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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41]

En Hakkore 2024. 7. 11. 11:31

그리스도와 율법 3(마 5: 17-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20절).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해 대답을 제시함으로써 이 구절을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란 누구이며, 또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가?

둘째, 그들의 의의 특성은 무엇이었는가?

셋째,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요구하 계시는 더 나은 그 의의 본질은 무엇인가?

넷째, 그 의는 어떻게 얻어지는가?

다섯째, 그 의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여섯째, 그 의는 어떠한 점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더 나은가?

일곱째,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라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여덟째, 20절과 전후 문장 사이에는 어떠한 관련이 있는가?

이상의 문제들에 대한 그 대답을 찾기에 앞서,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그의 청중들에게 참으로 놀라운 반응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지적해야겠다.

서기관들은 가장 유명한 율법 선생들이었고 바리새인들은 가장 모범적인 유대교의 표본으로 평판이 나 있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세우기 위해 오셨던 그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얻는 데에 그들이 갖고 있는 것이 부적당한 것이라고 우리 주님께서 엄숙하게 확언하신 것은 참으로 과격하고 놀랄 만한 선포라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개인적 경건의 극점에 도달한 사람으로서 존경을 받았으며, 평범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그와 같은 높은 영성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기들은 그들의 경지에 똑같이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단지 두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면 한 사람은 서기관이고 또 한 사람은 바리새인일 것이다" 라고 속담이 유대인들 사이에 퍼져 있을 정도였다.

첫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란 누구인가? '서기관' 이라는 말은 직책의 명칭인데 유대인들에게는 두 종류의 서기관, 즉 국가의 서기관과 교회의 서기관이 있었다.

국가의 서기관이란 나라의 일들을 기록하는 공증인이었는데 심새와 같은 사람이고(스 4:8), 교회의 서기관이란 성경을 해석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에스라와 같은 사람이다(스 7:1, 5, 6).

그리스도께서는 이 복음서의 13:52과 23:2에서 바로 후자를 가리켜 모세 율법을 해석하는 자들이라고 언급하셨으며, 그들은 레위지파였다. '바리새인' 이라는 이름은 직책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고 한 분파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들은 모세 율법이 명하는 것보다 더 업격하며 조상들의 유전에 기초를 둔 도덕법과 의식법을 만든 사람들이기 때문에 서기관들과는 달랐으며 유대인들 사이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행 23:6; 26:5 참조),

그러므로 서기관들은 율법 학자라 할 수 있고 신앙을 고백하는 바리새인들은 가장 고결하게 율법을 실행하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그들의 의의 특성은 무엇이었으며 그 결점은 어디에 있었는가?

첫째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는 단지 형식적인 것이었으며 외면적으로 율법을 준수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들은 간음, 도둑질, 살인, 그리고 우상 숭배와 같은 큰 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삼가는 데에는 업격하였으나 더러운 생각과 탐욕과 미움과 하나님께 대한 냉담한 마음에는 양심에 꺼리낌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과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마 23:25, 27, 28) 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둘째로, 그들은 편파적으로만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였다.

즉, 그들은 율법의 도덕적인 요구보다 의식적인 계율을 훨씬 준수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마 2:23) 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셋째로, 그들의 행위는 건전치 못한 원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즉,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영광보다도 자기 유익이 그들을 지배하는 동기였다. 그들은 금식하고 길모퉁이에서 기도하며 허식으로 자선을 베푸는 일에는 앞섰으나 그것은 모두 사람들 가운데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행한 것이었다(마 23:5-7).

Arthur W. Pink 산상수훈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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