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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5]

En Hakkore 2024. 6. 11. 12:02

속박당하는 이스라엘(출애굽기 1장)

우리는 앞의 장에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한 것은 그리스도에 의한 구속을 예시하는 그림자라는 것을 공표했다. 노예가 된 히브리 사람들이 거했던 땅은 중생하지 못한 자들이 거하는 장소를 적절하게 묘사한다.

애굽은 세상, 즉 하나님을 떠나 그를 대적하는 일종의 조직체로서의 세상을 상징하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작고한 그랜트(F. W. Grant) 씨가 발표한 우수한 논문을 인용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을 것이다.

"애굽 땅은 큰 강을 따라 이루어진 약간 좁게 펼쳐진 나라로서 그 땅에 연접해 있는 사막과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땅이다. 이 사막은 땅의 양편에 펼쳐져 있고, 이곳을 따라 강이 흐르는 약간 길게 뻗어 있는 땅이 애굽이다.

양편에 있는 사막이 경계를 이루면서 주변 사방으로 두루 모래를 날린다. 그리고 강물은 언제나 둑에 흘러넘쳐 모래 위에 진흙을 남기어 토양을 소생시킨다.

성경적인 이름은 물론 애굽이 아니라 미스라임인데, 미스라임의 뜻은 '두 개의 좁음' 이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강의 양쪽 편에 있는 두 개의 기다란 땅을 의미한다.

그 땅은 매우 주목할 만한 곳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것은 삶과 죽음의 영속적인 대결의 광경을 보는 것 같다. 거기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도,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애굽 땅은 먼 나라에서 내리는 비로 만족함을 받고 있다.

애굽의 또 다른 괄목할 만한 특징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데, 사람들은 그 이유에 대하여 거의 아는 바가 없다. 그 강은 웅장한 모습으로 넘실거리며 흘러내려 그 끊임없이 흐르는 물줄기로 땅의 풍성한 소출을 가져 온다.

말하자면, 애굽 사람들은 하늘로부터 자유한 자들이었다. 실제로 그러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구름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은 위를 바라보는 대신 아래를 본다.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과 애굽 땅의 대조를 지적하신 것인데 가나안은 이스라엘의 몫이요, 하늘에서 비를 내린 물과 비를 마신다. 가나안은 의존의 땅이요, 애굽은 독립의 땅이다.

"그리고 그것은(독립성) 우리의 자연적인 조건의 심각한 특징이니, 오호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적이라는 면은 지금 우리에게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하나님이 물론 풍성한 복의 시내를 흐르게 하시고, 그분 외에 아무도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없건만, 우리는 너무도 자주 또한 계속적으로 자연의 법칙이라고 똑똑하게 말하면서(?), 하나님을 도외시한다.

마치 그들이 애굽 강의 근원을 탐지하기 위하여 오래 전에 사람들을 보낸 것과 같이, 사람들은 자연의 공급원을 찾으려고 계속 탐지해 보았지만 아직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애굽은 그들의 강을 섬겼다. 강이 끊임없이 그들에게 흘러내려 그 결과로 하늘로부터 독립하였지만, 하늘은 여전히 그것을 공급하는 근원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위에서 받는 것을 아래로 흘러내리게 하는 그 푸른 언덕들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강만을 섬겼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본질 상태이다.♡

하나님은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신다. 우리들은 모든 것들이 거기서부터 오는 복된 손을 깨닫지 못하고, 그들과 우리가 실제로 의존해 있는 그 손에 대한 고의적인 무지의 상태에서 그 축복을 빼앗았다.

그러나 이 애굽은 다른 면에서 주목할 만하였다. 그곳은 사람들이 아시다시피, 과학과 문명이 존재하는 곳으로서 괄목할 만한 곳이었다. 매우 놀랄 만한 그러한 나라로서, 지금도 동상들과 경탄을 금할 수 없는 건축술을 연구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가고 있다.

애굽 사람들은 그들이 그 안에 들어가 즐기기도 전에 그들이 마치 영혼을 소유한 것처럼 집을 지었다. 그 건물들은 그것을 건축하였던 당시의 사람들의 나이보다 오래가도록 지어야만 하였지만, 그것들은 사람들의 생명이 지속되도록 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여전히 그들은 그 건축에 대해 최선을 다했다.

그들은 시체를 미라로 만들어, 오는 후손들에게 그들의 시체를 물려주었다. 마치 그들이 손으로 만든 것들을 나란히 줄지어 놓고, 엄숙하게 "여기에 더욱더 강하게 승리를 했던 자들의 가장 위대한 작품들이 있노라" 고 말하는 거 같다.

이 얼마나 그들의 그토록 많은 웅대한 작품에 대한 찬사인가!  그들의 기념할 만한 주요한 문서는 '사자의 책' 이다. 그들의 기념비에서 죽음은 틀에 박힌 것이다. 사막은 결국 강을 삼켜 버렸다. 과학과 예술의 땅은 생명의 땅이 아니라 죽음의 땅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 그 자체의 역사이다.

죽음이란 어디에나 그 낙인을 찍는 법이다. 그것은 타락한 피조물에 대한 '헛됨' 의 낙인이다. 더 나아가서, 그것은 거룩한 이가 힐책하시는 낙인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은혜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그에게 후회할 이유를 주지 않았다면, 과연 주님이 그렇게 후회하면서 황폐하게 만들 수 있었을까?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주님으로 하여금 꼭 그렇게 해야 할 이유를 저지르고 말았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유감스러운 일인가! 하나님이 그의 사랑 안에서 안식할 수 있을 때(마치 그가 그렇게 하려고 하듯이), 그때는 그가 안식할 수 있는 조건의 실재를 요청할 것이다.

그가 안식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그 모든 것 위에만 영원이라고 낙인을 찍으실 것이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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