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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232] 속임수 중의 존귀(수 9:1-27)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232] 속임수 중의 존귀(수 9:1-27)

En Hakkore 2024. 8. 22. 21:16

"그들과 조약을 맺은 후 사흘이 지나서야 그들이 이웃에서 자기들 중에 거주하는 자들이라 함을 들으니라"(수 9:16).

이는 다른 각도에서 본 것일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속임수는 곧바로 발각된다는 것이 하나의 일반적인 법칙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향해 참된 마음을 쏟는 자들에게는 그가 그들이 속임을 오래 당하도록 버려두시지 않는다는 것도 똑같이 사실이다.

그들은 밤이 아니라 낮에 속한 자녀들이요, 따라서 길가에 놓인 장애물들에 걸려 넘어져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주님은 이렇게 선포하셨다.

"나는 세상이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에는 그분을 "믿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그분에게 맡기며, 그분의 계명대로 행하며, 그분이 남기신 모범을 쫓아가는 것을 뜻한다.👌

몇 가지 잘못이 있기는 하지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입성한 이후 줄곧 그렇게 행해 왔다. 여호와께 순종했었고, 모든 일에서 그가 계시하는 뜻을 준수했었다.

물론 일시적으로 하나님께 뜻을 구하지 못한 적도 있고, 그로 인해서 기브온 주민들에게 속아 넘어가기도 했으나, 그들의 삶의 주도적인 과정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에 있었으므로 그는 금방 그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셨다. 주께서 우리를 얼마나 부드럽게 대하시는지!

"이스라엘 자손이 행군하여 셋째 날에 그들의 여러 성읍들에 이르렀으니 그들의 성읍들은 기브온과 그비라와 브헤롯과 기럇여아림이라"(수 9:17).

이는 앞절에 대한 설명으로서, 이스라엘의 성급한 조치가 얼마나 불필요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잠시 동안이라도 자기들의 판단과 결정을 유보했더라면 그 기브온 주민들이 결코, 먼 나라에서 온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자연스레 알게 되었을 것이다.

여기의 "이스라엘 자손"은 이스라엘 회중 전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본진이 길갈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수 10:17). 이는 이스라엘 병사들과 각 지파의 수장들을 지칭한다 하겠다.

십중팔구 그들이 이 먼 거리로 나아온 것은 그들이 받은 정보를 조사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여기의 "셋째 날"은 그들이 여정을 시작한 때로부터 사흘이 지났다는 뜻이 아니라(길갈로부터 그 여러 성읍들까지의 거리가 하룻밤이면 닿을 수 있을 정도였으므로(수 10:9)) 기브온 주민들이 인근의 성읍에 속한 자들이라는 것이 처음들을 때로부터 사흘이 지났다는 뜻이다.

이 사실이 분명 확인되었다. 성령께서 다시 "셋째 날"에 이라는 표현을 강조하신 것을 여러분이 이런 세부적인 사항을 주의 깊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이 점에 대해 좀 더 소상히 말씀드리겠다.

요한복음 8:12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을 따라오는 자들이 그냥 단순한 빛이 아니라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유념해야겠다. 그런데 바로 여기 여호수아 9:16-17에서 정확히 그것을 모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겠다.

"셋째 날"이라는 표현은 부활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여호수아와 그의 동료들은 믿음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에 따라 처신했고, 여기서 성령께서 그 사실을 입증해 보이신다.

그들은 하나님과 끊임없는 교제를 누리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는 특권을 누리는 깨어 있는 심령으로서 처신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자연의 수준에서, 감각에 의존하여 행동했었다. 그들은 한 동안 육신적인 처신에 다시 빠져 들어갔었다. 그런데 "셋째 날에" 부활의 땅으로 다시 돌아가서 참된 빛 가운데에서 사물을 보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인 역시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으므로, 이제부터는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고"(롬 6:4),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4) 는 부름을 받고 있다. 곧 하늘의 원리들에 다스림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하면, 자기가 가야 할 길에 대한 분별과 지혜가 없게 되고, 그릇된 본성적인 판단에 따라 처신할 수밖에 없어진다. 눈을 떠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때에 비로소 빛으로 충만해질 것이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