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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Hakkore
"내 아들아 주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기 말고, 주께서 질책하실 때 낙심하지 마라"(히 12:5) 모두가 징계를 감사히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징계를 받아도 마음이 굳어지는 사람이 있고, 그것에 짓눌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대부분 고난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 달려 있습니다. 시련이나 고난 자체에는 유익한 것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면 우리는 그것을 통해 유익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회초리로 연단된 자는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히 12:11) 따라서 우리는 예민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징계를 받아들여야 합니다.본문은 전혀 다른 두 가지 위험을 경고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며, 둘째는 징계를 받을 때 절망하는 것입니다. 이 둘은 우리가 항상 조심해야 할 극..
성경에 등장하는 전혀 다른 네가지 경우의 징계의 사례입니다.1. 다윗 다윗은 극심한 죄를 노골적으로 저지른 사악함 때문에 회초리를 맞은 경우입니다. 그는 자만하고 스스로 의롭게 여겼기 때문에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다윗이 생애 초기와 말년에 부른 두 노래를 살펴보면 그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젊은 시절에 자신만만한 태도(삼하 22:22-25)를 보면 하나님께서 그를 실족하게 하신 것도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23장에서 다윗의 태도는 크게 변합니다. 5절에서 다윗은 비통한 심정으로 자신의 실패를 고백합니다."비록 내 집은 하나님 앞에 그렇지 않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나와 영원한 언약을 맺어주셨다"(삼하 23:5. KJV). 또 다윗은 10-12절에서는 승리와 영광을 오직 여호..
"내 아들아, 주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주께서 질책하실 때 낙심하지 마라"(히 12:5) 영어에는 징계로 번역된 파이데이아(paideia)를 제대로 표현하는 단어가 없습니다. 원래 이 단어는 '어린아이'란 뜻을 지닌 파이디온(paidion)의 변형으로, 예수님께서는 이 단어를 부드러운 어조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헬라어의 아이(paidion)와 징계(paideia)도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습니다.사실 징계보다 자녀 훈육이 더 올바를 표현입니다. 이 단어에는 하나님께서 자녀를 교육하고 양육하고 훈련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징계는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이 담긴 행동 교정인 것입니다.징계가 하나님께서 잘못을 저지른 자녀를 고치려고 치시는 회초리인 건 맞지만, 모든 징계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형벌과 징계의 구분은 우리가 어떤 종류의 고난을 겪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형벌과 징계를 구분하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1. 형벌과 징계를 내리실 때 하나님의 역할이 다릅니다. 형벌은 하나님께서 재판관으로서 내리시지만, 징계는 아버지로서 내리십니다. 형을 선고하는 일은 재판관의 역할이며, 형벌은 죗값이 있는 자에게 부여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치러야 할 죗값은 이미 모두 그리스도에게 전가되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결코 사법적인 형벌이 부과되지 않습니다."그가 나무에 달려 자기 몸으로 친히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다"(벧전 2:24)하지만 그리스도인이 형벌이나 정죄를 받지는 않더라도(롬 8:1) 여전히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 수는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가족원으로서 세상 사람과 전혀..
자족함은 우리를 근심과 조바심, 탐욕과 이기심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또 자족함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기쁨으로 누리게 해주기도 합니다. 반대로 자족함이 없는 자의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그러나 부하게 되려는 자들은 유혹과 올무와 많은 어리석음과 해로운 욕망에 빠지는데, 이런 것들은 사람을 파멸과 지옥 형벌에 떨어지게 한다.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니, 어떤 자들은 그것을 탐하다 믿음에서 벗어나 괴로움으로 자신을 찔렀다"(딤전 6:9-10).자족함은 우리 마음이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취할 때 생기는 산물입니다. 우리 영혼이 모든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 의지가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때 생기는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매사를 옳게 처리하시며 지금도 우리 ..
자족함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어째서 나를 이렇게 만드셨습니까? 라고 반항하며 투덜거리는 것과는 반대입니다.자족하는 사람은 자신의 운명에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현재 처한 환경보다 더 나빠지지 않은 것에 감사하는 자입니다. 자신의 필요보다 더 많은 것을 탐내지 않고 하나님께서 여전히 자신을 돌보아주심에 기뻐하는 자입니다. 지금 가진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는 자입니다(히 13:5).자족하는 데 방해되는 치명적인 것 중 하나가 탐욕입니다. 탐욕은 현재의 만족감을 조금씩 파먹으며 서서히 파괴해버리는 암덩어리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탐욕을 조심하고 경계하라(눅 12:5)고 엄숙히 명령하신 것입니다. 탐욕만큼 음흉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
"나는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 안에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가치조차 없다고 여긴다"(롬 8:18)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은 우리에게 훨씬 크고 영원한 무게를 이루어줍니다. 현재가 장래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이것에 관해 철학적으로 논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며,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고 믿을뿐입니다.어떤 이들은 자신의 경험과 느낌과 관찰을 근거로 이 사실을 부정하기도 합니다. 확실히 때로는 고난이 그저 우리를 괴롭게 할 뿐이며 반항심과 불만만 더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육신을 정화하려고 고난에 처하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고난은 우리의 새 사람을 유익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더욱이 고난은 우리에게 다가올 영광을 준비하도록 도와줍니다. 고난은 우리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