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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50] 사울을 살려 줌(사무엘상 24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50] 사울을 살려 줌(사무엘상 24장)

En Hakkore 2024. 2. 18. 11:37

불신앙의 굴레

그러나 이제 우리는 본문의 이야기, 즉 각종 사건으로 점철된 다윗의 삶에서도 가장 놀라운 사건들 중 하나를 기록하고 있는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기로 하자.

매튜 헨리가 잘 지적했듯이,

"지금까지 우리는 사울이 다윗을 파멸시킬 기회를 찾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그 기회를 얻지 못했다. 여기에서 다윗은 사울을 파멸시킬 좋은 기회를 얻지만 그 기회를 사용하지 않는다. 다윗이 사울의 목숨을 살려 준 것은, 그가 목숨을 보존하고 있는 것이 그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증거인 것만큼이나 또한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큰 증거였다."

사울은 아주 심술궂게 다윗의 목숨을 노렸으나, 다윗은 아주 관대하게 사울의 목숨을 살려 주었다. 이것은 육에 대한 영의 승리요, 죄에 대한 은혜의 승리였다.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더이다"(삼상 24:1).

이 말을 통해 우리는 사울이 이스라엘을 침략한 블레셋 사람들을 쳐부수는 데 성공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종종 못보고 놓치는 엄중한 원리를 예시해 준다.

인간의 성공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승인의 증거가 아니다. 어떤 사람이 외적으로 번성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 곧 그의 삶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울이 그의 땅에서 브레셋 사람들을 몰아 낼 수 있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셨음을 부인하는 자는 불신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이런 이유로 하나님이 그를 기뻐하신다고 결론을 내린다면, 그때 우리는 크게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황소를 살찌우는 것은 도살하기 위해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종종 사악한 자들을 심판하고 정죄하시기 위해 일시적으로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이후의 결과가 사울이 실제로 어떤 존재였는지 분명하게 보여 준다.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더이다 하니" 사울은 이것을 자신에 대한 시험으로 간주해야 했다. 우리의 삶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은 이런저런 측면에서 우리에게 시험을 제기한다.

불행히도 사울은 그 시험에서 실패했다. 하나님의 외적 섭리는 사람의 마음을 바꾸지 못한다. 그분의 징계는 사람의 완고한 뜻을 꺾지 못하고, 그분의 자비는 사람의 굳은 마음을 녹이지 못한다. 성령의 중생케 하는 역사가 없다면, 그 어떤 것도 사람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로 만들지 못한다.🤞

하나님이 블레셋에 대한 사울의 군사 작전을 성공하게 해주신 것도 그 배교한 왕의 사악한 영혼에는 아무런 인상도 주지 못했다. 사랑하는이여, 잠시 멈춰서 다음 질문과 마주해 보라.

"하나님의 선하심이 당신을 회개케 했는가?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새"(삼상 24:2).

이 구절은 "악한 일에 관한 질병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전 8:11)라는 말씀에 대해 얼마나 엄중한 실례를 제공하는가!

사악한 자들은 종종 그들의 악한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제어된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제어의 손길이 사라지면, 마치 자기들이 악에 악을 더해야만 문제로부터 해방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전의 악행을 계속한다.

바로가 그랬다. 하나님이 계속 재앙을 보내셔서 그 악한 군주의 손을 억제하셨지만, 재앙이 일시적으로 연기되기만 하면, 그는 다시 마음이 강퍅해졌다. 사울은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함으로써 다윗을 쫓는 일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그 방해물이 제거되자 그는 이전의 악한 노력을 배가했다.

오, 구원에 이르지 못한 이여, 당신의 경우가 그렇지 않은가? 자기를 즐겁게 하기 위한 당신의 노력은 질병으로 인해 제어되고, 거듭되던 쾌락의 추구는 당신이 병상에 누움으로 중단된다. 그렇게 해서 당신이 자신의 영혼에 관심을 기우리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출 기회가 주어진다.

어떠면 당신은 피상적으로나마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의 결과는 어찌 되었는가? 하나님이 당신의 건강과 힘을 은혜롭게 회복시켜 주신 지금, 당신은 그런 건강과 힘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아니면 전보다 더 헛되이 이 세상의 환영을 추구하는 데 쓰고 있는가?

블레셋 사람들의 침략은 사울로 하여금 그가 그토록 까닭 없이 그리고 무자비하게 쫓고 있던 사람에 대한 생각을 바꿔먹도록 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는 자기에게는 공통의 적을 격퇴하기 위한 군대의 우두머리로서 다윗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전보다 더 분명하게 깨달아야 하지 않았을까?

오, 믿음이 없는이여, 이것은 당신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지 않는가? 당신은 실제로는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신실한 종을 경멸한다. 당신은 당신에게 그리스도의 요구들, 다함이 없는 영원의 엄중함, 이 세상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에게 임할 확실하고 두려운 운명 등에 관해 생각해 보라고 간청하는 그리스도인 친구들을 "흉을 깨는 사람"으로 간주한다.

사울은 지금 지옥의 고통 속에 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당신의 마음을 변화시켜 달라고 간청하지 않는다면, 당신 역시 곧 그런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1 p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