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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Hakkore
자신을 한없이 낮춤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의 뒤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삼상 24:14). 여기에서 다윗은 자신을 가장 낮게 낮추고서 사울과 이치를 따진다. 당신의 판단대로 나는 가치 없는 인간인데, 어째서 당신이 나 같은 자를 잡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은 군주의 위엄에 걸맞는 행동이 아닙니다! 다윗은 자신을 "벼룩"에 비유하면서 자신의 약점을 직설적으로 설명한다. 사실 그는 실제로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다. 당시 그는 이곳저곳으로 재빨리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그렇기에 쉽게 붙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설령 붙들린다 할지라도, 그것은 왕에게는 별 가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어째서 일국의 왕이 그처럼 별 볼일 없는 사람을 쫓느라 고생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자기를 파멸..
자신의 결백을 호소함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넘기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어떤 사람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하지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 하였나이다"(삼상 24:10). 먼저 다윗은 사울을 날카롭게 비난하거나 타이르는 일을 삼갔다. 그리고 이제 그는 자기 마음에는 그를 향한 아무런 나쁜 뜻이 없음을 밝힌다. 그는 자기에게 그를 해칠 의도가 없음을 보여 주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에 호소했다. 왕의 목숨은 그야말로 그의 손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의 사람들은 그에게 그의 적을 재빨리 해치우라고 종용했다. 그러나 무력한 군주에 대한 연민이 그를 제어했다. 더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사울의 부하들을 비난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삼상 24:7). 사울 왕은 자기가 처했던 위험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잠에서 깨어났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굴 밖으로 걸어 나갔다. 우리와 죽음 사이가 한걸음 차이밖에 없었음에도 우리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깨어 있든 자고 있든 우리의 시간은 하나님의 수중에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시 66:9). 아무도 창조주께서 지정하신 시간보다 일찍 죽을 수 없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안에서 쉴 수 있을 때 그것은 복된 일이다. 우리가 매일 밤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
앞 장에서 우리는 배교한 사울 왕이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은신처로 삼았던 엔게디 광야의 어느 굴에서 잠든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곳에서 사울의 목숨은 전적으로 그가 쫓던 사람의 처분에 달려 있었다. 다윗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음을 재빨리 인식했고 자기들의 주군을 향해 말했다.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삼상 24:4a). 이것은 이스라엘의 시인에게 실제적인 시험이었다. 비록 그가 그 시험에 완전히 제압되지는 않았을지라도, 그는 그 내적 갈등에서 아무런 흠이나 상처 없이 빠져나오지는 못했다.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4b절). 그러니 "속지 말라 악한 ..
이 이야기 속에는 보다 깊은 교훈이 들어 있다.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철저히 마음에 새겨 둘 만한 교훈이다. 그 교훈이란, 우리는 섭리의 사건들을 해석하고 그것들로부터 결론을 이끌어내는 데 있어서 지극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의 성향을 쫓으면서 우리의 자의적인 행동에 대해 하나님의 승인을 얻으려 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왕위를 약속하셨다. 그렇다면 이제 그를 가로막이 왔던 유일한 장애물을 제거할 하나님의 때가 이른 것일까? 아주 많이 그렇게 보였다. 사울은 다윗에게 아무런 자비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다윗이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그에게 복수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그렇게 보였다. 그렇지 않다..
강력한 유혹 다시 한 번 우리의 관심을 다윗에게로 돌려보자. 우리가 앞 장 말미에서 보았듯이, 하나님은 다윗의 믿음의 기도에 응답해 그를 적의 손으로부터 놀랍게 구원해 주셨다. 그러나 그 구원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이제 사울은 전보다 더 강력한 군대를 동원해 그를 추격했다.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영적 경험을 통해 이런 것에 관해 얼마간 알고 있지 않은가?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 14:22). 문제가 닥쳐오고, 잠시 휴식이 허락된다. 그리고 앞의 문제가 해결되기도 전에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의 영적인 적들은 우리를 오래도록 평안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만약 그들이 우리로 하..
불신앙의 굴레 그러나 이제 우리는 본문의 이야기, 즉 각종 사건으로 점철된 다윗의 삶에서도 가장 놀라운 사건들 중 하나를 기록하고 있는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기로 하자. 매튜 헨리가 잘 지적했듯이, "지금까지 우리는 사울이 다윗을 파멸시킬 기회를 찾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그 기회를 얻지 못했다. 여기에서 다윗은 사울을 파멸시킬 좋은 기회를 얻지만 그 기회를 사용하지 않는다. 다윗이 사울의 목숨을 살려 준 것은, 그가 목숨을 보존하고 있는 것이 그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증거인 것만큼이나 또한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큰 증거였다." 사울은 아주 심술궂게 다윗의 목숨을 노렸으나, 다윗은 아주 관대하게 사울의 목숨을 살려 주었다. 이것은 육에 대한 영의 승리요, 죄에 대..
우리는 앞 장을 "의인은 고난이 많으니" 라는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시작했다. 그 구절의 나머지는 다음과 같다.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 34:19) 이것은 하나님이 늘 고난당하는 자를 그에 대한 모든 실제적 위험으로부터 구해내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리고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성경에는 주님께서 권능을 행사하셔서 그분의 백성이 처한 긴급한 죽음의 위험으로부터 구해내시는 경우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이스라엘이 홍해에서, 엘리야가 살의에 찬 아합과 이세벨로부터, 그리고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구출되는 이야기들은 그것에 대한 놀랄 만큼 적절한 사례들이다. 그러나 아벨이 가인에게 살해되고, 사가랴가 순교하고(마 23:35), 스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