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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연합과 친교 28] 신비적 연합 1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연합과 친교 (Spiritual Union and Communio

[영적인 연합과 친교 28] 신비적 연합 1

En Hakkore 2024. 5. 7. 12:04

서론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지적한 바 있다. 즉 성경에는 세 가지 중요한 연합이 나타나 있는데 그것은 큰 신비이며 지극히 거룩한 우리 믿음의 토대가 된다.

첫째로는, 하나의 신성 안에 있는 거룩한 3 위의 연합이다. 즉 각각 독특한 인격을 가지고 있으며 함께 영원하고 함께 영광스러운 존재이면서도 한 분 여호와를 이루고 있는 연합이다.

둘째로, 임마누엘이고 하나님이자 인간인 예수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 신성과 인성의 연합이다.

세째로,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의 연합인데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고 성도는 지체가 되어서 하나의 신비한 몸을 이룬다.

이런 신비의 깊이는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 것이므로 우리가 상상으로도 이 각각의 연합에 대한 정확한 관념을 형성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이것들은 성경에 분명히 계시되어 있고 기독교 교리의 다른 여러 가지 부분에 필수적인 토대가 되기 때문에 이것들을 모두 믿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에게 은혜롭게 그 위에 빛을 비추어 주시기를 바라면서 이 주제를 열심히 기도하며 연구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거룩한 특권이다.♡ 앞 장에서 불충분하지만 신성 안에 있는 여러 위격이 어떻게 중보적인 연합을 가능하게 하였는지를 살펴보았다.

이제는 우리 인간의 본성을 입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교회를 자신과 연합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정통 신학자들은 하나의 신성 안에 있는 3위 사이에 존재하는 거룩한 연합에 대해서는 분명히 기룩하고 있으며 그 중보적 연합의 성격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도록 논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과 그들의 영화로운 머리 사이에 존재하는 연합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 점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는 것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많이 일반화시켜서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 사이에 존재하는 일체성의 여러 가지 면 사이의 차이점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 대한 명백한 견해를 얻기를 원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따로 떼어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들을 함께 섞어버린다. 알미니안과 사람들이, 지금 우리의 주의를 끌고 있는 대단히 소중한 주제에 대하여 어떤 분명한 이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을 자기들의 사상 체계의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필연적으로 잘못된 지점에서 시작하고 있다. 그들은 신자가 회심할 때, 즉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를 자신의 것으로 했을 때에 그리스도에 대한 신자의 연합이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처음이 아니라 중간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들은, 믿음이 두터운 연합이 있기 전에 먼저 생명적 연합이 있어야 하며 영혼이 구원적으로 그리스도를 신뢰할 자격을 얻기 전에 먼저 영적으로 소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무덤 속에 있는 시체가 육체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죄와 불법 속에서 죽어 있는 사람은 영적인 활동(즉, 주 예수를 자기의 소유로 하는 것은 하나의 영적인 활동이다)을 할 수 없다.

생명의 증거나 활동이 있을 수 있기 전에 먼저 생명 그 자체가 존재해야 한다. 칼빈주의자들은 방금 앞에서 지적한 잘못을 범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죄인이 구원에 이르도록 복음을 믿을 수 있기 전에 먼저 소생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충만함을 받을 수 있기 전에, 먼저 성령께서 영혼을 생명적으로 그리스도께 연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우리 것으로 삼기 전에 먼저 그에게 생명의 관계로 연합되어야 한다.♡

상속인이 되기 전에 먼저 아들이 되어야 한다. 여기까지는 아주 좋다. 그러나 여기에서 많은 현대 칼빈주의자들은 그 결과를 올바른 원인에까지 추적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믿음은 반드시 영적 생활을 전제로 한다고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왜냐하면 영적 생활 자체는 그 생활의 교제보다 우선하는 다른 어떤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모든 사람을 다 중생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성령께서는 어떤 사람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시는가?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셨다"고 갈라디아서 4:6은 말해준다. 그러므로 중생 이전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다. 그러나 중생 이전에 하나님과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중생 이전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전제로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중보자가 없이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과 연합하였기 때문에 택함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즉 그리스도 자신이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히 2:13)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고 말씀하셨다.

주님이 구원하셔야 했던 자들은 그가 성육신 하시기 전에 '그의 백성'이었다. 그들은 영광의 주님 자신이 인간의 본성을 입으시기 훨씬 오래 전부터 확고불변한 결속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와 하나였었다.♡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는 신비하고 영원한 연합이 지속되고 있는데 이 연합은 시간 속에서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생명적 연합의 토대를 이룬다. 그리고 이 후자는 전자를 명백하게 드러내주고, 전자는 후자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근거가 된다.

Arthur W. Pink 영적인 연합과 친교 p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