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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3] 그리스도인의 출발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3] 그리스도인의 출발

En Hakkore 2024. 4. 17. 10:46

제 1장 구원에 이르는 신앙(이 신앙의 모조품들 2)

어떤 사람은 성경에 함유된 모든 진리를 그가 알게 되는 한 믿을수도 있고, 오히려 순수한 그리스도인들보다 성경의 진리를 더 잘 알 수도 있다. 더 많은 시간을 성경 연구에 들임으로써 그의 신앙은 순수한 그리스도인들이 아직 다뤄보지도 못한 많은 진리들을 소유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의 지식이 더욱 증대되면 될수록 그의 신앙도 점점 더 풍성해진다.

이런 종류의 신앙으로 그는 사도 바울이 다음의 성경구절에서 언급한 신앙에까지 발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한 것을 다 믿으며"(행 24:14). 그러나 이 구절이 그런 사람의 신앙이 구원에 이르는 신앙이라고 증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생각을 반대하는 예가 아그립바 왕의 경우에서 나타난다.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행 26:27). 여기서 당신이 만일 단순한 역사적 신앙을 넘어서는 신앙을 보이라고 요구한다면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제시할 수밖에 없다.

성경은 사람들이 신앙을 가질 수 있는데 그 신앙은 구원에 이르는 신앙이 아니긴 해도 인간 본성의 산물이 아닌 성령으로부터 온 신앙이라고 말한다. 그 신앙은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그 요소들은 교육이나 자력에 의하여 산출될 수 없는 것이다. 그 두 가지 요소는 신령한 비췸과 믿도록 마음을 움직이는 신적인 능력이다.♡

사람이 거듭나지 않아도 하늘로부터 조명을 받을 수도 있고 영적인 일에 마음을 기울일 수도 있다. 히브리서 6:6은 그 사실을 입증해 준다. 거기서 우리는 배교자들에 대하여 읽는다.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 사람들은 "비췸을 얻었었으며" 그것은 그들이 신령한 것을 맛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 신령한 것에 마음을 기울였고 그것을 환영했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들은 "성령에 참예한 자"들이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도 신적 기원을 가진 신앙을 소유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신앙 특유의 능력을 경험하며 신앙을 삶의 토대로 삼을 수도 있다. 그들의 신앙의 기반은 신적 증거(Divine testimony)일수도 있으며 그들은 부동의 확신을 가지고 그 기반 위에서 쉬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믿고 있는 내용들이 합리적이고 확실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바로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 존재의 기반인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성경을 믿는 신앙은 신적인 신앙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러한 신앙을 가졌었는데 그들이 출애굽하여 홍해로부터 건짐을 받은 후 광야생활 동안에 그런 신앙을 가졌었다. 그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출 14:31). 그러나 그들 중 다수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졌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맹세하였다.(히 3:17, 18)

이 점을 좀더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성경을 자세히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졌다고 표현한 부분들을 진지하게 연구해야 한다.

예레미야 13:11을 보면 하나님께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띠가 사람의 허리에 속함같이 내가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내게 속하게 하여"라고 말씀하시는데 하나님께 '속하는 것'은 그 분을 '의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왕하 18:5,6을 보라).

그런데 동일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이 악한 백성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하고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여 다른 신들을 좇아 그를 섬기며 그에게 절하니 그들이 이 띠의 쓸데없음같이 되리라"(렘 13:10).

견고한 의뢰를 나타내는 또 다른 단어로 '머무르다'(stay)라는 말이 있다.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stay, 사 10:20-K.J.V는 stay,lean 등으로 구분하여 번역하였으나 우리말 성경은 모두 '의지하다,' 또는 '의뢰하다' 등으로 번역하였다...역자 주).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다"(stayed upon 사 26:3). 또 다음과 같은 구절도 있다. "(그들이) 거룩한 성 백성이라 칭하며 그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지하면서(stay upon)"(사 48:2).

이것이 구원에 이르는 신앙이 아니라고 누가 의심하랴? 아, 그러나 너무 속단하지는 말자. 이 동일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악하며 네 목의 힘줄은 무쇠요  네 이마는 놋이라"(사 48:4)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또 다른 표현으로 '기대다'(lean)라는 말이 있다.

이 단어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뿐만 아니라 의존하는 것을 나타내는 데에도 쓰인다.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leaning upon)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고"(아 8:5).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도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

다른 누구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그 가능성을 인정하고 계신다. "야곱 족속의 두령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 곧 공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청컨대 이 말을 들을지어다...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leanupon the lord)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미 3:9,11).

육적이고 세상적인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떠받쳐 주시는 그리스도를 의지하면서(leaning upon) 자기들은 지옥에 떨어질 수 없으며 어떠한 '재앙'도 자기들 위에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확신은 무서운 착각이다.

성경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심각한 절망감과 위험에 싸여 있을 때,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한(rest upon)일이 서술되어 있을까? 아, 진리는 허구보다도 낯설다. 그런 케이스가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 속에 묘사되어 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대군을 이끌고 와 유다의 성읍들을 포위하였을 때 히스기야 왕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 좇는 온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 하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는 자가 저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저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는 자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대하 32:7)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인하여 안심하니라(rested themselves upon)"(8절)도 기록되어 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이며 그 말씀을 의지한 백성들은 실상 하나님 자신을 의지한 셈이었다. 그러나 15년도 채 못되어 이 백성들은 이방인들보다 더 악해졌다(대하 33:9). 따라서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는 태도도 그 자체로서 중생의 증거가 될 수 없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