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Exodus 325]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325]

En Hakkore 2024. 7. 2. 10:43

모형적 중보자 2(출애굽기 32:11-14)

위에서 말한 것은 우상 숭배의 보편성을 말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출애굽기 32장에 기록된 내용을 해석하는 열쇠를 제공해 준다. 거기에서 우리는 은혜를 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거기에 절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으며, 공개적이며, 뻔뻔스러운, 일치단결한 우상 숭배였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손가락으로 두 돌판 위에 쓴 첫 번째 계명이 "너는 내 앞에 신을 두지 말라" 는 것이었는데, 여기에 그것에 대한 고의적이며 합의된 위반이 있었다.

그렇다면, 결과는 무엇이었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돌이켜 그에게 아래에 있는 백성들의 그 무서운 죄를 알려주시고, 이르시기를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고 한다.

이 말씀은 엄숙하고 무섭게 들리지만, 상세히 살펴보면 희망의 문이 열려 있음이 드러나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한다. 이로써 볼 때 하나님이 자신을 모형적 중보자의 손에 두신 것처럼 여겨진다.

"내가 하는 대로 주라"고 하신 말씀은 모세가 여호와와 그의 사악한 백성 사이에 서 있음을 명백히 제시한다. 이것은 물론 사실이었다. 그러나 모세에게 그들은 완전히 쓸모없는 존재였다. 그는 다만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와 그들이 저지른 멸망의 처사 사이에 서 있었을 뿐이었다.

그가 무엇을 할 수 있었는가? 홍해에서 애굽 사람들의 위협을 받았을 때, 모세는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다(출 14:15). 또한 마라의 쓴 물에 당도했을 때에도, 다시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였다(출 15:25).

르비딤에서 물이 없었을 때에도 모세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응답을 얻었다(출 17:4).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침략했을 때 모세가 손을 듦으로써 그들이 승리를 얻었다(출 17:11). 그러나 지금은 훨씬 더 중대한 위기에 봉착하였다. 이제 모세는 그들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그들을 위하여 다시 중재에 나설 것인가?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출 32:11).

모세는 그들이 이렇게 긴급한 필요에 처한 순간에 그들을 버리지 않았다. 이러한 처지에서 그가 어떻게 처신했는지를 살펴보면 참으로 복된 사실을 주목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을때, 모세는 하나님께 가까운 그의 입장을 자신을 위하지 않고 백성들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한다.

일찍이 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보았다"(히 11:24-26).

이와 같이 그는 지금 다른 나라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을 거절하고, 오히려 목이 곧고 불순종하는 백성과 하나가 되는 것을 선택하였다. 이것은 "오히려 자기를 비워"(빌 2:7) 그의 사악한 백성 중 하나가 되신 이를 예표하고 있지 않는가? 물론 그러하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 이상의 여러 가지 점들을 보게 될 것이다.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이는 모형적 중보자가 여호와께서 다음 7절의 말씀과 같이 그에게 말씀하셨을 때 대답한 내용이었다.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우리는 이러한 말씀에 두 가지 강조점이 있다고 믿는다.

그 위치상의 중요성으로 볼 때, 1절에 기록된 가증한 이스라엘의 단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제시되어 있다. 거기에 보면 백성들이 그들의 거룩한 구원자를 경멸했지만, 여기서 하나님은 공의롭게 그들에 대한 권한을 포기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상징적 의미도 있으니, 다음의 중대한 사실들을 숙고해 보면 더욱 귀할 것이다. 하나님은, 7절에서 그들을 '네 백성' 이라고 부르심으로써 여호와께서는 그 나라를 실제로 모세에게 넘겨주신다.

여기 11절에서는 모형적 중보자가, 실제 그러했던 것처럼 '주의 백성' 이라고 말함으로써 그들을 하나님께 되돌려주고 있다. 이것은 요한복음 17장에 있는 사실을 분명하게 예시하고 있지 않는가?

먼저 2절에 보면, 중보자의 원형이 되시는 이께서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백성에 대하여 이르시기를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라고 한다.

그 다음 9절에 보면 그가 백성을 하나님께 되돌려주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이제 모세가 "여호와 그의 하나님" 앞에서 간구했던 여러 가지 근거를 살펴보자. 그것은 모두 세 가지인데, 그는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영광, 그리고 하나님의 미쁘심을 따라 간구했다.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구한 것은 11절에 다음과 같이 표현하셨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그가 히브리인들을 노예의 집으로부터 구원해 내실 때 여호와를 움직이게 한 것은 순전하고 단순한 그의 은혜였다. 그들 가운데는 그의 호의를 받을 만한 아무런 공적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 가운데 있는 모든 것들이 그의 진노를 사게 하였다.

그것은 일찍이 구한 바도 아니며 받을 만한 공적도 없었던 그들에게 주신 지극한 자비, 순수한 은혜, 그리고 거룩한 은총이었다. 그러나 합당하지 아니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총의 공의의 요구라는 대가를 따라 이행된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의를 통하여" 은혜가 왕 노릇 하는 것이 항상 사실이기 때문이다(롬 5:21).

애굽에서도 그러하였다. 유월절의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받아 발랐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은혜가 솟아나는 일은 구속에 근거한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아직도 변함없는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고 하심과 같다.

바야흐로 모세는 이로 인하여 그의 맨 처음 호소를 올렸다. 이스라엘은 슬프게도 죄를, 심각하게 범하였기에, 모세는 그것을 부인하거나 변명하려 하지 않았다. 뒤에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에게 "목이 곧은 백성" 이라고 고발함을 그가 시인한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출 34:9).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 구속에 의하여 그의 소유가 되었다. 그들은 그의 속량한 소유였다. 합당하지 않으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않지만, 여호와께서는 구속하셨다.

이는 복되며, 영광스러우며, 가슴을 녹이는 사실이다. 우리가 이를 깨달아 우리 안에 죄를 크게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어린 양의 보배로운 피에 대하여 깊은 감사가 넘치게 해주시기를 바란다.♥

"만일 누가(헬라어로 '어떤 이' - 요일 1:3에 이르신 사람)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고 하시지 않았던가? 그의 대언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번에 모든 자들을 위하여 흘리신 그의 피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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