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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344] 대단원(사무엘하 24장)

En Hakkore 2024. 3. 10. 11:21

하나님 앞에 선 중재자

이제 나는 그 중에서도 특히 "하나님 앞에 선 중재자"라는 이 마지막 특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만약 우리가 우리 앞에 있는 사건들의 순서에 특별히 주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사건들의 관계 속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를,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에게 가장 도움이 될 만한 값진 교훈들 중 하나를 놓치게 될 것이다.

모든 신자가 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다른 이들을 위한 탄원을 통해 여호와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멀리 갈 필요가 없다. 그들은 필요한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이 경우에 다윗이 보였던 징표들을 갖고 있지 않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과 어긋나게 살아가거나(요일 3:22), 우리의 삶속에 들어 있는 죄에 대해 슬퍼하거나 그것을 고백하지 않는다면,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이다(시 66:18).🥺

나는 여러분이 내가 어느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건들의 "순서"에 자주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에 지치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종종 아주 중요한 교훈들은 그런 식으로 반복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사건의 경우에 마찬가지다. 만약 우리가 다른 이들을 위한 성공적인 탄원자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다윗의 효과적인 중재에 선행된 것이 무엇인지에 적절하게 주목해야 한다.

첫째,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 들어 있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그 죄를 겸손하게 시인하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

둘째, 우리는 그분의 의로운 징계를 온순히 받아들이면서 그분의 징계의 손길에 전적으로 굴복해야 한다.🫡

셋째, 우리는 그분의 지혜와 신실하심과 선하심에 대해 분명한 확신을 갖고서 우리 자신을 그분의 손에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

넷째, 우리는 그분의 크신 은혜를 실제로 확신하면서 믿음으로 그것을 붙들고 그분 앞에서 탄원해야 한다.🫡

엄중한 심판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전염병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명이라"(삼하 24:15).

무엇보다도, 우리는 죄에 대한 징벌이 얼마나 정확한지에 주목하자! 다윗은 회개했지만 여전히 교정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죄는 공적인 것이었기에 그것에 대한 응보 역시 그러해야 했다. 그러나 참으로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회초리가 그분의 종이 지은 죄의 원이었던 곳에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다윗은 자신의 백성들의 많음을 맹목적으로 사랑했다. 그리고 이제 그 많은 백성들은 급격하게 줄어들어야 했다! 하나님은 다윗이 자신의 만족을 위해 계수했던 이들 중 칼날에 맞아 죽을 이들을 계수하셨다.

그가 헤아렸던 사람들의 20분의1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었다(9절 참조). 이로써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다윗의 오만함이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우리가 우상화하거나 자랑하는 것이 무엇이든, 대게 하나님은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시거나 그것이 우리의 십자가가 되게 하신다"(Thomas Scott).

그러나 우리가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회초리가 직접 백성들 자신에게 떨어졌다는 점이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분쟁하고 계신 대상이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1절).

"이것은 엄중한 시간이었음에 틀림없다. 전염병은 어둠 속에서 퍼져나갔고, 낮에는 파멸이 일어났다. 파괴하는 천사가 활발하게 움직였다. 아무도 그를 당해낼 수 없었다. 나라 전역에서 죽음이 그 희생자들을 찾고 있었다.

아무도 다음에 누가 희생될지 알지 못했다. 병자들은 치유할 아무런 치유책도 없었다. 제 아무리 긴급한 간구도 사랑하는 이의 목숨을 지켜내지 못했다. 모든 기쁨이 사라졌다. 일상적 삶을 추구할 모든 힘이 고갈되었다.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셨고, 그것도 아주 힘 있게 그렇게 하고 계셨다. 전에 그분은 자신의 팔을 펼치셔서 이스라엘을 위해 힘 있게 역사하셨다. 지금도 그분의 팔이 펼쳐지기는 했으나, 이번에 그것은 그들에게 치명적인 방식으로 펼쳐져 있었다.

그분이 부당하다고 비난할 수 있는가? 아니다. 비록 그들을 계수했던 다윗의 행동이야말로 이런 환난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기는 했으나, 그들은 징계를 받아야 마땅했다. 그들 모두는 무력했다. 너무나 무력했다.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의 자비 안에 있었다"(C. F. Stuart)🌱

우리는 이 엄중한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가장 오만한 죄인들을 얼마나 쉽게 낮추시는지에 대한 실례를 볼 수 있다.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사 2:12).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그분의 오래 참으심에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인가!

뻔뻔스럽게 지존자와 맞서는 담대한 반역자들은 자기들이 그분의 놀라운 인내심에 얼마나 많은 것을 빚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그분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이가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만약 천사들의 힘이 단 하루 단 한 번의 가격(加擊)만으로 칠만 명을 죽일 만큼 무서운 것이라면, 전능하신 창조주의 힘은 어떠하겠는가?" 그분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옳게 묻고 계시다.

"내가 네게 보응하는 날에 네 마음이 견디겠느냐 네 손이 힘이 있겠느냐"(겔 22:14)
"내가 너를 해치우는 날에, 너의 심장이 배겨 나겠느냐? 네 두 손에 계속 힘이 있겠느냐? 나 주가 말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루겠다."(새번역)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3 p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