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창세기 강해 37] 에녹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37] 에녹

En Hakkore 2024. 3. 15. 10:1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창 5:24).

여기에서 특별히 "동행"(walk)이라는 단어를 다시 한 번 주목해 보라. 이 한 단어가 이 사람의 삶과 성품에 얼마나 큰 빛을 비추는가! 또 그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계시하는가!

아담의 다른 모든 자손들과 마찬가지로, 에녹 역시도 본질적으로 진노의 자녀였고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단절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가 창조주와 화해하는 날이 왔다. 그러면 그러한 화해의 원인은 무엇이었나? 히브리서 11:5이 그에 대해 답을 준다.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그러면 그는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나? 다음 절이 그에 대해 답해 준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6절). 그의 화해의 유효한 원인은 믿음이었다.♡

다시 반복하거니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라는 짤막한 한 문장은 그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말해 주는가! 그는 죄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러나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받았으며 거듭남으로 신적 본질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 그는 지극히 높은 자와 뜻이 같은 사람이 되었으며, 그로 말미암아 그와 교제하기에 적합한 자가 되었다.

계속해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도록 하자. 그가 하나님과 동행한 첫 번째 결과는 은혜 안에서 자라는 것이었다. 걷는 것은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함축한다. 두 말할 필요 없이 에녹의 인생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인생이었다.

하나님과 동행한  300년의 삶의 첫 부분과 끝 부분을 생각해 보자. 그것의 끝 부분은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나 그것의 첫 부분과 같을 수 없었다. 그는 분명 죄에 대해 더 많이 미워하고, 자신에 대해 더 겸비한 마음을 품었을 것이다.

그는 분명 자신의 무력함을 더 많이 의식(意識)하는 가운데 하나님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할 필요성을 더 크게 느꼈을 것이다. 또 그는 분명 하나님을 더 많이 향유하는 가운데 더 강한 사람으로 그리고 영광에서 영광으로 자랐을 것이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두 번째 결과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에 대해 말하며 추론하며 숙고하며 들으며 책을 읽는 것과 그를 아는 것에 전혀 별개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기독교적 삶의 실제적이며 경험적인 측면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와 함께 걸어야 하며, 그와의 살아 있는 접촉을 해야 하며, 그와 더불어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어야 하며, 그와 더불어 교통해야 한다. 이와 같은 300년의 동행하는 삶 이후에, 에녹은 하나님의 탁월하심을 더 깊이 깨달으며, 그의 완전하심을 더 풍성하게 향유하며, 그의 영광을 더 진지하게 사모하게 되었을 것이다. 💕

그가 하나님과 동행한 세 번째 결과는 깊게 뿌리박힌 기쁨과 평안이었다. 에녹의 삶은 틀림없이 최고로 행복한 삶이었을 것이다. 그토록 하나님과 동행한 그에게 도대체 어떻게 불행이 가능할 수 있단 말인가? 그토록 하나님과 동행한 그에게 도대체 어떻게 우울하며 침울한 삶이 가능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 23:4).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우리의 삶 가운데 보호(保護)를 보장한다. 지극히 높은 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할 것이다. 자기 우편에 하나님을 가진 자를 해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가 하나님과 동행한 네 번째 결과는 그가 하나님을 위해 증언한 것이었다. 유다서 14절과 15절을 보라.

"아담이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이것은 크게 강조될 필요가 있다. 여기의 순서는 결코 바뀔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순서이다. 하나님을 위해(for) 증언할 수 있기 전에, 먼저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with) 동행해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 사역" 가운데 많은 부분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산물이 아닌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그런 사역은 심판 날 "나무와 풀과 짚"으로 드러날 것이다(고전 3:12).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보다 선행되어야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라, 그리고 오직 그만을 섬기라"(마 4:10, 한글개역개정판에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라 다만 그를 섬기라"라고 되어 있음).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