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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brews 121]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21]

En Hakkore 2024. 6. 6. 11:46

모세의 믿음 3(히 11:25-27)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여기서 성령께서는 세상을 경멸하는 모세의 세 경우를 언급한다.

첫째는, 세상의 존귀를 경멸했다(24절). 세상의 즐거움을 경멸했다(25절). 이제는 세상의 부요를 경멸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세 동사를 통해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모세의 결심이 점점 더 강조적이 되어가고 있음을 주목하라. 먼저 그는 "거절했다". 더 이상 애굽 공주의 양아들로 여겨지기를 원치 않았다.

둘째로, 그는 "더 좋아했다". 다시 말하면 멸시받고 고난받는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 거하며 그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는 편을 일부러 택하였다는 말이다.

셋째로, 그는 "여겼다". 앞의 선택이 내포하고 있는 비난을 자기로 포기하고 기각시켜 버린 그것보다 훨씬 더 귀한 것으로 평가했다. 11절에서 같은 헬라어가 "판단하다"로 번역되어 있다(우리말 개혁 성경에서는 "앎이라"로 번역되어 있음-역자주).

다시 말하면 모세는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으로 깊이 숙고한 다음에 결론을 내렸음을 두 동사는 보여주는 것이다. 또다른 경우가 여기 세 동사와 마가복음 4:28을 서로 대조하게 한다.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여기 26절은 24절과 25절에서 발견되는 것을 확대시켜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세의 선택이 지성적인 것이었음과, 그 선택을 촉구했던 영적 상태의 열정을 선포해 준다. 그가 내린 결심은 억지로 마지못해 내린 것이 아니었다. 기쁨에 차서 기꺼운 마음으로 한 것이다.

히브리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은 무거운 짐이라서 "악한 일을 선하게 만들어야" 하며 어려운 역경의 과정을 참고 견뎌내야 하는 것을 아는 정도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기쁘게 그것을 더 좋게 여겼다 - 그는 애굽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보다 그리스도가 자기에게 더 무한하게 의미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 마지못해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여 "하는 일인가"(고후 5:14) 우리도 우리들의 분량을 따라 사도처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한다"(고후 12:10)라고 말할 수 있는가?♡

여기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이란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그리스도께서는 모세가 이러한 일을 한 수세기 이후에 태어나셨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께 주신 자녀, 즉 아벨 이후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 알고 계셨다(요 8:56).

그리스도께서는 동정녀에게서 나시기 전부터 계셨다. 우리는 광야에서 "그리스도를 시험한 "이스라엘에 대해서 읽는다(고전 10:9). 그리스도께서는 처음부터 교회의 머리이셨다. 그 자신의 인격을 통해서 당신의 백성들을 인도하셨고, 그들 중에 계셨고, "언약의 천사"라는 이름으로 그들 가운데 함께 계셨던 것이다.

여기에 관심을 가지는 독자는 출애굽기 23:20-22의 용어들을 자세히 숙고해 보라. 그러면 "창조된" 천사 중 그 어느 누구도 거기에 보이지 않음을 명백히 알게 된다. 그래서 백성들이 어떠한 고난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받는 능욕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백성들을 당신의 보호 아래 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 백성들 사이에 교통이 있었다. 지금 그리스도와 그 백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합과 교통만큼 사실적이고 친밀한 교통이었다. 이사야 63:9, 스가랴 2:8을 잘 숙고해 보고, 사도행전 9:4, 마태복음 25:34과도 비교해 보라. 그러면 이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받는 능욕(원어에는 "그리스도의 능욕"이라고 되어 있음 - 역자주)은 그리스도께서 "인격적으로" 백성들과 함께 되심을 뜻한다.

둘째로,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신비적으로" 그리스도의 백성들과 함께 되는 것을 언급한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핍박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구속받은 백성들은 그리스도와 하나인 것이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처음부터 신비로운 한 몸으로 여겨져 왔다. 그래서 한쪽으로 무엇을 겪고 당하든지 다른 쪽에서 역시 똑같은 것을 겪고 당하든지 간주된다"(J. Owen).

결혼하면 아내는 남편의 이름과 신분을 함께 취한다. 그 둘이 "한 몸"을 이루기 때문이다. 같은 방식으로 교회는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교통하며, 그 둘 사이에 유사함과 서로 통하는 마음때문에 "그리스도"로 불리어진다.(고전 12:12, 갈 3:16).

현대의 "세대주의자들"이 그릇되게 선언하는 것처럼 이 복된 비밀이 구약의 백성들에게 숨기워졌을까? 예레미야 23:6과 33:16을 자세히 주의하면 그 점에 대해 매우 명백하게 알 수 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히브리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임을 "들었다". 그들 가운데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할 후사가 되도록 하나님이 뜻을 정하셨음을 알았다. 또한 그가 들은 것을 믿었고, 그는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되기를 결심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인 교회가 여기 히브리서 11:26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 머리와 그 자체는 서로 뗄레야 뗄 수가 없다. 물론 그것들을 구별하여 살펴볼 수는 있지만 말이다 -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인 교회가 나타난다는 것을 앞에서 살핀 여러 소절들을 주의깊게 비교해 보면 분명해 진다. 25절과 26절은 분명히 병행구절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고 하였다. 그래서 삼중적인 병행구가 형성된 것이다. 25절의 능욕은 "고난" 받는 것과 합치가 되고 그것에 의해 해석된다.

그리고 26절의 "그리스도"는 25절의 "하나님의 백성들"과 서로 보응하며 "잠시 죄악을 누리는 것보다 서로 균형을 이루며 또 그것을 설명해 준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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