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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327]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327]

En Hakkore 2024. 7. 2. 10:44

모형적 중보자 4(출애굽기 32:11-14)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출 32:13).

여기에 모세가 여호와 앞에서 중보하게 된 세 번째 근거가 있다. 그는 하나님의 미쁘심을 호소했으며, 그의 약속을 간구했으며, 그가 맹세하신 일을 기억하도록 했다. 이스라엘의 처사로 볼 때 행동하거나 간구할 만한 근거가 전혀 없었으므로, 그는 돌이켜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일에 전적으로 의존하였다.

"그의 중보기도의 활력 가운데서 - 하나님의 성령의 행위에 대한 분명한 결실 - 그는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에게 하신 그 절대적이며 무조건적인 약속으로 되돌아가, 하나님이 거짓말하실 수 없는 이 불편의 두 가지 사실을 여호와께서 기억해 주실 것을 구했다(히 6:18).♥

이보다 더 아름다운 효과적인 중보기도의 실례를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 실제로, 그때 발생한 비상사태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중보자에 의존되어 있었기에, 하나님은 그의 은혜 안에서, 그 갈라진 틈에 서서 그의 백성들의 이익을 위하여 간구할 수 있는 자를 준비해 주셨다.

그들의 어떠함에 근거한 것이 아님은 그들의 범죄로 인하여 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 앞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어떠함에 근거한 것으로서, 그분의 묘략은 족장들에게 하신 맹세와 약속에서 드러나고 확인된 것이었다"(Ed. Dennett).

그러나 모세의 이 세 번째 기도의 모습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보자. 위에서 인용한 내용 가운데 약간 모호한 두 가지 사실이 있다.그것은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 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했는데, 그 차이는 모세가 도달한 믿음의 높이를 암시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드러내신 묘략은 족장들에게 "맹세와 약속"으로 확인한 것이 아니라, "약속과 맹세"에 의하여 보증되었다 - 창세기 12:3과 창세기 22:15, 16에서와 동일한 히브리어 6:13-18에 기록한 순서를 살펴보자.

그러나 지금 우리가 여기에서 깊히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모세가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것에 대해 이러한 마지막 근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 대한 그 효과에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움직이는 능력에 있어서도 "살았고 운동력"(히 4:12)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실을 보다 절실히 깨닫는다면 거룩한 기록 가운데 있는 그 언어가 그들의 간구에 보다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며, 위로부터의 더 많은 응답을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그의 모든 이름 위에 크게 보이게 하셨으니(시 138:2)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는 분명히 "나를 높이는 자는 나도 그를 높이리라"고 선포하셨으니, 어떻게 우리가 기도 가운데서 성경에 기록된 바로 그 말씀, 곧 그의 말씀을 우리의 것 보다 더 높일 수 있을 것인가?

아! 여기에서마저도 우리의 언어가 우리를 배신하는도다. 만일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보다 풍성히 거한다면, 그것이 우리들의 중보기도 가운데 좀 더 풍성하게 표현될 것이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온전한 본보기를 남겨주셨으니, 그의 기도는 시편을 읊는 것이었으며,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을 살펴보면 구구절절이 구약성경에서 인용했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주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마 6:9)고 명백하게 당부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으니, 이로써 너무도 많은 우리의 기도가 응답을 얻지 못한다.

모세가 하나님께 간구했던 그의 말씀은 하나님이 족장들에게 하신 약속들이었다. 이것 역시 우리들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되었다. 하나님의 들으심을 확보하는 것은 은혜의 보좌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겸손하고 단순하게, 그리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기도로서, 주님 앞에 우리의 필요를 나타내는 것이며, 그 다음에는 그것을 채워 주시리라는 그분 자신의 선포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상기시키는 것이다.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삼하 7:25)라고 한 것은 다윗의 확신 있는 구함을 나타낸다. 이것은 "믿음으로 행함" 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그것을 품으며(히 11:3), 그것들을 바라는 것이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 23"19).♥

인간은 '흰 종이에 검은 글' 로 쓴 합의서를 좋아하기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낮추사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의 약속들을 실체로 취급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여호와께서는 그의 말씀을 결코 하찮은 것으로 여기지 않으신다. 그의 약속은 언제나 지켜졌기에, 여호수아는 다음의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로 기억하게 하였다.

"보라 나는 오늘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은 마음과 뜻으로 아는 바라"(수 23:14).

또한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같도록 은혜를 구하도록 하자. 그에 대하여 기록되기를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롬 4:20, 21)라고 한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출 32:14).

이같은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바꾸신 것이나 그의 목적을 변경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니, 이는 그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기"(약 1:17) 때문이다.

전능하신 이의 영원한 목적에 조금이라도 치우치는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가장 작은 경우도 일찍이 없었으며 또 결코 없을 것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태초로부터 미리 알고 계셨으며 그의 모든 묘략이 무한한 지혜에 따라 정해졌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후회하심에 대해 말씀할 때, 그것은 말의 형태를 빌린 것에 불과하며, 지극히 높으신 이의 비하로 말미암아 우리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다. 위에 있는 표현으로 의도한 것은 여호와께서 모형적 중보자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출 32:14).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아직도 '그의 백성' 으로 불리어졌는지를 살펴보는 일는 복된 일이다. 이는 믿음에 얼마나 용기를 주는 일인가! 그의 기도가 응답되기에 불가능하게 보일 경우가 있었다면, 이런 경우였다.

하지만 모세의 믿음은 항상 모든 어려움 위로 일어나서, 여호와의 손을 잡고 그의 도움을 간청하였다. 그러자 하나님이 자신을 부인할 수 없으므로, 모세의 기도는 허락되었다"(Dennett).

이 작은 묵상이 하나님의 복으로 많은 사람들의 영적 생활을 풍부하게 하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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