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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41] 노아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41] 노아

En Hakkore 2024. 3. 15. 10:17

히브리서 11:7의 노아의 믿음에 관련해서...

넷째로, 우리는 여기에서 노아의 믿음의 증거를 배운다.

그것은 "방주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 행함이 없는 믿음은 생명이 없는 믿음이며, 단지 이름뿐인 믿음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이 아니다(딛 1:1). 야고보는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라고 반문한다(약 2:12).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반면, 야고보는 믿음이 어떻게 정당화되는지 혹은 사람이 자신의 믿음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스스로를 신자라고 고백한다. 그러면 나는 그런 고백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나의 행함과, 나의 발걸음과, 하나님을 위한 나의 증언으로 말미암아 증명한다. 히브리서 11장을 읽어보라. 그러면 당신은 거기에 기록된 모든 경우에 믿음이 행함에 의해 증명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벨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 자신의 믿음을 나타냈나? "더 나은 제물"을 드림으로써 그렇게 했다. 에녹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 자신의 믿음을 나타냈나? 하나님과 동행함으로써 그렇게 했다. 노아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 자신의 믿음을 증명했나? 방주를 준비함으로써 그렇게 했다.

믿음은 그 소유자에게 대가를 치르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나타낸다. 방주를 준비하는 것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매우 수고롭고 오래 걸리는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분명 매우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항상 그랬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었으며, 그의 믿음은 그에게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는 것을 의미했다. 아브라함에게 믿음은 사랑하는 독자를 희생제물로 바치는 것을 의미했다.

당신은 당신의 믿음을 표현하기 위해 무슨 대가를 치르는가?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가? 값비싼 대가를 치르지 않는 믿음을 별 가치가 없는 믿음이다. 💕

다섯째로, 우리는 여기에서 노아의 믿음의 결과를 발견한다.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하나님은 항상 자신에 대한 참된 믿음을 귀하게 여기신다. 우리는 특별히 노아의 믿음의 결과는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대리적인 구원 같은 것은 없다.

어떤 부모도 자신의 믿음으로 자녀의 영혼을 구원하기를 바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는 자신의 믿음과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은 많은 실례(實例)들이 나온다.

아브라함의 믿음 때문에, 하나님은 그의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다. 라합이 정탐꾼들의 말을 믿었기 때문에, 그녀의 가족 전체가 멸망으로부터 보존되었다. 신약에서도 우리는 이런 경우를 종종 발견한다. 친구들이 침상에 누인 채로 주님 앞에 데려온 중풍병자를 생각해 보라.

그와 관련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께서 그들(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마 9:2). 백부장의 믿음 때문에 그의 종이 고침을 받았으며, 가나안 여자의 믿음 때문에 그녀의 딸이 온전하여졌다.

이와 같이 노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집"이 구원을 받았다. 이것은 우리의 교훈을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닌가? 이것은 구원받지 못한 자녀를 가진 오늘날의 많은 부모들에게 큰 격려를 주지 않는가? 바울이 빌립보 간수에게 한 말을 생각해 보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마 16:31). 우리는 이 말씀에 의지해 하나님께 탄원할 수 있지 않는가?

여섯째로, 우리는 여기에서 노아의 믿음에 있어, 우리는 먼저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묻고자 한다.

믿음은 무엇인가? 로마서 14:23에서 우리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라는 말씀을 읽는다. 믿음은 죄의 반대이다. 그러면 죄는 무엇인가? 요한일서 3:4에서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영감(靈感)된 대답을 발견한다.

  "죄는 불법이라." 죄는 단순한 행동 이상(以上)이다. 그것은 하나의 태도이다. 죄는 하나님의 통치에 반항하는 것이며, 그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다. 죄는 영적 무정부 상태이다.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자기 의지와 자기 주장을 따르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이 "할지니라" 라고 말씀하실 때 "나는 하지 않겠노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이  "하지 말지니라!" 라고 말씀하실 때 "나는 하겠노라! 라고 말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자기의지와 자기주장을 따르는 것이다. 반면 믿음은 모든 측면에서 죄와 반대이다. 믿음 역시 단순한 행동 이상(以上)이며, 하나의 태도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통치에 순복하는 것이며, 그의 권위에 굴복하는 것이며, 그의 계시된 의지(意志)에 순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곧 자신을 포기하고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믿음의 권속에 속한 자들과 악한 자의 자녀들을 나누는 거대한 심연이 있다.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며, 그들은 보는 것으로 행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며, 그들은 자기만족을 위해 산다. 우리는 영원을 위해 살며, 그들은 순간을 위해 산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필연적으로 세상을 정죄한다. 그들의 삶은 불경건한 자들이 따르는 삶의 방법에 대한 무언(無言)의 책망이며, 그들의 죄를 폭로하는 증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여기에서 노아의 믿음의 상급을 배운다.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믿음은 현재적인 복을 가져다준다. 믿음은 하나님의 인정(認定)의 웃음을 가져다준다. 믿음은 마음을 평안으로 채우며, 생의 수레바퀴에 기름을 칠한다. 그리고 믿음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나 믿음의 최고의 상급은 이 땅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들어가는 기업(基業)을,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소유하지 않는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약속의 땅에서 단지 나그네로서 "거류"(居留)했을 뿐이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상속자요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 이다(롬 8:17).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기업에 들어가는 것은 아직 미래에 남아 있다. 지금 우리는 그것을 향유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그것을 현세적으로 향유하며 즐기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만유의 상속자"로 세움을 받았다(히 1:2).

그가 그의 소유에 들어간 연후에, 우리는 그와 함께 그것에 참여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노아와 함께 "믿음에 의한 의의 상속자" 이다(heirs of the righteousness which is by faith, 한글개역개정판에는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라고 되어 있음). 💕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