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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38] 에녹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38] 에녹

En Hakkore 2024. 3. 15. 10:15

이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것의 성격과 관련하며 마지막 두 가지 즉 그러한 동행의 시작과 절정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자.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창 5:21, 22).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기 이전에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는지 여부는 언급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여기의 므두셀라를 선물로 받은 것이 그를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로 이끈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이런 일은 매우 흔한 경우이다. 부모로서의 책임이 우리를 하나님에게 더 간절하게 매달리게 만들지 않는가!

므두셀라라는 이름은 에녹이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계시를 받았음을 강력하게 암시한다. 므두셀라는 "그가 죽은 후 그것(즉 홍수)이 임할 것이라"를 의미한다. 어쨌든 므두셀라는 이름 속에 신적 계시가 담겨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를테면 하나님은 에녹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었다. "네가 그 아이를 보느냐? 세상은 그 아이가 있을 동안에는 존속할 것이지만, 그 이상은 아니니라. 내가 세상에 심판을 내릴 것이니라. 하늘의 창들이 열리고 큰 깊음의 샘들이 터져 모든 인류가 멸망을 당할 것이라."

이러한 메시지는 에녹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 주었겠는가? 이것을 오늘날의 경우로 바꾸어 생각해 보라. 하나님이 당신에게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이 세상이 당신의 아이가 살아 있는 동안에만 존속할 것임을 알려 주셨다고 상상해 보라.

"네 아이가 살아 있는 기간이 곧 세상이 존속할 기간이니라, 그 아이가 죽을 때, 세상이 멸망을 당할 것이니라." 당신에게 이런 메시지가 전달된 결과는 무엇일 것인가? 그 아이가 얼마나 빨리 죽을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당신 앞에 언제든지 세상이 멸망을 당할 가능성이 놓여 있다.

아이가 아플 때마다 당신은 세상의 멸망과 직면할 것이다. 더욱이 당신이 구원받지 못했다고 상상해 보라. 당신은 깊은 근심에 사로잡히지 않겠는가? 당신은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할 절박한 필요를 느끼지 않겠는가? 당신은 즉시로 영적인 일에 몰두하기 시작하지 않겠는가? 에녹 역시도 그랬을 것이다. 어쨌든 므두셀라가 태어난 때부터 에녹은 세상의 모든 매력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히 11:5).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에녹이 365년을 살았을 때, 하나님은 그를 자신에게로 취하셨다. 마치 그가 자신의 운명을 완성한 인간의 모범인 것처럼 그리고 죄가 세상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모든 인생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을지를 보여 주는 본보기인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이러한 표현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캐롤 박사(Dr. B. H. Carroll)의 창세기 주석을 인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 이것은 옛 라틴어의 불규칙동사로서,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위로 데려갔다' 혹은 '가로질러 데려갔다' 이다.

하나님이 그를 가로질러 데려가셨다. 그러면 무엇이 가로지르셨나? 죽음을 가로지르셨다. 죽음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을 나누는 강이다. 여기에 그 강을 통과하지 않은 한 사람이 있다. 에녹이 그 강 앞에 도달했을 때, 하나님이 그를 가로질러 데려가셨다.

하나님이 그를 옮기시고 이전시키셨다. 하나님은 그를 취하시고, 가로질러 데려가셔서, 반대쪽 강변에 놓으셨다. 에녹은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교제하다가, 한 순간 다른 세상으로 옮겨져 하나님을 눈으로 보며 교제하게 되었다.

아, 보배로운 믿음이여! 이제 믿음은 보는 것으로 바뀌었으며, 소망은 한 순간 현실이 되었다. 이와 같이 믿음의 삶은 하늘의 완전한 교제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에서 그 절정에 이른다. '그들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계 3:4)."

마지막으로 우리는 에녹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사신 모든 신자들의 모형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죽을)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고전 15:51, 52).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겨진 것처럼, 주님이 오실 때 이 땅에 남아 있는 그의 백성들 역시 그러할 것이다. 이 땅의 짧은 기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우리의 분깃이 되게 하자. 그리고 당신과 나도 에녹처럼 죽음의 문을 통과함이 없이 영광의 나라로 옮겨지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기를 소망한다. 만일 그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라면 말이다. 💕

Arthur W. Pink 창세가 강해 p90

■ 참고)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여기에서도 우리는 우리 주님의 유일성을 발견한다. 오직 그만이 하늘에 올라가셨다(요 3:13). 이것은 그 자신의 권리로 말미암은 것이며, 그 자신의 권능을 행사하신 결과이다. 반면 에녹에 대하여는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라고 언급된다(창 5:24). 또 엘리야에 대해서도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라고 언급된다(왕하 2:11). 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성도들 역시도 "취하여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