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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3] 서론 1 본문

강해시리즈/요한복음 강해 (An Exposition of John)

[John 3] 서론 1

En Hakkore 2026. 6. 5. 15:30

여기에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는 자세로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가 있다. 만일 성령께서 주님의 인성의 완전성을 지키기 위해 그토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면 - 가령 천사가 마리아에게 한 말씀에서 보여진다.

"나실 바 거룩한 자"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입으셨다" 등 - 마찬가지로 성경을 기록하도록 영감받은 자들도 또한 우리 구주가 하나님의 아들임에 틀림없음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이 앞으로 올 그분이 완벽한 인간임을 알렸던 것처럼, 구세주에 대한 예언은 그분이 인간 이상의 존재라는 명백한 암시를 주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이렇게 예언하셨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그리고 미가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선포하셨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

스가랴를 통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아지려니와"(슥 13:7).

또한 시편 기자를 통하여 이같이 선포하신바 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시 110:1).

그리고 재림에 대해 앙망할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 2:7). 신앙의 형태가 여러 유형으로 나뉘어져 있는 오늘날에는 주 예수께서 사실을 아주 강하게 그리고 빈번히 강조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 넷째 복음서의 특별한 주제와 관련해서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광이 완전히 드러난 것을 보게 된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태초부터, 만물이 지은 바 되기 전부터(1:2를 보라) 그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음을 보게 된다.

이 말씀을 통하여 "아버지의 독생자와 은혜와 진리가 충만"(1:14)하도록 예정되었음을 알게 된다. 이 말씀을 통하여 세례 요한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1:34)을 증언하였다는 것을 읽게 된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냈을"(2:11)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이 말씀(요한복음서)에서이다. 구주께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2:19)라고 말하셨음을 읽게 되는 것도 여기에서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3:35)도 이 말씀을 통해서 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5:21-23)고 말씀하심을 보게 되는 것도 이 복음서에서이다.

또한 여기서 우리가 그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8:58)고 단언하고 계심을 보게 되나. 이 복음서를 통하여  그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10:30)라고 확언하셨음을 알 수 있다.

이 복음서를 통하여 그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10:30)라고 확언하셨음을 확언하셨음을 알 수 있다. 이 말씀에서 그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14:9)고 증언하셨음을 알 수 있다.

요한복음을 상세히 살펴보기에 앞서 이 복음서의 관점에 관해 몇 마디 말해 둘 것이 있다. 먼저 이 복음서가 다른 세 복음서들과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분먕하게 해두어야겠다.

다른 복음서에서 그리스도는 인간적인 관계에서 그려져서 세상 사람들과 연관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늘의 백성들과 연관되어 있다.

'몸'의 신비가 이 복음서에 나타나 있지 않음은 사실이다(그것에 대하여는 단지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았을 때 쓴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이 복음서에서 고려된 것은 오히려 가족적인 유대관계이다.

즉 하나님의 자녀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이다. 또한 '하늘의 부르심' 역시 여기에 충분히 표명되어 있지 않음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것에 대해 명백히 암시하고 있다.

이 말씀(요한복음)에 대해 주의 깊게 연구해 볼 때 그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앞의 세 복음서에서 그리스도는 유대인들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메시야의 왕국을 선언하고 있으나, 그 선언은 그 백성이 그를 거부하였음이 자명해지자 곧 중지되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그는 처음부터 거부당하고 있다. 맨 첫 장에서 우리는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라는 말씀을 일게 된다.

그러므로 다른 세 복음서에서 보여지는 바 많은 것들과 관련되어 갖는 제한점들을 요한복음은 갖지 않는다. 또한 요한복음에서 구세주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표명되고 있으며, 그러한 존재로서는 오직 믿는 자들에 의해서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점에 있어 유대인은 아무런 특혜도 갖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에 관해 유대인이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그가 '다윗의 자손'이었다는 사실에서 시작되는) 순전히 육적인 존재였다. 반면에 믿는 자들은 영적인 결합에 의하여 하나님의 아들과 관련되는 것이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강해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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