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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4]

En Hakkore 2024. 6. 11. 11:59

속박당하는 이스라엘(출애굽기 1장)

우리는 출애굽기가 시작되는 첫 구절에서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의 장들에 기록된 사건들을 회상하게 되는데, 거기에서 야곱과 그의 가족이 바로의 땅에 정착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이 입국할 때에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환대를 받아 애굽에서 "땅의 좋은 곳" 인 고센 땅을 허락받아(창 47:6), 그들이 사용하도록 분배되었다. 그러나 평화와 위로를 받고 거기에 거하던 그들에게 고난이 다가온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들이 애굽에 들어 온 이후 약 삼십 년이 되었을 때, 그들에 대한 적개심이 일기 시작했는데, 맨 처음에는 아마도 그들이 양 치는 자라는 사실에서부터 발생한 것 같다(창 46:34 참조).

이렇게 시작된 적개심은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결국 그들이 참기 힘든 속박을 당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들이 고센 땅에 정착한 지 삼십 년 후에 그들의 평화가 깨어진 것은 사도행전 7:6과 출애굽기 12:40을 대조해 보면 잘 알 수 있는데 전자를 보면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고 기록되어 있고, 후자를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 삼십 년이라" 고 알려져 있다.

이 점에 대하여 자연적으로 몇 개의 질문이 저절로 제기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긴 세월을 애굽에서 보내게 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왜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잔인한 대우를 받게 하셨을까?

하나님의 목적은 아브라함의 후손들로 하여금 그들의 열조에게 주셨던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목적이 달성되기도 전에 사백 년이 넘는 시간적 간격을 경과해야만 했던가?

이 질문에 대하여 두 가지로 대답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의 유업을 위하여 준비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들이 애굽에서 받았던 거친 견책은 그들의 근육을 발달시키고 그들의 힘줄을 질기게 하였다.♡

또한 그들의 애굽에서의 쓰라린 운명과 광야에서의 시련은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을 그들이 소유하게 되었을 때 더욱 감사하게 맞이하려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서, 가난안 땅은 단일 가족이나 지파에게는 너무 광활하여, 애굽에서의 긴 체류를 통하여 한 민족을 이룰 수 있는 이백만이 넘는 인구가 형성되는 시간을 갖기 위함이다.

두 번째의 대답은 창세기 15:16에서 제시해 주고 있다.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씨가 나그네 된 땅에서 사백 년간 머무를 것이나, 사대 째에 가나안으로 돌아올 그때에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관영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아모리 족속의 심판으로 다스릴 때가 아브라함의 시대에 아직 완전히 무르익지 않았고, 그들의 죄악이 하나님께서 정해두신 한계선에 미치지 않았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관영' 할 때에 그것을 명하셨다(비, 마 23:32 살전 2:16).

이스라엘은 그들을 멸망시키는 도구역할을 할 민족으로서 준비가 되었다. "인간의 사악하고 고자세한 거역이 그 무엇이든지간에, 그것은 은혜와 사랑이라는 거룩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만들어진 것뿐이다....심지어 인간의 분노마저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수레바퀴의 멍에에 메어진다"(Ed. Dennett).

그러나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애굽인들의 손에 의한 그러한 경멸과 시련을 겪도록 허락하셨을까? 아, 창세기가 다시 그 대답을 제공해 주지 않는가!

요셉에게 행한 형제들의 사악한 행동은 처벌을 받지 않고 넘어갔는가? 아니 그렇게 될 수 없다. 그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뿌린 것을 거두어야만 하였다. 즉 반드시 자기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손들도 거두게 되는 그러한 냉혹한 결과를 거둔 것이다.

왜냐하면 아비의 죄는 자손 삼사 대에 이르기까지 머무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것이 여기에 입증하여, 애굽에서 그들이 나오기까지는 '네 번째 세대' 가 되었다(창 13:15).

4대가 되어 추수하게 되었고 '무엇이든지' 뿌린 것을 정확히 거두게 되었으니, 요셉이 노예로 팔려 애굽으로 이끌려져 왔고 그렇게 노예가 된 것같이, 그 형제들과 그들의 자손들도 고통을 당하였도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요셉이 너무도 놀랍게 예표한 복된 자에 대한 그들의 사악한 대우 때문에, 지난 19세기 동안 이스라엘이 당한 쓰디쓴 경험들을 얼마나 미리 잘 예시한 것인가! 그들도 역시 그들의 뿌린 것을 거두었다.

이스라엘은 그리스도를 이방인에게 던져주었고, 그들도 그와 같이 자신들이 넘겨주었던 이방인의 손에 그렇게 던져졌다. 그리스도께서는 로마 사람들에 의하여 수치스런 취급을 당했기에, 하나님도 유대인을 징벌하기 위하여 똑같은 사람들을 등용하셨다.

그리스도께서 그 사시던 땅으로부터 "베어냄을 당했으며" A.D 70년에 이스라엘도 역시 그들의 열조의 땅에서 "베어냄을 당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다시 한 번 이 뿌림과 거둠의 법칙이 얼마나 냉혹하게 성취되는지를 보게 된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p19

Tip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창세기 46장 3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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