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산상수훈 40]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40]

En Hakkore 2024. 7. 11. 11:30

그리스도와 율법 2(마 5:17-20)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공간의 거의 대부분을 점하고 있는 '천국'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신앙고백 영역과 관계되는 말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보다도 범위가 더 넓은데 이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교회의 지체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천국은 그리스도의 왕권을 승인하는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이므로 그것은 진실한 자뿐만 아니라 거짓된 자를 포함하며, 이 사실은 우리 주님의 비유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즉, 밀이 들에서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라지도 들에서 자라나며, 좋은 물고기가 그물에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쁜 물고기도 그물에 걸린다. 그러나 최후에 가서 이들은 서로 분리될 것이다.

이 사실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라고 가르치는 사역자들에게도 천국에서 있을 자리가 있겠는가 라고 생각하게 되는 의혹을 제기해 준다. 이 왕국은 그리스도의 선구자에(3:2) 의해서 공표되었으며, 그 이후로도 전파되고 있다(11:12).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라는 말씀의 의미에 대해서 주석가들은 두 가지 다른 설명을 제시하였다.

첫째, 그 사람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왕국에서 참된 기업이나 어떤 역할을 담당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그를 '지극히 작은 자' 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에 의해서 부정되고 있다.

둘째, 대다수의 저술가들에 의해서 채택된 의견이라 말할 수는 없으나, 이 사람은 왕국에서 그의 동료들에 의해 지극히 작은 자라고 불리는 그러한 낮은 평가를 받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심판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이 구절 속에서 그러한 사실에 대해 아무 것도 찾아볼 수 없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지금 생각하고 있는 그것보다 훨씬 더 엄숙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사악한 사역자는 왕에 의해서 '지극히 작은 자' 라고 심판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그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사 9:15)라는 말씀을 회고해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불충실한 종을 비난하신 말씀이었다.

이 구절은 세대주의자들(하나님의 모든 계명 중에서 지극히 큰 계명의 하나인 안식일에 관한 율법을 거부하는 자들)을 엄숙하게 정죄하고 있을 뿐 아니라 또 다른 부류의 오류를 범하는 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비난을 공표하고 있다.

많은 칼빈주의자들이 복음과 율법을 서로 대립시키고 있는데, 그들은 복음을 율법의 보조적인 성질을 지닌 것으로 설명하는 대신 그들을 융화할 수 없는 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독한 것이다. 왜냐하면 은혜가 의를 통하여 역사하고,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생활에 대한 자기 계율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자가 십계명에 순종하여 행해야 하는 하나님의 속박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부인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과연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 그들은 전적으로 그릇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로마서 6:14이 우리의 성화에 대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칭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도덕법을 거부하고 있고, 어떠한 점에서도 우리가 그 권위 하에 들어 있지 않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이 많은 교회들에 의해서 높이 평가를 받는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보시기에 '지극히 적은 자'이며,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여기에서 공표하신 바로 그것을 실행할 수 있도록 그를 따라야만 한다.

반율법주의(antinomianism: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계율로서 도덕법을 거부하는)는 카톨릭교의 방종과 마찬가지로 비난을 받을 만하며 위험한 것이다.

만일 한편으로 우리에게 법을 어기지 않도록 경계하는 일이 필요하다(하나님의 손에서 어떤 좋은 상을 얻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려고 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틀림없이 오직 복음의 은혜 안에서만 거하려는 위험이 있으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요구되어지는 거룩한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반율법주의의 방종과 바리새주의적인 자기 의를 똑같이 경계하도록 하자. 이것들은 치명적인 암초와 소용돌이이다. 그 속에 빠지지 않도록 하려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우리는 그들 사이에서 우리를 인도해 주실 주님과 성령이 필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분명하고 완전한 해석과, 마음과 양심에 그것을 성경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이러한 치명적인 그단의 상황으로부터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예방법을 제공한다"(토마스 스코트).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여기에서 말의 순서를 주목해 보면 '행하며 가르치는' 이라고 되어 있다. 바울이 믿음 안에서 그의 아들에게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라"(딤전 4:16)고 권고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그의 종들에게 생활의 고결함과 교리의 건전함을 요구하고 계신다.

행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이 서로 다른 사역자들은 주님을 조롱하며 심히 모욕하는 것이 된다. 만일 우리의 생활이 우리의 설교와 반대가 된다면 복음 전파하는 일을 전적으로 그만두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더욱이 자신의 길과 자신의 말이 조화가 되지 않는 사람의 설교에는 능력이 없을 것이다. 그의 말은 그의 청중들의 마음에 확신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 자기 목사에게 의아해하면서 심각하게 "나는 당신 행동을 본 후로부터 당신이 하는 말을 들을 수가 없소" 라고 말하는 경우와 같다.

끝으로, 사역자는 먼저 자기가 설교한 것을 실천하지 아니하고는 양심의 깨끗함과 마음의 기쁨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의무를 가르칠 수 없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78

'강해시리즈 > 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상수훈 42]  (0) 2024.07.11
[산상수훈 41]  (0) 2024.07.11
[산상수훈 39]  (0) 2024.07.11
[산상수훈 38]  (0) 2024.07.11
[산상수훈 37]  (0) 2024.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