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119]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19]

En Hakkore 2024. 6. 6. 11:45

모세의 믿음 II(히 11:25-27)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 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여기서 믿음으로 산 사람으로 소개되는 사람은 모세다. 그 사람은 그의 목적하심에서 뛰어난 인물이었다. 특별히 히브리 사람들을 대하는 그의 자세에서 그러하였다. 여러 가지 경우에서 그러한 사실이 드러난다.

첫째로, 그의 인격에서 뛰어났다.

고대 세계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출생과 교육과 행동에 있어서 모세보다 더 나타난 사람이 없었다. 명성에 있어서도 세상에서 그보다 위대한 이름을 날린 사람이 드물다. 그의 행사와 지혜에 대한 기록과, 그것들에 대한 평가는 이 땅에거 모든 족속들 가운데서 유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았고, 행동했고, 자기의 모든 행사를 하였다.

둘째로, 그의 위대한 사역에 있어서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 위대한 사역이란 교회를 구속하시는 그리스도의 일을 모형적으로 그려 주는 것이었다. 그 일 자체만으로도 위대한 일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그렇게 표현하였던 것이다: 전에 이 땅 위에서 그와 같은 일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신 4:32-34).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영원히 구속하시는 뜻을 모형적으로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그 형제는 더 위대하다.

셋째로, 그의 직무때문에 탁월하다.

그는 율법을 받아 전한 사람이다. 그 사실 속에서 '율법이 믿음과 배치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율법을 준 자기 자신도 그 율법을 따라 살았으니 말이다"(J. Owen).

히브리서 11장에서 성령께서 제시하시는 믿음의 각 표본적 인물들은 그 신령한 은혜의 독특한 특징, 또는 열매를 나타낸다. 여기서 묘사되는 믿음은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믿음이 없는 사람 어느 누구도 받아들이지 아니하신다(6절을 보라).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똑같은 분량의 믿음을 받은 것은 아니며, 똑같은 방식으로 그 믿음의 모양을 드러내지 않음은 분명하다. 모든 꽃들이 다 동일한 향기를 풍기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꽃이 가지고 있는 모든 다양성은 찹초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들에게 법규를 만들라고 하거나 아들을 희생적으로 바치라고 하거나, 왕궁을 포기하라고 요구하시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중생한 영혼의 마음과 삶 속에는 죄와 허물로 죽어 있는 사람들과 다르게 만드는 것이 있다. 바로 그것은 '초자연적'인 표시임에 틀림없다 -

바로 그 사람 속에는 단순한 자연인이 내지 못하거나 낼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왕궁을 떠나라는 소명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극히 적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이 된 모든 사람들은 세상을 포기하라고 '요구받는다', 어떤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속세를 버리고 은자가 되라고 하든지, 수도원 또는 수녀원으로 들어가라고 명하기지 않는다 -

그러한 일은 구별됨의 진리를 부패시키는 마귀의 수작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요구하신다. 죄인은 세상의 우상을 저버리고 세상의 허망한 즐거움에서 돌아서고, 모든 악한 행실을 멈추고. 위로부터 오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성경은 이 점에 대하여 분명하게 지적하면서 선언한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을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약 4:4). 우리가 다루는 이 대목에서 모세가 윤곽적으로 시사해 주는 것도 멸망하는 세상을 진정한 마음으로 포기하고 하나님께 진정한 자리를 내주라는 것이다.

지난 강론에서, 모세가 바로 궁전에서 자기가 차지한 귀인의 자리를 기꺼이 양보한 모습을 살펴보았다. 모세는 부유하거나 우리를 위해서 가난하게 되신 분을 복되게 모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 분은 하늘의 영광에서 내려와 구유에서 태어나셨다. 위엄의 의복을 벗으시고 종의 형체를 취하셨다.

사랑하는이여,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도록" 미리 정해졌다(롬 8:29).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본을 남기셨고, "그의 발자취를 따르는 일"이 아니고는 하늘나라로 가는 다른 길이 없다(요 10:4).

머리되신 그 분과 그의 신비로운 몸의 지체들 사이에는 사실적이고 실제적인 연합이 존재한다. 그 실체적 연합은 '자기 희생'을 내포하고 있다. 자기 희생의 정신이 내 마음을 다스리지 않는 한, 나는 '결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하늘로 가는 길은 좁고 그리로 가는 입구는 "협착하다". 그것을 찾는 이들이 매우 적다(마 7:13,14). 그 길이 "좁고", 육체의 성향과 다 반대가 되기 때문에 출발하기 전에 앉아서 다 비용을 계산하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이다(눅 14:31).

그 비용은 은혜의 적을 결코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어느 누구라도 도저히 감당해 낼 수 없는 비용이다. 왜냐하면 그 비용 속에는 오른손을 자르거나 오른눈을 뽑아 버리는 일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마 5:29,30) -

베드로전서 4:18에서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간신히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에 서리요"라고 묻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인 것이다. 모세처럼 그 "비용"을 선뜻 지불할 의향을 가진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기독교 나라들 속에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에서와 같은가(히 12:16). 또는 거라사 사람들과 같기도 하다(막 5:14,15) - 그 사람들은 육체를 부인하기보다는 육체에 빠지는 것을 좋아했다.

구원이 '어렵다' 그러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좁고' 그 길이 '협착하다'는 것이 모세가 이겨내야 했던 여러 유혹의 시험과 육신적인 장애물들을 통해서 아주 결정적으로 그려졌다. 앞 강론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모세의 고상한 결심은 바로의 궁전을 떠나고, 자기의 양모를 향해서 배은망덕을 하며, 요셉이 세워 놓은 선례를 무시하는 것을 수반하였다.

뿐만 아니라 멸시받는 백성들과 함께 취급당하며, 백성들이 광야에서 헤매면서 편치 못하고 어려움을 당한 그 모든 것을 함께 감내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에 자기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멸시를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친족인 히브리 사람들의 원망과 불평을 사야하는 것도 다 들어 있었다.

사랑하는이여, 육신적인 생각과 전적으로 상반된 모세가 내린 그 결심, 은혜의 이적이 그 안에서 일어났다는 사실 위에서만 설명이 가능한 그 결심을 보라. 우리 주께서 선언하셨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 19:26).

위에서 말한 것에 비추어 볼때, 소위 "교회"라는 수많은 곳들에서 "회심"이라는 미명하에 주춤되는 것과 성경에서 말하는 "회심"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명백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진실로 구원받을 만한 참회심은 근본적이고 혁명적인 체험이다. 그것은 건전한 한 신조를 취하는 것보다 훨씬 더한 것이다.

성경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믿고, 어떤 종교적인 집회에 참여하는 것 이상이다. 그것은 사람의 존재의 뿌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서, 하나님의 요청에 자신을 지체없이 복종시키게 하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고 애쓰게 한다.

필연적으로 이러한 일은 세상과 완전한 결연을 가져온다. 이전까지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이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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