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The Life of David 36] 유다로 돌아감(사무엘상 22-23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36] 유다로 돌아감(사무엘상 22-23장)

En Hakkore 2024. 2. 17. 10:40

부모를 모압에 의탁하다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은 다윗이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삼상 22:3-4).

나는 위의 구절들에서 제시된 내용이 여기에 기록된 내용에 대한 열쇠를 제공한다고 확신한다. 사무엘상 22장 1절을 통해 우리는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아둘람 굴에 있는 다윗에게 내려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6장 1절을 통해서는 그들의 집이 베들레헴에 있었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당시 그곳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삼하 23:14). 따라서 다윗의 가족들은 그리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다윗은 자신의 부모가 자신의 방랑에 따르는 고통을 함께 겪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그는 신중하게 그들을 위한 은신처를 찾았다. 그가 극심한 시련의 한 가운데서 부모를 공경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복되다.

이것은 요한복음 19장 26-27절에 기록된 내용을 아름답게 예시해 준다.

분노한 사울이 다윗을 대적하는 동안 다윗의 부모는 이스라엘 땅 어느 곳에서도 안전하지 않았다. 그 무렵 다윗의 마음의 깊은 동요와 고뇌는 "다윗이 굴에 있을 때에 지은 마스길(교훈) 곧 기도"라는 머리글이 달린 시편 142편에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내 영이 내 속애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오른쪽을 살펴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그들은 나보다 강하니아다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1-7절).💕

마지막 구절에서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확신을 발견하는 것은 복된 일이다.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기를 청하나이다." 다윗은 어째서 그의 부모를 모압 사람의 보호하에 맡길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일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블런트(J. J. Blunt)가 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의도하지 않았던 일치들'(Undesigned Coincidence in the Old and New Testament)이라는 아주 놀라운 책에서 몇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대답하고자 한다.

"사실 사울은, 당시 그가 어떤 상황이었든, 모압 사람들과 전쟁을 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주변의 모든 민족들 - 암몬 족, 에돔 족, 그리고 소바의 왕들 - 과도 전쟁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울의 적이 곧 다윗의 친구가 되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그 개별 민족들이 속해 있던 땅의 오래 거주민들에게 이스라엘의 투사로 간주되었을 뿐이다. 그는, 사울이 그에 대해 갖고 있는 적대감이 잘 알려져 있었음에도 그런 혐의를 떨쳐 버릴 수 없었기에 가드 왕 아기스 앞에서 미친 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다윗이 자기 가족을 모압 사람들의 위험한 보호에 의탁하려 했을 때, 어떤 선호(選好)의 원리가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일까? 그것은 단시 우연의 문제였을까? 그 사건이 사무엘서 전체에서 나타나는 다윗의 이야기와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만약 룻기와 어쩌면 그것의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는 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짧고도 아름다운 역사적 기록은 우리에게 다윗이 자기 부모의 은신처로 다른 곳보다 모압을 택한 이유를 보여 준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기록을 통해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할머니(룻-역주)가 실제로 모압사람이었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룻은 오벳의 어머니였고, 오벳은 이새의 아버지였다. 게다가, 룻이 기룐과 결혼했을 때 그의 형제인 말론과 결혼했던 또다른 모압 여인 오르바는 나오미와 룻이 떠난 후에도 모압 땅에 남아 있었고. 그녀의 죽은 남편의 가족과 친족이 모압을 떠날 때 눈물로 그들을 전송했다(룻 1:14).

그때, 혹은 그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 그녀 자신과 그녀의 후손과 친구들이 여전히 살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다윗은 모압 사람들에게 얼마간이라도 룻의 후손들에 대한 호의가 남아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약간의 수고를 통해, 다윗이 그런 계획을 실행에 옮겼던 것이 얼마간 타당했음을 깨닫게 된다. 억지로 이야기를 꾸며내는 사람이라면 단순히 두 세대 전에 있었던 그의 모압 혈통과 관련된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이새가 모압 땅에 은신한다는 절묘한 방책을 마련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혹은 그런 방책을 마련했을지라도, 아마도 그 방책이 역사의 진실과 관련해 제공하고자 하는 증거가 헛것이 되지 않기 위해 몇 가지 수단을 마련하고 그것들에 여러분의 주의를 집중시키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당시의 정황이, 그것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시도조차 없이, 간단하게 확언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우연의 일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성경의 다른 책들을 의지해야 한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1 p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