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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7] 그리스도, 영원한 말씀 본문

강해시리즈/요한복음 강해 (An Exposition of John)

[John 7] 그리스도, 영원한 말씀

En Hakkore 2026. 6. 6. 17:26

그리스도, 영원한 말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13).

앞장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하였었다.

"성경의 각 권은 나름대로 특별하게 강조되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신체를 이루는 지체들이 각각 특유한 기능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경의 각 권들도 그 나름대로 특별한 목적과 임무를 지니는 것이다.

요한복음의 주제는 구세주의 신성이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그리스도의 신격이 그처럼 온전하게 제시되는 곳은 없다. 넷째 복음서에서 두드러지게 강조되는 점은 주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점이다.

천사들이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탄생을 알린 그분, 이 땅에서 33년 동인 지내셨던 그분,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던 그분, 40일 후에 이 지상에서 떠나셨던 그분이 바로 영광의 주이셨음을 이 복음서를 통해 보게 된다.

이에 대한 증거가 전편의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그에 대해 깊이 묵상해 볼 때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딛 2:13)께 경배 드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멘아멘!!

요한복음이 구세주의 신성을 데시하고 있음은 이 복음서 제1장, 첫 머리의 말씀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성령은 말하자면 출입구로 들어가는 올바른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이 네 번째 복음서의 도입 구절들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동시에 그의 본래적인 영광을 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의미 깊은 구절들에 대한 해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그 내용에 대해 분석해 보고자 한다. 요한복음 1장의 처음 열세 절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1. 그리스도와 시간의 관계 - "태초에", 곧 영원전부터(1:1)
2.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관계 - "하나님과 함께", 곧 거룩한 삼위 중의 한 분(1:1)
3. 그리스도와 삼위의 관계 -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곧 계시자(1:1)
4. 그리스도와 우주의 관계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곧 창조자(1:3)
5. 그리스도와 사람들의 관계 - 그들의 "빛"(1:4, 5)
6. 세례 요한과 그리스도의 관계 - 그의 신성에 대한 "증언자"(1:6-9)
7.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받으신 대우(1:10-13)
(1)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다(1:10)
(2) 자기 백성(이스라엘)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1:11)
(3)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 그를 영접하였다(1:12, 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

이 말씀은 다른 세 복음서의 도입 구절과 참으로 다르다. 요한은 다윗의 자손이나 사람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직접적으로 그리스도를 제시함으로써 서두를 시작하고 있다.

요한은 우리로 하여금 태초로 되돌아가게 하며 주 예수는 시작이 없으신 분임을 보여주고 있다. 요한은 창조의 이면을 캐며, 구주께서 곧 창조주 그분이심을 보여준다. 이 말씀의 구절 구절이 우리의 깊은 주의와 경건한 관심을 요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 구절에서 우리는 유한한 사고를 뛰어넘는 영역에 들어서게 된다. 여기에서 사색 내지 추측은 신성 모독이다. '태초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인간의 사고 수준에서 나오는 영감을 완전히 압도하는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마찬가지로 우리는 '말씀'이란 표현 역시 파악할 수가 없다. 곧 말에 의해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명확히 표현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란 들을 수 있는 말로 자신을 표현하는 신성 그 자체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말할 때, 진정 우리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구절은 그의 독자적인 인격성을 암시하며 복되신 삼위의 다른 위격들에 대한 그의 관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서글프게도 우리는 신격의 세 위격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묵상하기에는 너무도 무능력한 존재들이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시자이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항상 하나님 그분 자신이셨고, 영원히 그러하시다. 아멘아멘! 우리 구주께서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그 자신을 표현하셨던 신성, 그를 통하여, 그에 의하여 오신 분이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성부와 성령과 동등하신 신성 그 자체이셨다. 아멘!

이제 우리는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 절들을 좀 더 자세히 고찰해 보고자 할 때 참으로 간절히 그의 자비와 은혜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당신의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것들을 취하사 우리에게 보여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옵소서. 아멘"

Arthur W. Pink 요한복음 강해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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