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120]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20]

En Hakkore 2024. 6. 6. 11:45

모세의 믿음 2(히 11:25-27)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모세의 고상한 행동을 적당하게 설명하는 것이 이 구절 속에 나타난 처음 두 낱말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이나 감각에 와닿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므로 그 믿음은 세상적인 위대함과 영예의 허망함을 분명하게 분변해 내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과 더불어" 참관해야 한다. 생각이 하나님께 진실로 머물러 있을 때에는, 세상의 부요와 즐거움이 매력을 가질 수 없다. 마음을 빼앗긴다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믿음은 위로부터 내리는 하나님의 인격적인 계시를 의존하고 그것을 순종한다.♥

왜냐하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롬 10:17) 때문이다. 모세는 "들었다". "믿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들은대로 "행동했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렇다 우리 각자는 생명과 죽음 그 어느 것 한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죄와 거룩 중 어느 한 가지를, 또한 세상과 그리스도 중, 하나님의 자녀들과 동행하든지, 마귀의 자녀들과 친교를 갖든지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모세는 애굽을 등지고 이스라엘 편을 대표했을 때(출 2장), 자기는 애굽 사람들과 함께 한 것보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좋음을 분명히 선언했으며, 하나님의 약속이 세상의 명성과 향락보다도 훨씬 은혜가 있음을 밝혔다. 그 당시의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심히 낮은 사회적인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족장들에게 하신 약속이 폐해지지 않음을 알았다.

바로 그것이 "믿음"이다. 나일 강 나라에서 자기가 취할 수 있는 배려적인 전망을 기꺼이 포기하고 일부러 역경의 길을 더 좋아한 것, 그것이 바로 믿음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들은 것이 그에게는 그처럼 컸고 위대하고 영광스러웠다. 그래서 이것과 저것을 사려깊게 달아보고 영적 부요를 위해서 물질적 증대를 거절한 것이다.

바로의 딸의 아들로 칭함을 받는 것보다 아브라함의 한 자손으로 칭함받는 것이 훨씬 더 존귀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손 안에 든 한 마리의 새가 숲속에 있는 두 마리의 새보다 더 가치 있으며", 현재의 기회를 잘 이용하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에 마음을 쏟는 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영이 육체를 이겼다.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기 위하여"(빌 1:10)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할 필요가 얼마나 많은가? 주의 깊게 주목할 것이 있다. 모세는 히브리 사람들과 고난받기를 선택하였는데 그것은 그 백성들이 자기의 백성들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였다.

"모세가 선택한 대상은 하나님이셨다. 자기의 조상들을 택하신 하나님, 은혜와 진리를 계시하신 하나님, 두려움 없이 당신 앞에서 행하라고 명령하셨던 하나님, 그 하나님께 모세는 어릴 때에 이미 드렸던 것이다"(A. Saphir).♡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고난"이 수반되는 것임을 주목하라.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함"(행 14:22)을 말씀하셨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고 선언하신다.

그러나 어째서 그러해야 하는가? 어째서 하나님께서 당신이 크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좀 더 부드럽고 즐거운 길로 갈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으셨나? 위의 질문에 주어질 수 있는 많은 답변들 가운데 한 두가지를 함께 숙고해 보자.

지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보편적인 상태는 어렵고 많은 핍박과 반대를 받도록 정해 놓으셨다.

첫째로, 그들로 하여금 신령한 일에 열심을 내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 속에서 이렇게 이르신다. "이것이 너희의 쉴 곳이 아니니"(미 2: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기에 안주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거듭해서 우리들에게 깨어 기도하고, 언제나 삼가며 정신을 차리고 살아 있으라고 명하신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둔한 귀에 당신의 권면의 말씀을 자주 하시는 것이다. "지혜로운 처녀들"은 "어리석은 처녀"들과 똑같이 잠에 곤하게 떨어졌다. 그 지혜로운 처녀들은 "깨어 일어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로마서 13:11, 에베소서 5:14 등에서 발견되는 경고의 말씀을 주목하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원수들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일깨우신다.

둘째로, 우리가 세상에 기울어지지 못하게 하신다. 우리 속에는 세상을 여전히 사랑하는 것이 들어 있기 때문에 자비하신 하나님께서는 원수들을 부추켜서 우리를 미워하게 하신다.

셋째로, 우리를 좀더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거역하시는 죄인들의 거역을 참아내셨다. 당신의 몸으로 "고난에 참여" 하셨다.

"죄악의 낙"이라는 말은 바로의 궁전에서 누리는 부요함과 존귀함을 가르킨다. 모세는 하나님과 그 백성들에 대한 신실함을 버리지 않고는 더 이상 그것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 그 궁전에서 계속 살아가면 여호와를 멸시하고, 아브라함의 후손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된다면 그 백성들을 구원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의 출세나 안일을 더 좋아하는 격이 될 것이다. 자신을 세상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더 악한 것은 히브리 사람들을 잔인하게 취급하는 바로의 처사에 함께 동참하는 격이 될 것이다. 더구나 자기 마음에 자극을 주시는 성령의 감동을 거역하는 것은 "죄"이다.

이 점은 우리로 하여금, 그 자체는 죄가 안되는 일들을 잘못된 시기에 사용하거나 즐기는 것은 죄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든 것은 때를 따라야 아름답다.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다"(전 3:4).

우리가 방금 위에서 증명한 원리는 대단히 중요한 실제적인 원리이다. 물질이란 무절제하게 사용하면 덫이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용"하도록 허락하셨다. 그러나 그것들을 "남용" 하지는 못하게 하신다(고전 7:31).

세상에 있는 잠시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마땅한 의무를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들은 저주가 되는 것이다. 성도와의 교제를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모든 관계들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우리 형제가 "고난"을 받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면 개인적으로 누리는 평안과 안일을 삼가해야 한다.♥

안타까운 일은, 그리스도인이라 자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삶의 사치를 계속 누리는 것을 하나님은 아신다. 수천의 사람들이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마저 없는 데도 말이다. 참된 경건과 절연된 모든 것이 "죄악의 낙"이라는 낱말에 내포되어 있다.♥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필요한 긍휼을 주실 때에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누려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본을 참되게 따른다는 언약을 도우는 한도내에서만 그래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일보다 육체에 속한 일 속에서 자기들의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5:16). 그러나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적은가!

사랑하는이여, "죄악의 낙"이 "잠시"뿐인 것을 주목하라. 정말 그 죄악의 낙이란 짧은 기간에 속한 것이다. 그 죄악의 낙은 신속한 회개를 통해서 끝내든지 아니면 신속한 파멸로 끝을 내든지 둘 중 하나이어야 할 것이다.

시편 15:11에서 그 두 가지가 얼마나 복되게 대조되어 있는가,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내 마음이 바로 그러한 즐거움을 주목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매일 그리로 인도하는 "오직 유일한 길"만을 찾아서 행하는 일을 최고의 관심거리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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