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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8] 그리스도인의 출발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8] 그리스도인의 출발

En Hakkore 2024. 4. 17. 10:49

제 1장 구원에 이르는 신앙(신앙의 본질 3)

만일 불신에 대한 성경적인 정의를 주의깊게 구축할 수만 있다면 이 주제를 다룸에 있어 많은 실수를 피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우리는 성경에서 거듭거듭 신앙과 불신앙이 대립되어 나타나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불신앙의 특성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으면, 구원에 이르는 신앙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찾아 내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그리고 우리가 불신이란 것이 단순히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의 실패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알면, 구원에 이르는 신앙이  우리 앞에 제시되는 하나님의 단순한 마음으로 동의하는 것 그 이상이란 사실도 즉시 알게 될 것이다.

성경은 불신을 하나님께 대한 치명적이고 격렬한 반대주의(principle of opposition)로 묘사한다. 불신은 수동적인 면과 능동적인 면 등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신의 뜻을 지닌 헬라어 명사는 "불신"(롬 11:20; 히 4:6,11), 또는 "불순종"(엡 2:2; 5:6)으로 번역되고, 동사는 "믿지 않다"(히 3:18; 11:30)와 "순종하지 않다"(벧전 3:1; 4:17) 등으로 번역된다.

다음에 나오는 구체적인 케이스들을 살펴 보면 이 사실을 보다 명백히 알게 될 것이다.

첫번째 케이스는 아담이다. 먹으면 반드시 죽는 금단의 열매를 먹은 아담의 행위에는 단순히 하나님의 엄숙한 경고의 말씀을 믿는 일에 실패했다는 부정적인 면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무모한 도전과 반항이라는 적극적인 면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광야생활 중에 있던 이스라엘의 경우를 보자. 그에 관해 성경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히 3:9). 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에 가나안 땅을 놓치게 되었다는 뜻일까?

그렇다. 가나안 입성의 '약속'이 그들에게 '주어졌건만' 그들이 실패한 이유는 그들이 그 약속이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을 화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히 4:1, 2). 일찌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며, 또한 그 약속이 주어지고 적용되는 것은 그 세대의 특권이라고 선언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았다.

그런데 이 믿지 않은 것이 전부가 아니다! 훨씬 더 악한 것이 있다. 오늘날 보통 간과해 버리는 또 다른 요소가 그들의 불신 속에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공개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이었다.

정탐군들이 극상품 포도송이를 샘플로 가지고 돌아왔을 때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올라가 그 땅을 취하자고 간청했건만 그들은 듣지 않았다. 그래서 모세는 "너희가 올라가기를 즐겨 아니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거역(한다)" (신 1:26)하고 외쳤다. 아, 그들의 불신에는 이처럼 적극적인 면이 있었다. 그들은 고집세고, 도전적이며, 불순종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번에는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롬 15:8)인 예수께서 이스라엘에 나타나셨던 그 당시 팔레스틴에서 살고 있던 이스라엘 세대의 경우를 숙고해 보자.

요 1:11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12절은 11절의 말씀을 좀 더 확실하게 밝혀 준다. "그 이름을 믿지" 않았다고, 그런데 그것이 전부일까? 그들의 죄는 단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응답하는 일과 그 분의 인격을 의지하는 일에 실패했다는 것, 그것이 전부일까? 아니다, 정말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불신앙의 부정적인 면에 불과한 것이다. 적극적인 면에서 볼 때, 그들은 그리스도를 "미워했고"(요 15:25), 그분께 "가려고 하지 않았다"(요 5:40). 그리스도의 거룩한 요구는 그들의 육체적인 욕망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됨을 원치 아니 하노라"라고 말했다(눅 19:14).

이처럼 그들의 불신도 역시 고집과 공공연한 도전,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스스로를 기쁘게 하려는 신념의 정신을 내포하고 있다. 불신은 타락한 인간 본성의 단순한 연약함이 아니라, 심히 가증스러운 죄악이다.

성경은 불신을, 죄를 사랑함과 완고한 고집, 그리고 강퍅한 마음에다 돌린다. 불신은 그것의 뿌리를 부패한 인간 본성과 하나님을 미워하는 마음에다 둔다. 죄를 사랑함이 불신앙의 직접 원인이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 3:19).

"복음의 빛이 한 사회나 사람들에게 임하면 사람들은 그것에 가까이 와서 그것의 목표와 취지를 알아보려고 한다. 그러나 복음의 빛이 그들과 그들의 죄 사이를 분리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자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복음에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복음의 약정을 좋아하지 않으며,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그 속에서 멸망하고 만다."(존 오웬)

만일 복음이 더욱 명료하고 성실하게 전파된다면 그것을 믿겠다는 사람이 훨씬 더 증가할 것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