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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114]

En Hakkore 2024. 6. 18. 11:20

홍해를 건넘(출애굽기 14장)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출 14:10-12).

이것은 쓰라린 믿음의 시련이었으나 슬프게도 이스라엘은 그 시험의 때에 실패하였다. 오호라! 이는 너무도 우리가 종종 당하는 처지가 아닌가! 애굽에서 자신들을 위하여 행하신 그 모든 일들을 체험하였다면 그들에게 이제 주님을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 보인 후라면, 죽음의 천사로부터 은혜로써 구함을 받은 이후라면, 그들의 지금의 두려워함과 절망은 변명할 도리가 없는 불신이다. 그렇지만 우리도 얼마나 이와 같은가!

우리들의 기억은 너무도 짧다. 주께서 지난 과거에 몇 번이나 우리를 구해주셨든지 간에, 그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나게 우리를 위하여 발휘되었든지 간에 새로운 시련이 우리에게 닥치기만 하면 하나님이 과거에 개입하신 일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현실의 긴급사태의 위력 앞에 빠져버리고 만다.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출 14:10).

그들의 눈은 애굽 사람들에게 가 있었기에, 결과적으로 그들은 '심히 두려워하였다.' 그것은 언제나 그러하다. 두려움을 치료하는 유일한 방법은 눈을 주님께 돌려 그를 응시하는 것밖에 없다.🎵

우리가 주변의 환경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우리의 평화에 치명적이다. 그것은 베드로가 물 위로 예수님을 향해 걸어갈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베드로가 그 눈을 주님께 고정하였을 때에는 안전하였으나 바람과 물결에 사로잡히게 되자마자 그는 빠져버렸다.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출 14:10).

그들이 이렇게 위급한 때에 도움, 지원, 보호, 그리고 보존을 위하여 거룩할 뿐만 아니라 겸손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다면 그들의 부르짖음은 올바른 것이고 칭찬할만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어지는 다음 구절에 보면 그들의 부르짖음은 믿음과 소망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요, 불평과 절망의 부르짖음이었다. 그것은 마치 물결이 덮치는 배에서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라고 하면서 주님을 깨우던 제자들의 자세나 행동과 매우 흡사하다.

이러한 불신앙과 절망 그리고 수군거림이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 우리도 그분 앞에 겸손해야 될 동일한 악한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참으로 절실하게 인정한다.😎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하느냐"(출 14:11).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불신앙적 추론인가! 만일 애굽 사람들의 손에 죽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었다면 여호와께서 왜 속박의 땅으로부터 이끌어 내었을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그들을 대적의 손에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님에 대한 충분한 근거였다. 그뿐 아니라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호렙 산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게 되리라고 약속하셨다(출 3:12).

그렇다면 어째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당해야 된단 말인가? 그러나 믿음이 작용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약속은 그들에게 위로를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견딜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스라엘을 지금의 궁지에 몰아넣으신다. 지금의 진을 친 장소로 그들을 이끌어 온 것은 구름 기둥이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중대한 진리가 있다.

우리는 믿음의 길을 쉽고 부드러운 건으로만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믿음은 심하게 연단 또 연단을 받아야만 한다. 왜 그러한가? 우리가 하나님의 충만함(sufficiency)의 능력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며(빌 4:19), 모든 시험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고전 10:13)을 경험을 통하여 증명하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나 구하는 것을 하나님이 넘치도록 채워 주심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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