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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39]

En Hakkore 2024. 7. 11. 11:30

그리스도와 율법 2(마 5:17-20)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서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는 자는" 이라는 말은 이 구절 앞 구절에서의 '일점일획', 즉 율법 주의 지극히 작은 부분이라도 버리는 자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라는 단어를 잘 생각해 보라. 그것은 두 가지 일을 의미하고 있다.

첫째로,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서 앞 구절에서 지극히 분명하게 말씀하셨던 것을 설명하고 계시며,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할 것을 조장하는 대신에 그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그 요구를 지지하고 계신다.

왜냐하면 왕 자신도 그의 사역자들 중 누구라 할지라도 감히 율법의 지극히 작은 요구라도 그것을 무시하는 자에게 비난을 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앞에서 주장하셨던 명백한 결론을 이끌어 내셨다. 만일 주님께서 친히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오셨다면 그의 종들도 역시 계명들을 지키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행하라고 가르쳐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자들도 그가 그들에게 남겨 주신 본을 따름으로 말미암아 그와 동일하게 되어져야만 한다.

'폐하다' 라는 말에 대한 우리의 해석과 또한 우리가 단순히 17절의 '완전하게 하려 하다' 라는 말만을 논쟁했던 것을 '그러므로' 바로 다음에 계속되는 말씀에서 어떻게 결론을 맺고 있는가를 주목해 보자.

선지자를 '폐한다' 는 것은 그들의 타당성을 부인하는 것이며 그들의 영감을 거부하는 것이고 그들의 권위를 취소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의무를 지우는 능력을 소유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율법을 '폐폐한다' 는 말도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버린다는 것일 뿐 아니라 그것을 폐기한다는 뜻이 된다. 즉 그것은 율법으로부터 모든 효력과 능력을 빼앗는 것과 같은 파괴적인 일이며, 따라서 법은 전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가르치는 자는" 이라는 말씀을 더하신 이유이다.
폐하러...완전하게 하려"(17절)와 "버리고...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19절) 이 두 구절에서 순서가 같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리가 이 앞 구절에서 세운 '율법'에 대한 정의를 이 구절의 내용에서는 어떻게 그 정의를 내리는가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보자. 여러 주석가들 사이에 이 문제에 대해서 약간의 의견 차이가 있어 왔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로 도덕법에 대해 언급하셨다는 것이 산상설교의 뒷부분에서 입증되고 있긴 하지만 이 말씀을 전파하셨던 상황과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일점일획' 이라는 말을 언급하신 것을 볼 때 의식법과 재판법의 측면이 배제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 구절의 전체에 걸쳐 '율법' 은 모세 율법을 포함한 것으로서 지극히 넓은 범위에서 그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이것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라고 우리 주님께서 언급하신 내용에서 분명히 입증되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결코 십계명을 그렇게 생각할 수 없으며, 또한 그 계명들은 하나같이 모두가 왕국의 근본적인 법령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모두 반대하면서 '율법'이란 여기에서 십계명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 그와 논쟁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십계명은 전체가 하나이기 때문에 그 모든 명령은 동등한 권위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것의 어떠한 부분도 순종하기를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그 계명의 어떤 부분들은 다른 부분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로 생각되고 있다.

첫째 돌판의 계명을 어기는 것은 둘째 돌판의 계명을 어긴 것보다 더 흉악한 죄라는 것이다. 즉 주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것은 이웃 것을 훔치는 것보다 훨씬 더 죄가 크다.

그러므로 둘째 돌판의 계명들을 어기는 범죄에 있어서도 범죄성의 정도 차가 있는 것이다. 즉 살인하는 것은 이웃에게 거짓 등언을 하는 것보다 더 무거운 죄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십계명 중 어느 한 가지도 가벼운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은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한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죄가 된다"(약 2:10)는  엄숙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 더 나아가기에 앞서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구절이 13절에서 16절에 있는 '너희" 라는 말에 대한 우리의 설명을 확증해 주고 있다는 것을 지적해야만 하는데, 그 문제는 많은 현대 신학자들에 의해서 논쟁이 되고 있다.

그 구절을 논할 때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그의 산상설교의 두 번째 부분에서 대명사를 바꾼 것에 관심을 가졌었다. 3절에서 10절까지 구세주께서는 모두 '그들의 것', '그들이' 라는 대명사를 사용하셨는데, 11절에서 16절 사이에는 '너희', '너희는' 이라는 말을 사용하셨다.

우리는 이 두 번째 부분에서 오직 그리스도의 사역자들, 곧 신약 시대의 '선자자'의 계승자들(12절)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은 목자로서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계속해서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생각하고 계시며, 그의 백성에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사역자들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이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을 볼 때 분명하게 입증된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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