 장 말미에서 신앙을 잃어버렸던 자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 무렵에 다윗 자신이 썼듯이,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신다"(시 34:19). 그러나 그분은 자신이 적합하다고 여기시는 때에 그렇게 하신다. 다윗이 왕위에 오를 시간은 아직 이르지 않았다. 하나님이 능력을 발휘해 사울을 파멸시키고 자신의 종을 그의 모든 적들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은 그분에게는 간단한 문제였을 것이다. 그리고 의심할 바 없이 이것은 본래 활력적인 사람이었던 다윗이 훨씬 더 바라는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하나님은 이새의 아들의 왕권을 휘두르게 하시기 전에 행하실 다른 계획들을 갖고 계셨다. 우리는 충동적이고 성급할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서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