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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328] 대단원(사무엘하 24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328] 대단원(사무엘하 24장)

En Hakkore 2024. 3. 9. 10:54

시점의 문제

다윗의 삶에서 이 사건이 발생했던 시기를 고려해 본다면 이 수수께끼 같은 에피소드를 이해할 수 있는 빛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사무엘서의 앞 장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다윗과 이스라엘의 칼은 적들을 성공적으로 물리쳤다. 블레셋 사람들은 진압되었고, 모압은 공물을 바쳤고, 다메섹에는 성채가 세워졌고, 에돔과 수리아 사람들은 그들의 종이 되었다.

다윗은 그 정도로 놀랄 만한 승리를 거뒀고, 그로 인해 우리는 성경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게 된다. "다윗의 명성이 온 세상에 퍼졌고 여호와께서 모든 이방 민족으로 그를 두려워하게 하셨더라"(대상 14:7).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던 선한 일들 중 이뤄지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다윗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다. 인간은-그가 누구이든 간에-그 홀로 남는다면, 태초에 에덴동산에서 분명하게 예시되었듯이, 그 어떤 축복도 유지해 나가지 못한다. 우리는 기쁨의 잔이 넘칠수록 그 잔을 보다 굳건하게 붙잡을 필요가 있다.🫰

다윗이 지은 죄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삼하 24:1).

혹은 역대상 21장 1절을 서술대로 하자면,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시켜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이 두 자기 진술들은, 어떤 이들이 어리석게 주장하듯이, 서로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보완한다.

비록 하나님이 죄를 만드신 분은 아니시고, 또한 그분이 악에 대해 비난을 받으셔도 안 되지만, 우주의 주관자이신 그분은 또한 그 우주의 통제자이시며 지휘자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은, 만약 그것이 자신의 의로운 목적에 도움이 된다면, 사탄과 그의 무리들까지도 동원하신다(왕상 20:20-22; 겔 14:9 등 참조).

적어도 이 경우에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하나님이 사탄으로 하여금 다윗을 유혹하도록 허락하셨고, 다윗이 그 유혹에 굴복해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다윗이 그 유혹에 그토록 쉽게 굴복하고 신하들의 의견을 그토록 완고하게 거부했다는 사실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조바심을 발휘하며 행동하지 않았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다윗의 삶에서 특별한 위기였다. 이스라엘의 오랜 적들은 여러 세기에 걸친 싸움 끝에 마침내 이스라엘에 굴복했다. 골리앗의 강력한 후손들까지도 다윗의 용사들에게 패해 더 이상 이스라엘과 맞서려고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이웃한 나라들을 정복하고 약탈했으며 그들에게서 빼앗은 엄청난 양의 금을 여호와께 바쳤다(대상 18:11; 20:4을 보라).

"이스라엘은 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던 승리와 휴식을 얻었다. 칼은 칼집에 넣어졌고, 솔로몬(평화의 왕에 대한 예표)의 통치가 곧 시작될 참이었다. 오랜 세월의 방랑을 마감한 하나님의 언약궤는 이제 더 이상 휘장 안에 놓여 있지 않을 것이다. 이제 곧 성전이 건립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그곳에 모여 엄중한 연합 예배를 드릴 것이고, 하나님의 집은 그분의 영광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참으로 밝고 복된 시대였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예표적이고 아련한 시대였을 뿐이다"(B. W. Newton).

아, 그것이 핵심이었다. 이스라엘 역사의 이 놀라운 시기는 단지 "예표적이고 아련한" 시기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그 시기를 믿음의 눈으로 보느냐 아니면 육신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었다.

그 시기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서 아직 먼 미래에 대한 복된 예시를 발견하는 자들에게 그것은 그들의 인내와 소망을 강화시키면서 거룩한 위안을 제공했다. 그러나 그 성공적인 시기를 육신의 눈으로 보았던 자들에게 그것은 오직 덫이 될 뿐이었다.

또 다른 이가 지적했듯이, "자연의 감정이 우리를 지배할 때(그리고 그것은 신앙이 활발하게 작동하지 않을 때 우리를 지배한다). 승리 혹은 성공은-설령 그것들이 하나님의 분에 넘치는 은혜의 선물로 간주될지라도-늘 우리 자신을 높이는 데 이용된다."🥺

태양과 꽃들 밑에서 잡초가 자라나듯이, 우리가 조심하지 않는 곳에서는, 은혜 밑에서 우리의 자연적인 경향들이 성장하기 시작한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우리의 본문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중요한 실제적 교훈이다. 그것은 "성공의 위험"에 대한 매우 엄중한 경고다.

역경이 영적 삶에 대한 위협이라는 수단을 동원해 우리를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면, 번영의 위험은 그보다 훨씬 더 크다. 전자가 우리의 부주의함을 통해 우리를 불평과 불만에 빠지게 한다면, 후자는 우리가 두 배나 더 조심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자족과 자만에 빠지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의지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실패와 시련 때문에 낮아졌을 때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성공을 거두고 우리의 창고가 가득 차 있을 때 그분과 무관하게 살아가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을 많이 허락하시지 않는 것에 놀라서는 안 된다.

동일한 원리가 영적 축복에도 해당된다. 다가오는 휴식의 징조를 얻을 경우 우리는 그것을 예시가 아니라 실제로 간주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쓰는 대신 실제로 쉴 때가 이르기도 전에 쉬려고 한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3 p368

● 에스겔 14장 9절
"만일 선지자가 유혹을 받고 말을 하면 나 여호와가 그 선지자를 유혹을 받게 하였음이거니와 내가 손을 펴서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그를 멸할 것이라"(개역개정)

"그런데 예언자가 만약 꾀임에 들어 어떤 말을 선포하면, 나 주가 친히 그 예언자를 꾀임에 넘어가도록 버려 둘 것이다. 내가 내 손을 그에게 뻗쳐, 그를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서 멸망시키겠다"(표준새번역)

● 역대상 18장 11절
"다윗 왕이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들과 아말렉 등 모든 이방 민족에게서 빼앗아 온 은금과 함께 하여 드리니라"

"다윗 왕은 이것들도 따로 구별하여, 에돔, 모압, 암몬 사람, 블레셋 사람, 아말렉 등 여러 민족에게서 가져 온 은 금과 함께, 주께 구별하여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