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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345] 대단원(사무엘하 24장)

En Hakkore 2024. 3. 11. 11:17

후회하시는 하나님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전염병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이 "정하신 때까지"라는 표현은 삼일의 마지막을 의미할 수도 있고, 혹은 많은 이들이 생각하듯이 첫날의 저녁 제사 때를 의미할 수도 있다. 그 말의 히브리어는 문자적으로는 "정해진 모임의 때까지"(till the time of appointed assembly)로 번역될 수 있는데, 그것은 저녁 예배를 위해 이스라엘 백성이 한데 모이기로 구별된 시간을 의미한다.

저명한 학자인 헹스텐버그(Henstenberg)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무엘하 24장 16절에 따르면, 그 재앙은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지속되었다. 우리는 이 '정하신 때'를 '저녁 제사를 위한 모임'으로 이해해야 한다(왕상 18:29, 26;, 왕하 16:15과 비교해 보라)."

그러나 그 히브리어의 의미와는 별도로 이런 해석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정하신 때까지"라는 표현은 "아침부터"라는 표현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둘째, 다음 절에 나오는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라는 진술 때문이다.

마지막에 인용한 구절은 우리에게 여호와께서 자신이 선포하신 심판을 끝까지 이행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짧은 기간에조차 이스라엘 백성 중 칠 만 명이 죽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 기간은 단축되었다.

심판은 하나님의 "낯선 일"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은혜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분의 은혜는 결코 그분의 거룩하심의 요구를 무시하거나 정의의 요구를 밀어내지 않는다.🫰 그리고 아주 복되게도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특성의 이런 두 가지 위해한 측면들의 합류점을 발견한다.

그 황폐케 하는 전염병을 멈춰 서게 한 것은 저녁 제사의 달콤한 향기였다! 이것은 신약 성경에서 아무런 가리개나 상징 없이 서술되는 내용에 대한 얼마나 놀라운 예시인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다양한 특성들이 혼합된 조화를 이루며 빛을 발하는 장소다.🫰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삼하 24:16a).

먼저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오해를 제거하자. 진리의 적들은 여호와께서 뉘우치셨다는 이 언급(그리고 창 6:6과 삼상 15:11 등과 같은 유사한 구절들)을 붙잡는 데 굼뜨지 않다.

그들은 이런 언급을 이유 삼아 하나님은 피조물처럼 변덕스러우며 마음의 변화에 굴복하신다는 결론을 내려왔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의 불변성(the immutability of God)만큼이나 분명하게 드러나는 내용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 23:19).👍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욥 23:13).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말 3:6).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

어떤 말이 이보다 더 분명하고, 강하고, 모호하지 않을 수 있는가! 만약 그런 분명한 선언들이 그것들이 말하는 내용 그대로가 아니고 그 표면적 의미대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면,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은 시간낭비에 불과하다.

성경이 그 자체와 모순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겉보기에 서로 모순되는 듯 보이는 것들 사이에 완벽한 조화가 존재한다는 것은 영적인 마음을 지닌 사람 누구에게나 아주 명백하다.

우리가 그것들의 완벽한 일치를 식별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자신의 무지를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온전한 빛을 주시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동안 우리를 당혹스럽게 했던 구절들은 보다 분명한 의미를 지닌 다른 구절들에게 복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불변성을 분명하게 확증하는 그런 선언들은 아무런 한정도 없는 것으로 간주해야 하며, 반면에 하나님이 그분의 마음을 바꾸신다고 말하는 듯 보이는 구절들은 상대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취급되어야 한다고 여겨야 한다.

만약 어떤 이들이 이것을 의심스러운 요구라고 여긴다면, 나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묻고자 한다.

"사무엘상 15장 29절의 분명한 선언('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은 우리로 하여금 사무엘상 15장 11절('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을 자연스럽지 않은 의미로 해석하도록 강요하지 않는가?"

확실히 성령께서는 같은 장에 나오는 그 두 구절들의 범위 내에서 스스로 모순된 말씀을 하지 않으실 것이다!

사실 하나님은 종종 그분의 말씀에서 신인동형론(神人同形論, anthropomorphism)을 사용하신다. 은혜롭게도 그분은 우리의 제한된 능력에 자신을 맞추시고 인간의 방식을 따라 말씀하신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그분이 "괴롭힘을 당하신다"(말 2:17)는 말씀을 읽고, 다른 곳에서는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사 40:28)라는 말씀을 듣는다.

신명기 32장 27절에서 여호와께서는 "원수를 자극하여 그들의 원수가 잘못 생각할까 걱정하신다." 또한 시편 78편 65절에서 우리는 "그때에 주께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포도주를 마시고 고함치는 용사처럼 일어나사"라는 말씀을 읽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이 결코 주무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사야 59장 16절에서 그분은 "이상이 여기신다" 그러나 아무것도 그분을 놀라게 할 수 없다. 예레미야 7장 13절은 그분은 "새벽부터 부지런히" 일하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그분의 열심을 보여 주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말을 얼마든지 계속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무엘하 24장 16절에 나오는 여호와께서 "뉘우치사"라는 말은 그분이 마음을 바꾸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분의 외적 행동에서의 어떤 변화 - 그분의 심판의 중지 -를 의미하는 것이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3 p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