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117]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17]

En Hakkore 2024. 6. 6. 11:44

모세의 믿음 4(히 11:24-27)

모세로 하여금 이 고상한 희생을 치르도록 자극한 것은 무엇인가? 이국적인 충동이었는가? 자기 형제에 대한 환상적인 사랑인가? 아니다. 그는 이성이나 감성에 의해서 인도된 것이 아니다. 모세가 바로의 딸의 아들로 불리움받기를 싫어한 것은 "믿음으로" 행한 일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으로 단단히 붙잡은 행위였다.♥

육신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보며 장래 상급을 확신했던 것이다. 믿음은 사물들을 바르게 평가하는 관점을 마음에 부여한다. 믿음은 참된 빛으로 대속물들을 바라보게 하여 가련한 세상이 그처럼 크게 자랑하며 자기 영혼을 잃어버려 가면서까지 미쳐서 추구하는 것을 상대적으로 쓸모 없는 것으로 평가한다.

믿음은 장차 영혼을 바라본다. 믿음이 건전하게 행사되는 것에서는 믿음 가진 자가 시간과 감각세계에 속한 쓸데없는 것들을 버리기가 쉬운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이렇게 부르짖는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시 39:6).

애굽의 궁정에 사는 사람이 그러한 "믿음"을 가졌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모세는 이교도의 궁정에서 길러졌다. 그 이교도의 궁정에는 참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전혀 없다. 우상과 허망과 신성모독만이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양들 중 어느 사람들은 도저히 있음직하지 않은 곳에 처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자되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찾아내시고 거기에서 그들을 건져내시거나 아니면 그 안에서 그들을 보존하신다. "헤롯의 청지기"의 아내(눅 8:3), 네로의 "집에" 있는 성도들(빌 4:22)은 주목할 만한 실례들이다.

이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는 원수 중에서 다스리소서"라는 말씀의 놀라운 실례들이다(시 110:2)! 그의 원수들이 아무리 격분하고 그의 이름을 지우려 하고 그의 나라를 뿌리채 뽑아버리려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는 "사단의 보좌가 있는" 곳에서마저(계 2:13) 은혜로 선택한 남은 자들을 보전하실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반대이론을 펼지 모른다. "그러나 모세뿐만 아니라 요셉도 믿음을 가지지 않았느냐. 그는 궁정을 떠나지 않았으나 죽을 때까지 거기에서 계속 있었다". 경우에 따라 사정이 다르다! 그들의 경우와 조건들은 같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일으켜 애굽에 있는 자기 백성들을 먹이셨다. 그러므로 그가 궁정에 거한 것은 그들을 좋아했던 왕들이 있는 동안에는 필요했다. 그러나 모세는 애굽에 있는 자기 백성들을 먹이라고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라고 부르심 받았다.

애굽의 왕은 이제 그들의 원수요 그들을 큰 고통 아래 노예로 묶어 두고 있다. 이교도 왕의 우상이 서린 궁정에 남아 있는 것과, 그들의 핍박에 복종해야 하는 까닭에 핍박받는 궁정에 남아 있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T. MAnton).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이 말씀은 모세의 영광스러운 결심의 적극적인 측면을 보여 준다. 믿음에는 소극적인 측면과 적극적인 측면이 있다. 첫째, "거절하는 것"과 그 다음에 "선택하는 것"(더 좋아하는 것)이 있다. 그 순서는 불변한다.

사람이 "선을 행하기를 배우기" 전에 먼저 "악행하는 것을" 그쳐야 한다(사 1:16,17). "선한 것을 자랑하기" 전에 악을 미워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암 5:15). "자비"를 받기 전에 "죄를 고백하고 버리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잠 28:13).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올 수 있기 전에 그는 머나 먼 나라를 "떠나야" 했다(눅 15장).

죄인이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기 전에 먼저 자기 우상을 버려야 한다(막 10:21).♥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기" 전에 먼저 "우상으로부터 나와"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살전 1:9).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주요 구세주로 받아들일 수 있기 전에 세상을 등져야 한다.

"모세는 '세상'을 포기했다. 영예와 위대해질 소망을 야심만 있으면 가질 수 있었다. 가장 문명화된 국가와 문화가 그 마음을 산란케 했을 것이다. 보배와 풍부가 강력한 유혹을 말했다. 이 모든 것은 가장 매력적이고 고상한 방식으로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함축하지 않는가?

모세는 버렸다. 그러면 그 반대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찌들어 지친 노예 민족에 가담하는 일이었다. 그 사람들의 오직 유일한 풍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이었다"(A. Saphir).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가는 그가 "선택"하는 것을 통해서 드러난다. 적은 이익을 위해서 악을 행하는가? 하찮은 불편함 때문에 의무를 준행하지 않는가? 비난받을까봐 마땅히 가야 할 길에서 돌아서는가?모세는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을 받기를 더 좋아하였다.♥

여러분도 그러한가? 모세는 죄 가운데서 사는 것을 모든 것 가운데서 가장 비참한 일로 판단했다. 당신도 그러한가? 여기에 중요한 시금석이 있다. 여러분에게 더 큰 슬픔을 주는 것은 어느 것인가? 죄인가? 아니면 몸으로 고통을 받는 것인가? 여러분에게 더 큰 고통을 가져다 주는 것은 무엇인가? 세상에서 손해를 당하는 것인가 아니면 불쾌하게 하는 것인가?

신앙을 고백한다고 하면서 육신적인 아픔과 고통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하는 수천의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러나 죄와 사망의 몸에 대하여 탄식하는 소리는 얼마나 적게 들리는가! 몸의 고통이 올 때 어느 것이 여러분의 가장 주요한 소원인가?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인가, 아니면 여러분이 선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 고통을 거룩하게 하는 것인가?

아, 사랑하는이여, 여러분과 도덕적 세상 사람들 사이에 "실질적이고 초자연적" 차별이 무엇인가? 그저 이지로서만 믿는 이른바 신조에 있어서만 다른가? "귀신들도 믿는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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