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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5] 그리스도인의 출발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5] 그리스도인의 출발

En Hakkore 2024. 4. 17. 10:47

제 1장 구원에 이르는 신앙(이 신앙의 모조품들 4)

이번에는 훨씬 더 믿기 어려운 경우에 대하여 말해 보자. 여기 이상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기꺼이 자기들의 구주로 모시려고 하면서도, 자기들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일과 그의 명령을 지키는 일, 그리고 그의 율법에 지배받는 일 등은 마지못해서 하는 척 한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자기들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또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다.

여기 나의 주장의 뒷받침해주는 성경의 증언이 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주인이신 그리스도에게 복종할 것을 고백하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많은 능력을 행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그들은 그들의 신앙을 행위로써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구원에 이르는 신앙은 아니다.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신앙이 어느 수준까지 성장할 수 있는가 하는 것과 그 신앙이 구원에 이르는 신앙과 얼마나 유사한가 하는 것을 말하기란 불가능하다. 구원에 이르는 신앙은 그리스도를 그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데,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신앙도 역시 마찬가지이다(요 2:23,24).

구원에 이르는 신앙은 성령의 역사하심에서 출발한 것인데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신앙도 마찬가지이다(히 6:4). 구원에 이르는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산출된 것인데, 구원에 이르는 신앙은 주의 재림을 준비하도록 격려하는데,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어리석은 처녀와 슬기로운 처녀들의 이야기를 보면,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마 25:7)라고 기록되어 있다. 구원에 이르는 신앙은 기쁨을 동반하는데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신앙도 역시 마찬가지로 기쁨을 동반한다.(마 13:20)

아마 어떤 독자들은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들을 주의깊게 생각해 보고 그것들은 매우 혼란스럽고, 한편 우리를 매우 괴롭힌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이 논문이 독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기를 빈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영혼을 소중히 여긴다면, 이 논문을 가볍게 대강 읽고 넘어가지 말기를 바란다.♡

만일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신앙이 실재한다면(분명히 실재한다). 나의 신앙에 대하여 나 자신도 속을 가능성이 얼마나 많은가! 성령께서 아무 까닭없이 우리에게 이 점에 관하여 그토록 명백하게 주의를 주시는 것이 아니다.

"미혹한 마음에 미혹되어서..."(사 44:20).
"너의 중심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옵 3).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눅 21:8).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갈 6:3).

사단이 그의 교묘한 술책과 능력을 사용하여 가장 악착같이, 그리고 가장 성공적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방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구원에 이르는 신앙을 가지고 있지 못한데도 가지고 있다고 믿게끔 하는 것이다. 사단은 어떤 다른 계략으로보다도 이 계략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많이 속인다.

모두 논문을 예증으로 삼으라.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사단에 의해 눈이 멀어서 이 글을 읽고 이렇게 말할까. "이건 나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니야. 내 신앙은 구원에 이르는 신앙임이 분명해!. "바로 이런 식으로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이 예리하게 지적하는 것을 외면하게 하고, 그의 포로들로 그들의 불신앙 속에 안주하도록 한다.

사단은 사람들 마음 속에 역사하여 거짓된 안도감을 가지게 하고, 그들을 설득하여 그들이 지금 방주 안에 안전하게 있다고 착각하게 하며, 그들을 유도하여 위협의 말씀에 대해 무지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주의를 돌려 단지 안락한 약속으로만 향하게 한다.

사단은 가장 유익한 권면, 즉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 13:5)는 말씀에 대해 주의하는 것을 단념케 한다. 바로 지금 이 말씀을 주의깊게 생각해 보라.♡

이 첫 단락을 끝맺으면서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신앙의 특별한 결점들과 그것이 구원에 이르는 신앙에 못미치는 점 등을 지적하려고 한다.

첫째로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지옥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지만 자기 자신들로부터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들은 미래의 진노로부터는 구속받기를 바라면서도 자기의 뜻과 자기 만족 등은 계속 보유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주님은 결코 명령받으실 분이 아니다.♡

당신은 주님의 조건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아야만 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전혀 구원받지 못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실 때 죄로부터 구원하시며, 죄의 권세, 죄의 오염, 그리고 죄책으로부터 구원하신다. 죄의 본질은 나 자신의 길을 고집하는 것이다(사 53:6). 그리스도의 구원이 임하는 곳에서는 자기 뜻을 고집하는 정신이 정복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순수하고 능력있고 지속적인 갈망과 결심이 심어진다.♡

두번째로, 그리스도를 분리하기 때문에 결코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구주로서는 모셔들이기를 원하지만, 그리스도를 그들의 주인으로 모셔서 그분께 그들 자신을 복종시키기는 꺼린다. 설령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실 준비가 됐다 하더라도 절대적인 주인으로서는 아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주인이시거나 아니면 전혀 주인이 아니시다.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삶의 어떤 영역에서는 그리스도의 주권을 제한하고 있다. 그들의 세상적인 정욕과 육체적인 관심이 요구하는 자유는 너무나 멀리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주권이 간섭할 수도 없을 정도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평안은 탐내면서도 그리스도의 '멍에'는 회피한다. 그들에 대해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눅 19:27)

세째로, 그리스도께 의로운 자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겠지만 성화된 자라는 인정을 받기엔 좀 못미치는 사람들의 부류가 있다. 그들은 성화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긴 하지만 그들의 "온 영과 혼과 몸"(살전 5:23)이 온전히 거룩하게 되는 일에는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이 거룩해지는 것, 즉 교만과 탐심을 억제하는 것은 오른쪽 눈을 빼내어 버리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지체들에 대한 끊임없는 절제 따위에는 재미를 못 느낀다.

그들은 순화하는 분(Refiner)으로서 그들에게 오신 그리스도, 그리고 그들의 정욕을 태워버리기 위해서 오신 그리스도, 또 그들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 그리고 그들의 낡은 본성의 틀을 완전히 용해하고, 그들의 영혼을 녹이며, 그들은 새로운 옥토에서 살게 하시려고 오신 그리스도 그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기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는 일과 자기 십자가를 날마다 지는 일은 너무나 끔찍스러워 몸이 움츠러드는 일이다.

넷째로,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대제사장으로서 봉사하시는 것은 원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왕으로서 다스리는 것은 원치 않는 사람들이 있다. 만일 당신이 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확고하고 강경하며 확실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잘 모르는 주님의 특별한 계명과 교훈을 지키라고 요구하면 그들은 즉시 '그것은 율법주의 입니다!' 라고 소리지르거나, 혹은 '우리는 모든 면에 완전할 순 없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홉 개의 의무조항을 지키라고 하면 그들은 즉시 화를 낼 것이다.

아홉 개의 의무 조항을 적어 놓고 지키라고 하면 수행하겠지만 아마도 열 번째의 의무조항을 지키라고 하면 즉시 화를 낼 것이다. 왜냐하면 그 계명은 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그만 두라고 하기 때문이다. 많은 설득을 당한 후에 나아만은 요단강에 목욕을 하러 들어 갔다.

그러나 그는 기꺼이 림몬의 당을 내던지려고 하지는 않았다(왕하 5:18). 헤롯도 세례 요한의 말을 달게 듣고 요한을 "보호하였으나"(막 6:20) 헤로디아의 일로 책망하는 요한의 말은 헤롯의 폐부를 찌르는 듯했다. 많은 사람들이 극장 가는 일이나 카드놀이 하는 것 등은 기꺼이 포기하려고 하는데 진 밖의 그리스도에게 나아가는 것은 꺼려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기꺼이 진 밖의 그리스도에게 나아가려고는 하는데 그들이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정욕을 부인하는 것은 싫어한다. 사랑하는이여,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의 계명을 순종하는 일에 있어서 자꾸 보류하는 습관이 있다면 당신도 지옥으로 가고 있는 노중(路中)에 있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