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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32] 2부 사울을 넘어서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32] 2부 사울을 넘어서

En Hakkore 2024. 2. 16. 12:44

아둘람 굴에서(사무엘상 22장)

앞 장 말미에서 신앙을 잃어버렸던 자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 무렵에 다윗 자신이 썼듯이,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신다"(시 34:19). 그러나 그분은 자신이 적합하다고 여기시는 때에 그렇게 하신다.

다윗이 왕위에 오를 시간은 아직 이르지 않았다. 하나님이 능력을 발휘해 사울을 파멸시키고 자신의 종을 그의 모든 적들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은 그분에게는 간단한 문제였을 것이다. 그리고 의심할 바 없이 이것은 본래 활력적인 사람이었던 다윗이 훨씬 더 바라는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하나님은 이새의 아들의 왕권을 휘두르게 하시기 전에 행하실 다른 계획들을 갖고 계셨다. 우리는 충동적이고 성급할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서둘지 않으신다. 우리가 이 교훈을 일찍 배울수록, 우리는 좀더 큰 마음의 평화를 누릴 것이고, 좀더 일찍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게"(시 37:7) 될 것이다.

"하나님은 단순히 다윗을 높이는 것 이상의 계획을 갖고 계셨다. 그분은 사울과 이스라엘의 악이 제 모습을 드러내게 하실 작정이셨다. 그분은 다윗에게 그 자신의 마음의 특성에 대해 얼마간의 이해를 얻게 하시고, 자신의 것보다 큰 지혜에 복종하는 것을 배우게 하실 작정이셨다. 또한 그분은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의 마음을 시험하시고, 그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아둘람 굴이야말로 이스라엘에서 유일하게 참된 탁월함과 영광을 간직한 자리임을 알아차리는지 살펴보실 작정이셨다"(B. W. Newton).

만약 다윗이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과 관련해 보다 깊은 교훈을 배워야 했다면, 그에게는 추가적인 훈련이 필요했다. 사랑하는이여, 이것을 통해 배우라. 하나님의 늦추심은 혈과 육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분의 완전한 지혜와 무한한 사랑으로 인한 것이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합 2:3).

아둘람, 기도의 굴방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삼상 22:1a).

여전히 도망자 신세였던 다윗은 블레셋 땅을 떠났다. 그리고 아마도 베들레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을 한 커다란 지하굴에서 은신처를 찾았다. 사울과 피에 굶주린 그의 부하들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해 우리의 영웅은 굴속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이것이 성경이 히브리서 11장 38절("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에서 언급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늘의 높은 은혜를 입은 자들이 때로는 기묘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요셉은 감옥에,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애굽의 벽돌 굽는 가마 곁에, 다니엘은 사자 굴에,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 바울은 파도치는 바다 위 뱃전에 처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내가 방금 말한 원리를 강력하게 예시해 준다. 그러므로, 비록 지금 우리가 경건하지 않은 자들처럼 좋은 집에서 살고 있지 않더라도, 그것에 대해 불평하지 말라, 우리의 집은 하늘에 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이때 다윗이 어떻게 처신했는지 배우는 것은 복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먼저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성경은 게으른 사람을 위한 책이 아니다. 거기에 담겨 있는 수많은 보물들은 마치 땅속 깊은 곳에 쌓여 있는 값진 광석처럼 부지런히 그것을 찾는 사람들에게만 모습을 드러낸다.🤞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잠 2:1-5).

시편의 머리글들을 살펴보면, 우리는 그것들 중 두 편이 바로 이 시기에 이스라엘의 위대한 시인에 의해 쓰였음을 알게 된다. 시편 34편과 142편은 사무엘상 22장 첫 구절에 빛을 비춘다.

다윗의  지하 은신처는 기도를 위한 아주 훌륭한 골방이 되었다. 그곳의 고독은 기도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스펄젼(C. H. Spurgeon)이 잘 말했듯이, "다윗이 동굴에서 했던 것처럼 그의 왕궁에서 기도했더라면, 그는 말년에 그토록 큰 불행을 초래했던 행동을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영적인 이들은 이 시점에서 시편 57편과 142편으로 돌아가 그 내용을 상고하리라고 믿는다. 그 시편들에서 다윗의 마음의 움직임과 관련된 무언가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특별한 시련의 시기에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기도를 드리는 법과 관련해 가치 있는 교훈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시편 57편을 신중하게 읽는다면, 우리는 동굴의 침침한 빛 가운데서 그 기도를 시작했으나 점차 그곳을 빠져나와 한낮의 밝은 빛 속으로 걸어나왔던 사람의 뒤를 좇을 수 있을 것이다. 신자의 영혼의 경험이 종종 그러하다.

아마도 시편 142편은 시편 57편보다 앞서 지어졌을 것이다. 확실히 그것은 우리 앞에 영혼의 깊은 고뇌에 빠진 사람의 모습을 보여 준다. 시편 142편에서 제시되는 내용과 사무엘상 20장과 21장에 실려 있는 이야기 사이의 놀라운 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그 근심에 찬 도망자가 요나단을 찾아가고, 아히멜렉에게 거짓말을 하고, 가드에서 미친 체하는 모습을 보았다. 인간에게 소망을 두는 것은 헛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교훈을 철저하게 배우기 전에 종종 그런 고통스러운 경험과 쓰라린 실망을 겪어야만 한다!

시편 142편에서 우리는 이새의 아들이 자기를 위해 참으로 선한 일을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에게 돌아서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1-2절).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우리가 상관해야 하는 분께 우리의 마음을 철저히 토로해야 한다. 이 시편의 마지막 구절을 주목하라. 거기에서 다윗은 자신의 고통을 다 털어놓은 후 다음과 같이 외친다.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7절)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 은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삼상 18:1, 16). 그리고 이제 그들의 사랑은 시험에 처했다. 이제 그들에게는 다윗을 위한 그들의 사랑을 입증할 기회가 주어졌다. 지금은 다윗이 인기를 얻지 못하는 때였다.

그는 궁중에서 내쫓겼고, 사울을 피해 달아나는 자가 되었다. 그는 동굴에 숨어 있었다. 지금은 다윗에 대한 그들의 헌신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하는 때였다. 오직 참으로 그를 사랑하는 자들만이 왕의 미움을 받는 추종자에게 자기들의 운명을 맡길 수 있었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1 p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