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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116]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116]

En Hakkore 2024. 6. 18. 11:21

홍해를 건넘(출애굽기 14장)

'가만히 서라' 라는 말은 그 다음에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한 말이다. 스스로 해보겠다는 모든 시도는 반드시 중단되어야만 한다. 모든 육신적 활동도 중단되어야만 한다. 인간 본연의 모든 행동은 멈추어야만 한다. 여기에 고난 앞에 선 믿음의 올바른 자세가 있다.♡

"가만히 서 있으라."

이것은 혈과 육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다소나마 시련과 어려운 역경에 처한 인간의 쉴 새 없는 마음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가만히 서 있는다' 는 사실이 내포하고 있는 개념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인간 본연으로는 무엇인가 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이리 저리로 치닫게 될 것이다. 어떤 구실로라도 그 일에 손을 쓰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아무런 효과도 없는 행동을 위엄 있고 그럴싸한 '합리적 방편을 사용' 한다는 명목 아래 정당화하고 거룩하게 여기려고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는 언제나 하나님의 가능성을 닫아 버리고 그 자신이 만들어낸 먹구름으로 인하여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된, 분명하고 절대적인 불신앙의 열매가 될 것이다.

불신앙은 역경을 만들어 내거나 생기게 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일을 방해하도록 다만 먼지를 일으키면서, 괜히 분주한 듯 설치고 열매 없는 행위를 하도록 우리를 무익한 일로 이끈다.

"반면에 믿음은 영혼을 역경에서 하나님께로 일어나게 하고 그를 '가만히 서게' 한다. 그렇게 쉬지 않고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노력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우리는 머리카락 하나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으며 우리의 키를 한 치라도 크게 할 수 없다.

이스라엘이 홍해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그 바다를 마르게 할 수 있었던가? 그 산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가? 애굽의 군대를 멸할 수 있었던가? 불가능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뚫을 수 없는 역경의 벽으로 에워쌓은 인간으로서 떨며 그 무기력함을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는 곧 하나님께서 오실 수 있기에, 우리는 주의 행하심을 뚜렷이 보기 위해서 '가만히 서' 있어야 한다.

인간적 활동은 그 어디에서나 우리를 위한 거룩하신 이의 간섭하심에 대한 지각과 즐거움에 결정적 방해물이 된다"(C. H. M.)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있는 주안점을 놓치는 것을 볼 때 놀라울 뿐이다. 거의 모든 주석가들이 이 구절을 이스라엘이 수동적으로 홍해의 물이 갈라져 새로 떨어질 때까지 머물러 있었던 것을 나타낸다고 간주한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해석이다. 히브리서 11:29에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라고 하셨으며 또한 믿음은 보이는 것과 반대가 되는 것이다.

실수는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라는 말씀을 육안으로 보이는 광경으로 서둘러 결론을 내리는 데서 일어난다. 모세가 말한 것은 영적 통찰을 의미하였으며 심령의 눈으로 보는 것을 말했다.😎

믿음이란 나타난 것을 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고후 4:18). 이는 자연적 인간들에게는 이상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히브리서 11:13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모세에 관하여는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히 11:27)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그를 믿음의 눈으로 본 것을 말한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가만히 서서' 모든 육신적 활동을 멈추어야 한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알려면 '가만히 있어야' 한다(시 46:10).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3, 14).

여기서 반복하여 사용한 미래형의 시제를 주의하여 보라. "그가 너희에게...보이시리니" "너희가 그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등과 같은 말씀은 우리 방금 말한 사실을 얼마나 확실하게 해 주는가?

여호와의 '구원' 은 우리의 육안으로 볼 수 있기 이전에 믿음의 눈에 먼저 보였다. 그 '구원'은 반드시 드러나야만 하며 '들음에서 오는 믿음' 으로 수락되어야만 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 은 그들의 믿음의 근거였다. 출애굽기 14:14을 맺는 말인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또는 어떤 이에 의하여 "너희는 잠잠할지니라" 하신 말씀은 매우 충격적인 말이다.

여자와 어린 아이들 외에 60만의 사람들이 손이나 발 또는 혀도 꼼짝 못하게 하여서 상연하도록 되어 있는 유례없는 드라마에 그들을 어울리게 하기 위하여 이들을 심각한 침묵 속에서 꼼짝없이 머물러 있게 하였다.

이러한 순서는 이스라엘의 떨리는 마음을 그 절박한 치명적 사태와 사로잡히는 것으로부터 여호와의 군대에게 믿음을 갖도록 유도하기 위하여 얼마나 잘 꾸며졌는가!

Arthur W. Pink 출애굽기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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