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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구원 65] 사중(四重)구원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구원 (Doctrine of Salvation)

[영적인 구원 65] 사중(四重)구원

En Hakkore 2024. 4. 14. 08:29

죄의 쾌락으로부터의 구원

사랑하는이여, 우리는 이 세상에 악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죄를 무척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태어났다. 죄악은 우리의 타고난 본래의 요소이다. 우리는 우리의 탐욕과 결혼했으며, 이디오피아인이 자신의 피부색을 바꾸지 못하고, 표범이 그의 얼룩점을 바꿀 수 없듯이 우리 힘으로는 우리의 부패한 마음의 성향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사람에게 불가능한 것이 하나님에게는 가능하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처리하실 때, 이 때가 바로 우리를 죄에 대한 쾌락이나 사랑에서 구해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시작하시는 때이다. 이것은 은혜의 위대한 기적이다. 전능자가 내려다 보시고 기름더미 위에 있는 더러운 문둥이를 택하사 그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로 만드신다.

그리하여 그는 옛날에 사랑했던 것을 이제 미워하게 되고, 옛날에 미워했던 것을 이제 사랑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서 구원하시는 데서부터 시작을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 대한 사랑에서 구해 준 뒤에야 비로소 죄의 형벌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

그러면 이 은혜의 기적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지는가? 부정적인 면에서 악한 본성을 뿌리뽑거나 그것을 순화시킴으로써가 아니라 적극적인 면에서 악한 것을 미워하고 진실로 선한 모든 것을 기뻐하는 새로운 본성, 즉 거룩한 본성을 주심으로써 이루어진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경외감을 심어줌으로써 죄에 대한 쾌락이나 사랑에서 그들을 구하신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잠 8:13). 그리고 또한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잠 16:6)이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새롭고 중요한 원리를 말씀해 주심으로써 죄의 쾌락으로부터 그들을 구하신다. 즉,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5).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마음을 지배할 때 죄에 대한 사랑은 쫓겨난다.

세째,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그들이 위의 것들을 사랑하여 전에 그들을 사로잡았던 것들로부터 그들을 멀어지도록 이끄심으로써 죄에 대한 사랑에서 그의 백성들을 구하신다.

불신자들이 비롯 한편으로는 그가 죄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부정하지만, 많은 신자들도 종종 죄에 대한 사랑에서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스스로 납득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부분적으로는 성령의 조명에 의하여 밝혀진 이해력 덕분으로 그는 사물의 진상을 더 잘 인식할 수 있다.

은혜로 더 깨끗해진 마음으로 신생에 의하여 그는 쓴것을 달다고 부르기를 거절한다. 민감해진 양심으로 그는 죄의 움직임들과 금해진 것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의 소원을 재빨리 알아차리게 된다. 게다가 육체는 변화됨이 없이 그의 안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마치 까마귀가 항상 시체를 동경하듯이, 우리가 모태로부터 이어받은 이 타락의 원리는 거룩한 것의 반대편에 있는 것을 욕망하고 또한 즐거워한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진실한 신자의 마음 속에서 해답을 얻고자 갈망하는 혼란스런 질문들을 일으키거나 또한 제기하는 요인이 된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종종 그가 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구원되었든지 아닌지에 대하여 심각하게 의문을 품게 된다. 이러한 의문들은 그의 마음을 심히 혼란시킨다. 왜 나는 그렇게 쉽게 유혹에 굴복하는가? 왜 나는 세상의 허영과 쾌락에 그렇게 강한 매력을 느까는가? 왜 나는 욕망들을 억압하고 있는 속박들에 대해서 그토록 심한 짜증을 부리는가? 왜 나는 금욕을 행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고 싫은 것이라고 느끼는가? 만일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면 이러한 일들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만일 하나님이 죄의 쾌락으로부터 나를 구해 주셨다면 이러한 끔찍한 체험들이 발생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지금 많은 분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는 바로 그 의혹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러한 것들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오히려 불쌍할 따름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이 괴로운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가? 어떻게 인간은 자신이 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을까?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몇 가지의 사악한 것들을 욕망하고 거기서 기쁨을 얻으려고 하는 마음이 여전히 우리 안에 내재해 있다는 사실이, 우리가 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과 양립할 수 있음을 먼저 지적해 두고 싶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여전히 본질적으로는 죄인들이라는 것이 복음의 신비이다. 우리가 여기서 다루고 있는 문제는 믿음의 문제와 비슷하다. 마음 속에 있는 믿음의 거룩한 원리는 불신앙을 추방하지 못한다. 믿음과 의혹은 소생한 영혼 안에서 나란히 존재하는데, 그것은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막 9:24)라는 말씀에서 명백히 나타난다.

똑같은 방법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주여, 나는 거룩한 것을 갈망하나이다. 내가 죄를 사랑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라고 외치면서 기도드려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은 왜 일어나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내부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본성이 존재하는데 그 둘은 서로 완전히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구원 p177