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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6] 그리스도인의 출발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6] 그리스도인의 출발

En Hakkore 2024. 4. 17. 10:48

제 1장 구원에 이르는 신앙(신앙의 본질 1)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 오히려 그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잠 30:12).

많은 사람들은 이 구절이 하나님께 용납되기 위해 그리스도를 의지하기보다는 다른 어떤 것, 즉 세례(침례). 정교인자격. 자기 자신의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선행 등을 의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나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구절을 방금 언급한 사람들의 부류에게만 제한하는 것은 커다란 실수이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는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4:12) 라는 말씀도 비단 영원한 행복을 확보하기 위해 그들 자신이나 혹은 그들로부터 나온 어떤 것을 의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그리스도와 무관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만이 속고 있는 영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 잘못된 신앙의 소유자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죄인은 하나님께 칭찬받을 만한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고 배워온 사람들이 오늘날 기독교계에 많이 있다. 그들은 자연인이 이룩한 최상의 도덕적 성취가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누더기'라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다.

그들은 다음의 성경구절들을 매우 자주 듣는다.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딛 3:5). 따라서 그들은 피조물의 어떤 행위로도 하늘나라를 획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확신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만이 홀로 어떤 죄인이라도 구원하실 수 있다는 말과 그 사실이 신경(creed) 속에 고정된 항목으로 명시되어 있다는 말을 빈번히 듣는다. 그리고 사람이나 사단 그 어느 것도 그들을 그리스도로부터 떼어낼 수 없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여기까지는 아주 좋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사람들은 또한 그리스도가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기는 하지만, 신앙이 그 분 안에서 인격적으로 작용하는 한에서만 유일한 길이 된다고 배워오고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만 그가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말이다.

지난 이십 오년 간, 대부분의 '복음적인 설교'의 강조점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앙 위에 놓여졌다. 그리고 복음적인 노력들은 대부분 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얻는 일에 전적으로 경주되었다. 그 결과 대단한 성공이 따라왔다.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그들이 예상한대로 반응을 보여 그리스도를 그들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하게 밝히고 싶은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심각한 잘못을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앞서 말했듯이 그리스도와 무관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만이 속고 있는 사람이고 또 그런 자들만이 잠언 14:12과 30:12에 묘사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심각한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가운데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믿음도 있다는 것을 신약성경을 주의깊게 읽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발견할 수가 있다. 요한복음 8:30은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라고 말한다. 그런데 마가는 "많은 사람이 그분 자신을 믿더라"(believe in him)라고 말하지 않고 "많은 사람이 그에 관한 것을 믿더라"(believe on him)라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사람들이 거듭나지 못했고 또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요한복음 8장을 샅샅이 읽어 볼 필요도 없다. 44절을 보면 주께서 '믿은 자들'을 가리켜 '그들은 그들의 아비 마귀에게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계시고, 59절에 보면 그들이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어려운 난제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난제를 만든 셈인데,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신앙은 필연적으로 구원에 이르는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앙 중에는 구원에 이르는 신앙도 있고 한편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신앙도 있다.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그러면 이들도 구원받았을까? 어쩌면 어떤 얼뜨기 같은 설교자들과 전도자들은 '네, 분명히 받았습니다'라고 대답할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곧이어 나오는 다음의 말씀에 주의하자.

"그러나 ...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요 12:42,43).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에 혹 이 사람들이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자기 영혼 속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그리스도를 위해 그들의 세상적인 지위와 현재의 관심사, 그리고 개인적인 명성과 그밖의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어떤 것들을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비록 자기들을 하늘나라로 인도해 주는 그리스도의 완성된 구속사역을 의지한다고 떠들어도, 여전히 그들의 죄악가운데 사는 사람들이다.♡

아마, 여러분은 가르침받기를, 이 세상 사람 모두를 오직 두 부류의 사람들, 즉 신자와 불신자로 나눌 수 있다고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구분은 오해이며 심각한 실수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땅의 거민을 세 가지로 나눈다.

1)유대인 2)이방인 3)하나님의 교회(고전 10:32). 이러한 분류가 훨씬 현저하게 나타나는 때는 모세시대보다 후시대인 왕국시대였다.

첫째 부류는 '이방인' 혹은 이방민족이었는데, 그들은 이스라엘 국가 밖에 있었고 가장 큰 부류를 형성하였다. 오늘날도 이 부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수백만이 있으며, 그들은 바로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쾌락을 더욱 사랑하는' 현대인이다.

둘째 부류는  이스라엘 나라이며 그들을 또 둘로 세분화한다. 그 이유는 로마서 9:6이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라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대다수가 하나님과 형식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이름만의 하나님의 백성들이었다. 이 부류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이름을 겉으로만 고백하는 형식상의 신자들이다.

세째로, 그들의 부르심과 소망과 기업이 하늘에 있는 이스라엘의 신령한 남은 자들의 부류가 있었다.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바로 오늘날의 순수한 그리스도인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적은 무리"(눅 12:32)들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