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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322]

En Hakkore 2024. 7. 2. 10:41

금송아지 3(출애굽기 32:1-10)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출 32:2).

출애굽기 24:18의 말씀이 우리에게 알려주듯이, 모세가 이스라엘로부터 40일 동안 떨어져 있었다는 그 숫자는 성경에서, 거의 항상 시험기간(probation)과 관련된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렇게 긴 시간이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원하기만 한다면, 그분은 몇 시간 사이에(아니면 심지어 한순간에) 모세에게 출애굽기 25-31장에 기록된 모두를 말씀하실 수 있을 뿐 아니라 그에게 이해시키실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40일 동안인가?

이는 이스라엘을 시험하시기 위하여, 즉 그들이 준행하기로 약속했던 율례가 당도할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리는 여부를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엄숙한 맹세를 지키기는커녕,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을 듣기 위하여 기다리려고 조차 하지 않았다.

아론과 훌은 모세와 그의 대리인인 여호수아가 없는 동안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문제들을 판결하도록 남겨져 있었다(출 24:14), 아론은 이제 시험에 봉착하게 된다. 그가 회중을 책임지게 된 것은 처음이었기에, 가엾게도 스스로 처신하였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대신, 인간을 두려워한 것이 그에게 올무가 되었다. 그는 백성들을 담대히 저지하는 대신에, 분명히 맞붙어 싸우지도 않은 채, 그들의 사악한 음모에 넘어가고 말았다.

오호라! 그것은 한 인간에게 책임이 주어졌을 때, 자신의 신뢰를 져버리는 또 다름 하나의 슬픈 예를 제공한 것뿐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교의 역사 속에서 그랬듯이, 지도자들은 백성들의 세속적 소원을 따르기를 거절하는 대신, 그것들에 유의하여 때로는 그것들을 장려하였다.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출 32:3, 4).

어떤 이는 여기 이 사실과 마태복음 17:1-18에 있는 것 사이의 유사점을 지적했다. "어떤 견지에서 볼 때 이 광경과 변화산 아래에서 목격했던 일 사이에 매우 인상적인 유사점이 있다. 이 두 경우 모두 사탄이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

우리 앞에 있는 경우는 그의 권세 아래 전락한 것이 그 민족이었고, 그 뒤의 경우 그가 지배한 것은 그 자녀였다. 그러나 그 자녀는 다른 한편으로 차후의 유대 민족의 모형이다. 그리스도께서 위로 떠나신 것(시내 산에 있는 모세에 의하여 형상적으로 보여짐)은 그 사탄에 사로잡힌 기회가 되었다.

하나님의 허락하심 하에서, 사탄이 그 사악한 권세를 발휘하여, 인간(이스라엘)이 그의 악한 마음에 따라 그의 가련한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Ed. Dennett).

송아지 또는 황소는 애굽의 주요한 신 '아피스(Apis)' 였는데, 사람들은 그 얽매였던 땅에서 그 신을 익히 알고 있었다. "이는 너희 신이로다" 라고 한 말은 느헤미야 9:18에서는 "이는 너희 하나님이라" 는 의미로 해석된다.

시편 기자의 감명받은 해석은 다음과 같이 매우 장엄하다. "그들이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 부어 만든 우상을 경배하여 자기 영광을 풀 먹는 소의 형상으로 바꾸었도다 애굽에서 큰 일을 행하신 그의 구원자 하나님을 그들이 잊었나니"(시 106:19-21).

그 우상을 만들어 그것에 예배를 행한 것은 공개적인 배교 행위였으며, 그 일로 인한 쓰라린 결과는 그들이 바벨론 포로가 될 때까지 거두어들여야만 했다(행 7:43). 이러한 것이 곧 육신으로서, 하나님의 구원을 언제나 잘 잊어버리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빛을 멸시하며, 그의 명령을 거역하며, 자신의 뜻에 따라 행하고 그리고 그분을 효과적으로 퇴출시키는 일을 가져온다.♥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출 32:5).

이 끔찍한 광경 위에 덮은 구름은 더욱 짙어만 간다. 참 하나님을 거짓 신으로 대처했음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그들은 필연적으로 그들의 가증됨을 종교의 예복 아래로 감추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제 한 '제단' 이 세워진다. 이와 같이 언제나 그러했고 또 그러하듯이, 인간은 거룩한 이의 이름을 그 위에 두면서 우상으로 인한 부끄러움을 언제나, 감추려고 노력한다.

그러므로 바로 그 다음에 이르기를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임이니라"(출 32:5)고 한다. 사실상, 이것은 가식이었는데, 그 이유는 제 삼월에나 사월에는 절기가 없었기 때문이다(레 23장 참조).

이 5절에서 우리에게 말하는 사실은 지금 거의 모든 그리스도교계에서 계속되고 있는 그 본보기일 따름이다. 인간들은 그들의 우상을 세워놓고 그것들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섬김으로써 자신들의 발명품에 대해 위엄을 갖추고 숭앙하려고 하였다.

로마 카톨릭 교회와 의식주의가 그러한 형태를 우리에게 준 것이다. 세속적인 것과 육신적 탐닉은 흡사하다. 마치 아론이 "여호와의 절기" 를 뒤따르는 것으로 송아지를 숭상하며 육신적 즐거움을 칭송했던 것처럼, 너무도 많은 교회 만찬, 바자회, 종교적 축제, 카드놀이(whist drive) 등이 기독교의 이름 아래 공식적으로 이행되고 있다.

이 무슨 헛수고들이란 말인가! 아론이 그가 선포한 일을 정당화할 수 있는 성서적 근거가 없었던 것처럼, 오늘날의 지도자들로 그들의 행위를 입증할 만한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없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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