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116]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16]

En Hakkore 2024. 6. 6. 11:43

모세의 믿음 3(히 11:24-27)

모세가 그렇게 크게 거절한 것은 자기가 자라나온 그런 상태에서 더 이상 머물지 않겠다는 결연한 마음의 각오로 된 일이다. 우리는 확신하기를 이러한 일이 어려운 투쟁이나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신뢰 가운데에서 믿음을 행사하는 일 없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는 자기의 결심이 어떠한 대가를 치뤄야 하는가를 너무나 잘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서슴없이 그 결정을 내렸다. 그의 결심은 형식적인 공언을 통해서 알려진 것이 아니라 행실을 통해서 알려졌다. 왜냐하면 행동들은 언제나 말보다 더 큰 소리로 말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기록에 보면 모세가 이 결심을 자기를 길러준 어머니에게 구두로 알려드린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형제들과 대화함으로써(출 2:11 등 참조) 그 마음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나타내었고, 그 형제들의 종교와 언약에 자기도 합세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아 사랑하는이여, 하나님께 속한 일들에 대하여 잘 "이야기" 하는 것과 그에 따라서 "행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글을 쓰고 설교를 하는 것과 우리가 전한 것을 "실제로" 행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모세가 자기의 좋은 지위를 버린 것은 육체의 정욕을 크게 이긴 일일 뿐 아니라, 육신적 이성의 논리를 괄목할 만하게 이겼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의 행동은 자기를 길러준 양어머니에 대한 '배은망덕'의 극악한 것처럼 보인다.

바로의 딸은 갓난 아이였던 모세의 생명을 아꼈고, 그 집으로 데려가 자기 아들로 길러 주었다. 또한 애굽의 모든 지혜로 그를 교육시켰다. 지금 와서 그가 그녀에게 등을 돌리는 것은 마치 생각이 모자란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 육신에 속한 사람은 믿음의 역사를 규제하는 동기들을 이해하기에 그처럼 무능한가.

진리는, 두번째 돌판에 적혀 있는 계명들은 그 돌판에 적혀 있는 계명들을 지키느라 그 돌판에 적혀 있는 계명들을 순종하지 못하게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세상에서 오는 존귀를 받는다든지 세상에 대하여 은혜를 갚는 일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과 반대가 되거나 선한 양심을 지키지 못하게 한다면 그런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하나님께 마땅한 의무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사람에게 의무를 준행할려고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 대하여 깨끗한 양심은 보존하기 위해서 그 밖의 모든 관계들은 일단 길을 비켜 주어야 한다. 우리의 동료에 대한 그럴듯한 의리가 아무리 손상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권리는 영구하다.

또한 그 하나님의 요구사항들을 들어 주어야 하며 인정해야 한다. 어떤 친구가 자기 집에서 나를 즐겁게 해줄 수 있다. 그리고 한 주간 내내 친절을 베풀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주일에 그와 함께 소풍이나 놀이를 간다고 하면 정당할 수 없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 14:26). 그리스도인의 언어는 언제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이어야 한다(눅 2:49).

세상적인 영예를 즐기는 것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선한 사람들도 악인의 궁궐에 살았기 때문이다. 다니엘은 그 점에 대한 명백한 경우이다. 그의 생애의 거의를 공적인 높은 지위에서 보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에게 세상적인 풍부와 세상적인 특권이 주어질 때, 그 특권들을 누리고 향유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룩한 열심과 기도하는 깨어 있는 심정으로 그러한 것들에 의해서 거만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리라"(잠 16:19)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을 누리는 것이 그 자체로 죄악이 될 때나 깨끗한 양심으로 그러한 것들을 지니고 있을 수 없을 경우에는 마땅히 버려야 한다.

빌라도는 자기 양심을 거스려 가이사의 우정을 버리기보다는 그리스도를 정죄하였고, 성경 속에서 하나의 마지막 경고로서 우리 앞에 있다. "너희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

다시, 모세가 그렇게 위대하게 거절한 것은 자기를 양자로 받아 준 자에 대한 참으로 극악한 배은망덕처럼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 경박하게 구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가 처한 자리에 두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어째서 그러한 유리한 지위를 버렸느냐? 만일 모세가 자기의 이해력을 의지하고 육신적 이성의 논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자기가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할 여러 가지 많은 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어째서 그는 거기에 머물러 애굽을 개혁하려 하지 않았는가?

어째서 압제받는 히브리 사람들을 위하여 왕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는가? 만일 그가 바로의 궁정에 남아 있었다면 많은 고통을 면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급은" 잃었을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이여, 불신앙은 매우 간교하여 그럴듯하게 구실을 댄다.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지 '않아도' 될 여러가지 많은 논리적 이유들을 제시할 수 있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459

'강해시리즈 > 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카테고리의 다른 글

[Hebrews 118]  (0) 2024.06.06
[Hebrews 117]  (0) 2024.06.06
[Hebrews 115]  (0) 2024.06.06
[Hebrews 114]  (0) 2024.06.06
[Hebrews 113]  (0) 2024.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