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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brews 115]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115]

En Hakkore 2024. 6. 6. 11:43

모세의 믿음 2(히 11:24-27)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여기서 우리는 구원얻는 믿음의 본질과 영향력을 발견한다. 특별히 두 가지 요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구원얻는 믿음에는 포기와 초용의 행동이 들어 있다. 회심할 때에도, 돌아서 나오는 일과 어떠한 것을 향하여 나아가는 일이 있다.

그래서 죄인이 "주께 돌아오라"고 초청받을때, 그는 먼저 "자기 길을 '버리라'"는 명을 받는다. 그렇다. 그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길"을 버리라는 것이다. 우리 죄를 "도말받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는 것이다(행 3:19).♥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육체를 즐겁게 하는 모든 것을 스스로 포기하라는 말이다. 자연인이 주로 크게 생각하는 것 세 가지가 있다. 그것은 목숨, 부요, 명예이다.

그래서 즉각 그 다음의 구절들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 세 가지의 세상의 것들을 헤아리라고 제안하셨다. 먼저 그는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25절). 다시 말하면 자신의 목숨을 "넘버 원"(number one)으로 만들려는 사람은 멸망할 것이라는 말이다.

둘째,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26절). 세상적 풍부의 상대적 무가치성을 보여 준다.

셋째로,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청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27절). "바로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영예이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여기서 우리는 자기 부인의 놀라운 실례를 발견한다. 모세는 왕궁의 여러 특권들과 즐거움들을 일부러 포기했다. 자기를 양자로 삼은 여자에게 아들이 아니라고 버림을 받았다든지 양자의 위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자원하여 안락한 지위를 포기하고, 그 부요한 존영들을 경멸하였다.

그것은 경험 없는 젊은 사람의 충동적인 경솔한 행동이 아니었다. 이미 40세에 이른 사람이 심사숙고하여 내린 결정이었다(행 7:23). 제자들은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라고 말했다(마 9:27). 그들의 "모든 것"은 고기잡는 그물과 고기잡이 배를 의미하였다. 그러나 모세는 왕이 될 자리를 포기한 것이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진수가 되는 요점이다. 그러한 것이 없는 곳에는 은혜가 없다. 언약에 있어서 첫번째 문구는 "너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지니라"이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과 삶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높이지 않는 한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받지 못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을 다른 무엇보다도 높이 평가하지 못하거나 다른 어떤 일보다 그 분을 범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지 않는 한 그 하나님은 우리 마음 속에서 최고의 자리에 계신 것은 아니다. 우리 자신의 세상적인 유익을 보존하기 위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을 수 있다면 그 세상의 유익을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는 셈이다.

우리의 친구가 친척들을 불쾌하게 하기보다는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을 좋게 여기면서 스스로를 참된 그리스도인들로 여기는 것은 큰 기만이 아닐 수 없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 10:37).

"믿음은 사람에게 모든 세상 영광과 이익과 업적들과, 또한 세상과 연계된 유익들을 공공연히 버리라고 가르치는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그런 것들을 기뻐할 수 없는 것이다"(T.Manton).

우리는 흔히 하나님이냐 다른 것들이냐, 의무냐 쾌락이냐, 우리의 양심을 지키느냐 아니면 육체를 만족시키느냐 하는 둘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시금석에 놓일 때가 있다.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에 평정과 힘이 있음을 드러낸다!

세상과 땅에 속한 것들을 경멸하는 조로 말하기는 쉬운 것이다. 그러나 나의 "첫번째 관심"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냐 아니면 자기를 기쁘게 하려 하느냐? 만일 내가 임금인상을 동경하고 있다든지 아니면 더 나은 지위를 소원하고 있다든지, 낙담하여 성미를 부리고 있다면, 그것은 세상 정신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나에게 "최고로 기쁨을" 주는 것이 무엇인가? 세상적인 풍부와 영예와 위로인가, 아니면 하나님과의 교통인가?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았다"(시 84:10)고 진정으로 말할 수 있는가!

"모든 신자들이 동일한 희생을 치르도록 되어 있다든지, 의를 위해서 동일한 시련을 당해야 한다든지, 동일한 믿음의 분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유에 속한 어떤 체험이나 의식을 하지 않고 있다면 우리가 모세의 종교에 속해 있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현대에 있어서 복음적인 진리를 믿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믿음이 모세나 아브라함의 자기를 부인하는 믿음과 닮았다고 한다면, 차라리 옛날 그 보통 지팡이가 아론의 싹난 지팡이보다 더 닮았을 것이다"(T. Scott).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들의 믿음은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다(요일 5:4). 그 믿음은 그 믿음을 가진 자로 하여금 지게 하는 믿음이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 5:24). 그저 그렇게 해야 된다는 말이 아니라, 최소한이나마 실제적인 어느 정도로 이미 그렇게 "했어야" 한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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